스토리1

들었다 놓더라구요

주혜1 2010. 5. 28. 07:53

있는 사람들은 지옥을 알 수 없다. 또 이해하려고 별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나는 수시로 감옥이라는 지옥을 구경하고 나온다. 죄에 대한 대가는 받는 게 정의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시키고 공평하게 하도록 노력하는 게 법조인의 몫이다.

 

얼마 전 좀도둑으로 오랜 징역생활을 한 아주머니의 선고 결과가 검사의 구형량과 똑같이 징역 3년이었다. 이럴 때 변호사로서는 가장 괴롭다.

 

 재판받는 사람의 굽이굽이 험한 인생과 참회를 판사의 영혼에 전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는 죄송한 심정으로 서울구치소로 갔다.

 

남을 도우려면 삼년상까지 봐주라고 했다. 항소심에서 판사에게 다시 사정을 하기 위해서였다. 걱정과는 달리 아주머니가 환한 얼굴로 나왔다.

 

“그 판사한테 걸린 사람들은 모두 다 들었다 놨어요.”

 

그녀가 조금도 불쾌하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들었다 놓다뇨?”

“검사 구형량 그대로 판사가 선고하는 걸 말해요. 나를 담당한 판사한테 걸린 죄인들은 모두 구형량대로 됐어요. 변호사가 붙어도 그 판사는 절대 영향받지 않는대요.”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한편 안심했다.

혹시 담당판사에게 어떤 오해를 받아 좀도둑 아주머니가 피해를 보았나 걱정했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한테는 올려 붙이지 않은 게 감사한 거죠.”

 

그녀가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돈 없고 전과가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차가운 매를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올려 붙이다뇨?”

 “한 단독판사는 검사 구형량보다 항상 더 올려서 형을 줘요. 그런 판사는 악마예요.”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오는 재판장면에서 판사는 변호사의 천편일률적인 “정상 참작을 바랍니다”라는 소리에 귀가 닳아질 것 같다고 혐오한다.

앞에 선 가련한 여인 마슬로바의 고통보다는 지난밤 있었던 부부싸움의 찌꺼기에 더 마음이 쓰인다. 그들은 사회의 쓰레기인 범죄인을 청소하는 게 자신들만의 우월한 사명감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저도 나쁜 군 판사였어요. 많은 사람에게 철없이 중형을 선고하고도 가책조차 느끼지 않았으니까요.”

 

이십대 후반 나는 군 판사였다. 어떤 때는 하루에 팔십 명을 재판했다.

선고는 상관과 선배들이 만든 양형 기준에 충실했다. 그 공식에만 맞추면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았다. 눈에 보이는 건 수사기록일 뿐 그들의 절규나 부모의 간절함이 전해 들어올 마음의 공간이 없었다.

 

사회의식도 없었다. 박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계엄이 선포된 이후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1979년 12월경 나는 경찰서 유치장에 갔다. 계엄은 군 법무관에게 일반 사법권도 주었다. 유치장의 알전구마저 냉기를 견디지 못한 채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몸을 녹이는 잡범들 사이에 한 아가씨가 의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껌 공장 여공이었다. 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것이었다.

 

“춥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안쓰러웠다. 송치된 수사기록에 그녀는 악마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전혀 달랐다. 이십대의 예쁜 얼굴을 가진 그녀는 무릎 위에 얇은 담요 한 장을 얹어 놓고 발발 떨고 있었다.

 

“책 읽으려면 알전구가 더 밝아야 하지 않아요?”

“그냥 남들 고통받는 대로 똑같이 지내게 해 주세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추위와 감옥은 그녀를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현실추구에 급급했던 나보다 훨씬 성숙한 인간이었다.

 

만약 그녀가 학교에 갈 수 있는 돈만 있었다면 속칭 공순이가 아닌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몇 달 뒤 나는 석방된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는 껌을 한 박스 선물받았다. 그걸 씹으면서 나는 수사기록과 함께 피가 흐르는 인간을 보는 게 법조인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이십 년이 흐르고 어느새 내 딸이 그 아가씨 나이가 되었다.

 

나는 딸에게 그 아가씨 얘기를 했다. 공부는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의 혜택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사람의 몫이어야 한다고 타일렀다.

 

부장판사를 하다가 얼마 전 변호사를 개업한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판사일 때는 죄인만 보였는데 지금은 인간이 보여. 그 가족이 우는 것도 보고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 본인하고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니까 마음이 흘러가는 거야. 내가 다시 판사 하면 예전같이 안 하겠어. 이왕이면 명절 전에 석방시켜 주는 배려도 할 거야. 그런데 그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땐 그게 보이질 않았거든.”

 

겉 사람이 아닌 속 사람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한 일, '나'를 위한 직업에서 '나'가 없어지기를 소망한다. 그 '나'가 없어질 때 많은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닦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 엄상익님 변호사 출처 : 월간《좋은생각》 2002년 0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