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루브르,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인류 문화 예술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초대형 컬렉션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은 무려 270만여 점에 달한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20세기의 문화재까지 각종 자료를 수장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럽 회화와 스키타이 유물, 고대 공예품, 동양 문화재 컬렉션이 유명하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전경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기원이 된 해는 1764년이다. 하지만 이것은 최초의 컬렉션이 이루어진 때를 기점으로 삼은 것이고, 건축의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 차르들의 거처인 겨울궁전의 건립 시기까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겨울궁전은 도시의 건립자인 표트르 대제에 의해 세워졌다. 표트르 대제 사후 이 건물은 황폐화됐고, 엘리자베타 여제 때인 1754년 새 겨울궁전이 착공돼 예카테리나 여제 때 완공됐다.
에르미타주가 공식적인 박물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852년부터다. 에르미타주가 제국 박물관에서 국립 박물관으로 바뀐 것은 1917년의 10월 혁명 뒤의 일이며, 이후 국유화된 전국의 개인 컬렉션이 에르미타주로 집중되고, 발굴과 탐사로 인한 유물의 발견, 국가 주도의 문화재 매입 등이 이어지면서 에르미타주의 소장 내역은 20세기 한 세기 동안 이전에 비해 무려 네 배가량이나 증가했다.
전시장 풍경
탄탄한 서양 회화 컬렉션을 자랑하는 에르미타주의 명화 가운데 레오나르도의 <꽃을 든 마돈나>와 <성모자(리타 마돈나)>, 조르조네의 <유디트>, 티치아노의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라파엘로의 <콘스터블 마돈나>, 카라바조의 <루트 연주자>, 반 데어 베이덴의 <동정녀를 그리는 성 누가>, 루벤스의 <로마의 자비>,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와 <다나에>, 엘 그레코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 샤르댕의 <예술을 상징하는 정물>, 다비드의 <사포와 파온>, 그로의 <아르콜 다리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모네의 <정원의 여인>, 드가의 <머리를 빗는 여인>, 피카소의 <해골이 있는 구성>, 마티스의 <춤>과 <붉은 조화> 등은 미술 서적이나 달력, 엽서 같은 데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림들이다. 그만큼 일반인의 눈에도 익숙한 그림이 많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모자, 1490-91년경, 캔버스에 템페라, 42×33cm
레오나르도의 <성모자(리타 마돈나)>는 <모나리자>에서 볼 수 있는 모델의 은근하고 기품 있는 표정,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한 미소가 일품인 작품이다. 그림의 성모는 옷 틈으로 살짝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성모의 시선은 오로지 이 아기를 향해 있다. 부드럽게 돌아가는 이마와 다소곳하게 내려앉은 눈꺼풀, 오똑한 코와 작은 입술, 봉곳한 턱이 우아하기 이를 데 없다. 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적인 미인상이 그대로 구현된 마돈나라 하겠다.
성모의 시선을 받는 아기는 그러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림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다. 성모의 관심사가 아기라면 아기의 관심사는 그의 구원의 대상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기의 왼손에 쥐어진 방울새는 예수의 수난을 상징한다. 새의 머리에 빨강 점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작은 방울새 한 마리가 예수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새의 눈에 가시관을 쓴 예수의 이마에 유난히 깊이 박힌 가시가 보였다. 새는 부리로 이 가시를 뽑았다. 그러자 예수의 핏방울이 새에게로 튀어 그 후로는 자자손손 머리에 빨강 점을 두른 새가 됐다. 바로 자신의 핏방울을 두른 새를 아기 예수는 쥐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운명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카라바조, 루트 연주자, 1595년경, 캔버스에 유채, 94×119cm
카라바조의 <루트 연주자>는 에르미타주가 소장한 유일한 카라바조 작품이다. 그림은, 왼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 강하게 부각되는 연주자와 주변의 꽃과 과일, 악보, 악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앳된 얼굴의 연주자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 특유의 호소하는 듯한 눈빛을 띠고 찬찬히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현실의 한 장면을 사진처럼 낚아 올린 깔끔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그림은 사진처럼 단순히 대상의 실재를 포착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 작품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바니타스 정물화’의 교훈적 색채를 깔고 있다. 바니타스는 허영, 허무, 덧없음, 무상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바니타스 정물화는 그림의 소재인 정물들을 통해 이런 정서를 되새기게 하는 그림이다. 꽃은 아름다우나 곧 진다. 열매와 채소도 따고 뽑은 이상 곧 시들고 마르게 된다. 젊음 또한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노래처럼 덧없이 흘러가는 게 젊음이다. 그림 속 바이올린을 보라. 현이 끊어져 있다. 더 이상 연주하기 어렵게 된 저 바이올린의 처지가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종말을 예고한다. 삶이란 그렇게 덧없고 허무한 것이다.
루벤스, 로마의 자비(시몬과 페로), 1612년경, 캔버스에 유채, 140.5×180.3cm
에르미타주가 소장한 루벤스의 걸작 <로마의 자비>는 무엇보다 그 쇼킹한 표현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고대 로마에 페로라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아버지 시몬이 큰 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 형벌의 내용은 감옥에 가둔 뒤 밥을 굶겨 죽이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까 궁리를 하던 페로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매일 감옥에 찾아가 감옥의 간수들이 보이지 않을 때 몰래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먹이기로 한 것이다. 마치 아기에게 젖을 물리듯 그렇게 페로는 아버지에게 젖을 물렸다. 그 덕택에 아버지는 굶어죽지 않고 오히려 점차 원기를 회복해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로마의 역사학자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쓴 <로마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들>에 나오는 내용으로, 막시무스는 로마 사람들 사이에서 효와 우애, 나라 사랑 등의 미덕이 더욱 고양되기를 바라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루벤스의 그림에서 우리는 그 효성스러운 딸과 그 딸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매우 센세이셔널한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효심과 다 큰 딸이 자신의 젖을 아버지에게 물린다는 윤리적 갈등이 루벤스의 살아있는 붓 길로 인해 더욱 강렬하게 충돌한다. 막시무스의 뜻을 좇아 아버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우선임을 부각시킨 루벤스는 아버지에게 검은 옷을 둘러 그의 처지가 자아내는 비극을, 딸에게 붉은 옷을 입혀 자식으로서의 뜨거운 사랑을 나타냈다. 한 번 보면 누구도 잊기 어려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마티스, 춤, 1910, 캔버스에 유채, 260×391cm
에르미타주는 마티스의 걸작을 여러 점 소유하고 있다. 이는 20세기 초 러시아의 위대한 컬렉터인 시추킨과 모로조프의 열렬한 수집열 덕분이다. 이 가운데 <춤>은 누구나 한 번은 보았을 매우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품이다. 신선한 초지 위에서 강강술래 같은 원무를 추는 누드 군상. 세상의 모든 짐과 걱정, 제약을 떨쳐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순수와 해방의 기쁨을 발산하고 있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이렇게 기쁜 것이다. 이렇게 행복한 것이다. 우리의 편견과 자기 부정, 질시, 지나친 욕망이 우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림자를 걷는 일은 이렇게 모든 것을 툭툭 털고 즐겁고 편안하게 춤을 추는 데서 시작한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기쁨과 생명력으로 충만한 춤꾼들의 무대이다. 이 그림을 구입한 시추킨은 “나는 이 그림이 너무 좋아 다른 이들이야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이 누드를 우리 집 층계 벽에 걸어 놓았다”며 마티스에게 음악을 주제로 한 그림을 하나 더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단순한 색을 중심으로 마법과 같은 기쁨을 창조하는 마티스의 위대함을 일찍부터 간파한 컬렉터의 눈썰미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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