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서 착한 사람들 | ||||
| ||||
“아예 굽갈이를 하면 얼마나 들까요?” 제가 값을 깎으려니 예상하고 만 오천 원을 불렀던가 봅니다. 그런데 부르는 대로 순순히 다 줄 기세이자 그만 양심에 ‘찔려’ 제 값을 부르게 된 모양입니다. 바가지를 씌운 댔자 고작 이천원인데 말입니다. 저리도 많은데 그깟 겨자색 실이 설마 없을까, ‘난감한 의심’이 들었지만 없다는 데야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업무가 아닌가 말입니다. 굳어졌습니다. 줘야 한다며 머뭇대며 말하는 겁니다. 아저씨처럼 그 자리에서 말을 바로 바꿉니다. 만 삼 천원만 달라고. 두 사람이서 짰나 봅니다. 그냥 만 오천 원을 주겠다고 하자 만 삼천 원이면 된다고 또 ‘실랑이’가 벌어질 뻔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많이 불렀나 봅니다. 그냥 됐다고 하니 얼결에 “물 좀 드릴까요?” 이러는 겁니다. 아줌마가 미안하고 당황해서 그만 아무 말이나 입에서 나오는대로 했던가 봅니다. 있습니다. 모든 것의 값어치, 즉 ‘적정 가격’은 너무나 잘 알지만 정작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짜장면을 먹어야 할 때가 그렇습니다^^. 것이었습니다. 구둣방 아저씨는 오른쪽 검지 두 마디가 없고, 수선집 아줌마는 너무나 뚱뚱해서 자기 몸 하나 돌리는 데도 비지땀을 흘립니다. 그런데다 가게는 속된 말로 ‘콧구멍’만 합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낙타 만한 몸뚱이로 바늘 구멍과 온종일 씨름을 하는 겁니다. 고뇌하는 영혼이라니. 가난해서 착한 건지, 착해서 가난한 건지 사람을 헷갈리게 하면서 말입니다.
필자소개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선약수 (0) | 2014.10.23 |
---|---|
살고 싶다면 나눠줘라 /고진하 (0) | 2014.10.22 |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0) | 2014.10.07 |
백수는 인류의 미래다/ 고미숙 (0) | 2014.07.30 |
태아를 위한 기도 (0) | 2014.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