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복수초와 수선/황동규

주혜1 2015. 1. 6. 17:34

복수초와 수선

 

                             황동규

 

 

후줄근한 마음 어디에고 걸 수 없을 땐

시인 안도현이 식전 산책길에

내소사 뒷산에서 골라 캐어준

복수초와 수선에 걸리.

검은 비닐봉지 속에 맥놓고 늘어져

길 밀리는 고속 버스에 실려 와

주인이 혼곤해 이튿날 화분에 심긴 것들,

물을 주어도 흙 위에 쓰러져 꼼짝 않더니

하루 지나니 예가 어디지 고개를 들고

그 다음 날 물 줄 때는 세수까지 했다.

며칠 후 복수초 꽃은 막 지고 있고

수선 셋 중 하나엔 꽃대궁이 고개를 내밀었다.

노자가 와보면 대번에 치우라고 하겠지만

지금 사람에겐 그것도 꿈이라

벌 나비가 오지 않아도 꿈이라

살다 속이 좁아진 시인에겐

한번 쓰러졌다 일어난 건

그 어느 것도 다 제 명(命) 지닌 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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