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1
강이 먼저 주홍빛 자리를 편다
서서히 주저앉는 그를 지켜보는 일은 잔인하다
폭발적인 힘을 가진 그가 저렇듯 약해지다니
지저귀던 새들도 둥지를 튼 지 오래
하나둘씩 꺼지는 등불 아래 그는
눈부시도록 위대한 준비를 한다
황금빛 강 사이로 붉은 길을 열고
흰 무명 바지저고리 살포시 여미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듯
힘겨운 이별 숨을 몰아쉰다
꼼짝 않는 내 어깨를 도닥이며
처음부터 나는 혼자였다고
주는 것밖에 할 줄 모르던 그가
가져가는 게 많아 미안하단다
그는 찬란했다. 다만,
외로운 생의 전부를 토해놓느라
잠시 숨가쁠 뿐인 그를
바라보는 강물이 더 아파하는
거추장스런 허물을 벗는
마지막 의식.
아버지별.1
-물
저승밥 한 술 떠
굳은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눈감기고
귀 막고
나무못 쾅쾅 치고
징소리로 떠나보낸 별
오늘도 나는
그 별의 그림자를 찾아 떠난다
초록빛 갈기 날리며
작은 이슬처럼 찰캉찰캉
풋울음 울고 있는 별
저 익숙하고 투명한 기억의 별이
천 개의 눈을 가진 아르쿠스로
자리바꿈을 한들
한 번 떠난 저 별이 되돌아올까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선사시대, 그 지워진 토굴로 돌아가
그 돌밑에 얼굴을 묻고
눈뜨고
굳은 입 열리는
한 움큼의 신선한 물이 되고 싶다.
아버지별.2
-기도
내가 당신의 옷자락을 놓을라치면
당신이시여 내 손 잡아주소서
그 손 마다 하오면
내 손목 움켜잡으소서
그것마저 뿌리치면
내 겨드랑이 껴안으소서
그래도 앙탈을 부리거든
당신이시여,
내 몸 전체를 포옹해 주소서
나, 당신의 목 끌어안고 볼 부비오리다.
주여 !
아버지별.6
-꽃눈
아버지는 온 몸의 피를 다 쏟으시려나 보다. 유리병 속의 노란 수액들이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는 동안 나는 웃고 있었다. 어떻게 살 수 있겠니. 괜찮아요. 나쁜 피는 다 쏟아야 한대요. 순하게도 내 말을 믿으시는 아버지의 위 속으로 얼음물을 연신 넣으며 출혈이 멈추기를 기다린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고, 차츰 아버지의 동공은 열리고 있었다. 얘야 아직도 멀었냐. 이제 다 됐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병원 창밖에는 꽃눈이 내리고 침대 시트엔 붉은 철쭉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얘야 물 좀 다오. 의사가 물 드리면 안 된대요. 5월 꽃눈 내리는 날, 아버지는 물 한 모금 주지 않는 나를 원망하며 하얗게 가셨다.
김주혜
아버지는 내가 갈 때마다 늘 새로운 걸 보여주신다. 싸리나무 한 그루를 키우시어 마당을 쓸 때마다 생각나게 하시고 청띠 신선나비와 사슴벌레 한 쌍은 멋진 박제로 남아 간간이 산속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하늘 닿을
듯 높은 산을 올려다보며 나는 올해는 어떤 걸로 나를 반기시려나 철없는 아이처럼 칭얼대며 아버지 집앞에 다다르니 키 작은 상수리나무 열매가 제 먼저 알아보고 숨바꼭질 하잰다. 못 보던 야생화는 짙은 화장을 하고 헤프게 웃고 있다. '아버지는~~?' 가늘게 눈 흘기니 '옛다" 하며 발밑에 던져주시는 꽃을 보고, 나는 왈칵 눈물이 솟았다. 보송송한 수염 속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자줏빛 할미꽃,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시느라 목이 아프신 모양이었다.
아버지별.3
-북
매일 낮 밤 북을 친다.
후줄근히 땀에 젖어
손가락 사이마다 북채를 끼고
북을 두드린다.
그러나 북은
무덤처럼 조용하다
아버지가 떠난 후부터
북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북이 불러들이던
온 산하,
소나무의 향기, 불타는 바위
산의 환희,
온몸이 따로 노는 듯한
그 황홀함의 노래,
고음으로 칠수록 더욱 고요해지고
빠르게 가라앉을수록
가슴 밑바닥에 고인
찌꺼기들을 끌어올리던
그 붉은 울음을
나는 더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북은 아버지의 전부였다.
북 이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혀를 깨무신 아버지가 떠나자
북도 제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億丈억장
김주혜
10년 동안 자리 잡힐 대로 잡힌 봉분을 파헤치기로 했다. 背山臨水 左靑龍 右白虎 누가 봐도 명당자리에 아버지집을 짓고,잊을 만하면 술 석 잔 뿌리고 효녀인 양 살다, 삶에 죽을 듯이 지칠 즈음 아무래도 이 팔자 꼬인 것은 명당값도 못하는 조상탓인 것 같아 아버지집을 허물기로 했다. 한 삽 한 삽 퍼올리는 동안, 시간의 켜를 허물고 나는 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10년 동안 아무도 몰래 흘린 눈물로 흠뻑 젖은 채 오들오들 떨고 계신 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쓰러질 것 같다
저 산이, 나무가,
매캐한 현기증에 이마를 동여매고
알콜보다 독한 빗물에
벌겋게 달아오른 저 볼이 안쓰럽다
숨바꼭질하던 산새들도
질겁을 하고 떠난 산등성이
물이 좋으면 계곡을 파헤치고
돌이 좋으면 통째로 들어가버린
저 산이, 나무가
쓰러질 듯 기울고 있다
그러나 보아라
소나무 잣나무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들이
모진 비바람, 끈질긴 시달림에도
상처난 손과 손
짓무른 어깨와 어깨를 껴안으며
산비탈 바위너럭에서
단단히 단단히 뿌리르 내리고 있는 것을.
( 사이) 떼제 성가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초자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정 호 승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비가 온다
어머니의 늙은 젖꼭지를 만지며 바람이 분다
비는 하루 종일 그쳤다가 절벽 위에 희디흰 뿌리를 내리고
바람은 평생동안 불다가 드디어 풀잎 위에 고요히 절벽을 올려놓는다
나는 배고픈 달팽이처럼 느리게 어머니 젖가슴 위로 기어올라가 운다
사랑은 언제나 어머니를 천만번 죽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웠으나
때로는 실패한 사랑도 아름다움을 남긴다
사랑에 실패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늙은 젖가슴
장마비 떠내려간 무덤 같은 젖꽃판에 얼굴을 묻고
나는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뿌리에 흐르는 빗소리가 되어
절벽 위에 부는 바람이 되어
나 자신의 적인 나 자신을
나 자신의 증오인 나 자신을
용서하고 싶다 .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 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의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을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깍아드리며
이승하 -
작은 발을 쥐고 발톱을 깍아드린다
일흔다섯해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 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 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깍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깍아드린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어머니
호롱불 켜놓고 밤새워
콩나물 다듬으시던 어머니
날 새기가 무섭게 콩나물 다라이 이고 나가
온양시장 모퉁이에서 밤이 늦도록
콩나물 파시다가 할머니 된 어머니
그 어머니 관도 없이 흙 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쓰러져 세상을 버리셨다
손끝마다 눈을 떠서 아프던 까치눈도
고요히 눈을 감고 잠이 드셨다
일평생 밭 한 뙈기 논 한 마지기 없이
남의 집 배추밭도 잘도 잘 매시더니
배추 가시에 손 찔리며 뜨거운 뙤약볕에
포기마다 짚으로 잘도 싸매시더니
그 배추밭 너머 마을산 공동묘지
눈물도 없이 어머니 산 속에 묻히셨다
막걸리에 취한 아버지와 산을 내려와
앞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 말씀
얘야, 돌과 쥐똥 아니면
곡식이라면 뭐든지 버리지 말아라
어머니 1
박상천
아침 6시쯤이면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며칠째 들리지 않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당신이 떠나고 없습니다.
아침마다 전화를 기다리지만
당신이 내게 보내는
아침의 벨 소리를 이젠 들을 수 없군요.
세 번쯤 울리다 벨 소리가 끊어지면
그건 분명 당신이 거신 전화였지요.
전화하셨어요?
응,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싶어 놀래서 얼른 끊었다.
자식 잠 깨우지 않으려고
6시가 되길 기다리며
전화기 옆을 서성거렸을 어머니,
전화를 걸었다가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싶어
놀라서 얼른 전화를 끊으시던 어머니,
며칠째 당신의 전화를 받지 못해
제가 먼저 당신께 전화를 걸려고 해도
저는 당신 계신 곳 전화번호를 모릅니다.
당신이 늘 먼저 전화를 했듯이
새벽 2시도 좋고 3시도 좋으니
전화 한번 주세요.
열 번 스무 번 벨이 울려 깊이 잠든
절 깨워도 좋으니
전화 한번 해주세요, 어머니.
어머니2
당신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고 하셨지요.
전 그 말씀이 듣기 싫어
짐은 무슨 짐이냐고
그런 소릴 듣는 자식은 마음이 좋겠냐고
전화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지요.
당신은 제 소리에 놀라
아니다. 아니다.
니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며
아프지 않아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는다며
나이가 드니 자꾸 서글픈 생각이 든다며 울먹이셨지요.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어느 날 문득
가볍게 가볍게 날아가 버리신 어머니,
아무에게도 연락조차 하지 않고
그렇게 가볍게 날아가 버리신 어머니,
자식에게 짐이 아니라
남편의 짐을, 자식들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오히려 자식들 걱정에 속 끓이시던 어머니,
차라리 어머니가 저의 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짐이 되어 이곳에 계시는 것이 훨씬 나아요.
어머니가 짐이 되어도 하나도 무겁지 않을 거예요.
뒤늦게 후회하는 자식의 짐이 되어주세요, 제발.
짐이 되어도 소리 지르지 않을게요.
너무나 가벼워져 버린 나의 어머니.
병풍 뒤가 조용하다
김주혜
별들이 속없이 반짝이며 울울탕탕 쏟아지는 밤, 병풍바위 뒤에 어머니 숨겨놓고
터무니없이 꾸역꾸역 밥 먹는 내 손이 죄인이다. 산도 바람도 벽오동 창문도 흔들
린다. 달빛마저 숨어버린 늙은 소나무 가지에서 꽁지 빠진 까치 한 마리 날개짓하
는데 어머니는 베개에 침 흘리시며 여태 주무시는지 병풍 뒤가 조용하다.
바위 이끼
김주혜
가지 끝에 달려 대롱거리는 풍선처럼
자식이라는 혹 떼어버리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 어머니
산에서는 바람으로,
구름 속에서는 비로,
숲에서는 새가 되어
사각사각, 부슬부슬, 푸드덕푸드덕 따라오시네
눈앞은 흐리고 발길은 천 길
그리움에 터지듯한 가슴 끌어안고
나 그대로 굳어 바위 되면
울 엄미 깜짝 놀라 푸른 이끼 되어
포근히 감싸 주시려나.
걱정도 팔자
어머니 가시는 길이 온통 눈밭이다
하얗게 가셨다가 하얗게 오시려나
미움도 그리움도
고통도 부활도 모두모두 하얗게
눈꽃마다 어머니 얼굴 새겨놓고
눈꽃마다 어머니 음성 배어놓고
"조심해라, 조심해라 ,미끄러질라"
어머니 걱정도 팔자다
어머니 걱정도 팔자다.
회초리
억새가 손짓하는 곳에 눈이 내립니다. 돌아보니 내 발자국 따라
하늘이 그림을 그립니다. 바람이 그늘을 지우고 그 자리에 나무들
일제히 회초리 들고 쫓아와 철썩철썩 종아리를 때립니다. 이상하게
종아리 대신 가슴팍이 얼얼합니다. 회초리 든 어머니 손목 잡고 꼬
옥 안아드립니다. 새털같이 가벼운 어머니 어깨 주물러드리면 이내
지구보다 넓은 가슴으로 은백의 억새꽃 얼굴 환하게 웃으십니다.
어머니별
강물이 천천히 내 가슴속으로 젖어든다
어머니 가신 후 내 속에서 빠져나온 눈물이 강이 되엇다
별이 되어 만날까
물안개 되어 만날까
물비늘이 되고 물마루가 되어
굼이굽이 한서린 몸짓에
튀어오르는 물고기 등줄기가 퍼렇다
물이 된 울엄마 끝내 말이 없다.
후박나무 넓은 잎새 싸늘한 겨울 안개구름 속으로
바싹 마른 가지 끝에 달린 고드름 겨울바람 속으로
삭정이 부러뜨리는 눈바람,겨울나무 물관 속
따뜻한 나이테 속 둥근 방안에
숨어계신 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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