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자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하는 나병환자 치유 사건은 생각할수록 은혜롭고 감동적입니다. 율법학자들의 눈으로 볼때, 오늘 나병환자 쪽이나 예수님 쪽이나 둘 다 큰일 날 일을 벌였습니다.
율법 규정 따르면 나병환자들은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지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병환자는 얼마나 간절했으면 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예수님께로 다가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려도 보통 건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인들이 나병환자에게 손을 댄다든지 접촉하는 것은 율법을 크게 어기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 비참한 나병환자의 몰골을 마주 대하자마자, 연민과 측은지심의 마음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분의 손은 자동으로 나병환자의 상처투성이 피부 위에 얹어졌습니다.
말씀 한 마디, 생각 한번이면 나병환자와 접촉하지 않아도 치유가 가능할텐데, 왜 예수님께서 굳이 나병환자와 접촉하셨을까요?
율법학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사람의 손은 부정을 타고 불결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만지셨다기 보다, 거룩함으로 충만한 당신의 손, 불타는 사랑과 자비의 손을 건네신 것입니다. 결국 그분의 거룩한 손은 나병으로 더러워지지 않았고, 나병환자의 몸은 그 거룩한 손으로 인해 순결해진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한 큰 측은지심과 연민의 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은혜롭게도 오늘 우리들의 비참한 처지를 눈여겨보시고 굽어보십니다. 우리의 가련함과 절박함으로 인해 눈물 흘리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음은 행동으로 옮겨져 우리와 Touch하십니다.
곰곰히 제 지난 삶을 돌아보니, 저 역시 만성 나병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병세가 무척이나 깊어진 중증 영적 나병환자로 살아왔습니다. 여기 저기 수많은 상처 투성이와 흠집과 허물들에 괴로워하며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때로 이토록 깊은 상처들, 이 짙은 어둠들, 이 많은 흠집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줄 사목자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사목자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돌보면서, 그 상처를 통해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입니다.”(헨리 나웬)는 말씀에 용기와 희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사목자라고 해서, 수도자라고 해서, 리더라고 해서 어찌 상처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사목자의 상처는 양떼들의 상처와 고통을 수용하는 환대의 자리이며, 그들을 위한 치유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비록 우리 모두 상처투성이, 흠집 투성이, 비참함 투성이라 할지라도 용기를 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그 깊은 상처조차도 당신 사랑의 도구로 활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죄한 사람들, 흠결 하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상처뿐인 우리들, 그 상처를 수용하고, 그 상처의 의미를 파악한 우리와 함께 당신 구원의 역사를 써내려가고자 하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하는 나병환자 치유 사건은 생각할수록 은혜롭고 감동적입니다. 율법학자들의 눈으로 볼때, 오늘 나병환자 쪽이나 예수님 쪽이나 둘 다 큰일 날 일을 벌였습니다.
율법 규정 따르면 나병환자들은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지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병환자는 얼마나 간절했으면 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예수님께로 다가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려도 보통 건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인들이 나병환자에게 손을 댄다든지 접촉하는 것은 율법을 크게 어기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 비참한 나병환자의 몰골을 마주 대하자마자, 연민과 측은지심의 마음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분의 손은 자동으로 나병환자의 상처투성이 피부 위에 얹어졌습니다.
말씀 한 마디, 생각 한번이면 나병환자와 접촉하지 않아도 치유가 가능할텐데, 왜 예수님께서 굳이 나병환자와 접촉하셨을까요?
율법학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사람의 손은 부정을 타고 불결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만지셨다기 보다, 거룩함으로 충만한 당신의 손, 불타는 사랑과 자비의 손을 건네신 것입니다. 결국 그분의 거룩한 손은 나병으로 더러워지지 않았고, 나병환자의 몸은 그 거룩한 손으로 인해 순결해진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한 큰 측은지심과 연민의 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은혜롭게도 오늘 우리들의 비참한 처지를 눈여겨보시고 굽어보십니다. 우리의 가련함과 절박함으로 인해 눈물 흘리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음은 행동으로 옮겨져 우리와 Touch하십니다.
곰곰히 제 지난 삶을 돌아보니, 저 역시 만성 나병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병세가 무척이나 깊어진 중증 영적 나병환자로 살아왔습니다. 여기 저기 수많은 상처 투성이와 흠집과 허물들에 괴로워하며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때로 이토록 깊은 상처들, 이 짙은 어둠들, 이 많은 흠집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줄 사목자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사목자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돌보면서, 그 상처를 통해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입니다.”(헨리 나웬)는 말씀에 용기와 희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사목자라고 해서, 수도자라고 해서, 리더라고 해서 어찌 상처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사목자의 상처는 양떼들의 상처와 고통을 수용하는 환대의 자리이며, 그들을 위한 치유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비록 우리 모두 상처투성이, 흠집 투성이, 비참함 투성이라 할지라도 용기를 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그 깊은 상처조차도 당신 사랑의 도구로 활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죄한 사람들, 흠결 하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상처뿐인 우리들, 그 상처를 수용하고, 그 상처의 의미를 파악한 우리와 함께 당신 구원의 역사를 써내려가고자 하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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