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시집 [파르티타 6번]
비탄의 정서를 연주한다는 명곡[파르티타 6번]을 내 건 이 시집에서는 낙엽냄새가 난다. 원치 않았던 한스러운 이별이나 돌아올 수 없는 먼저 가신 이들을 기리고 흠모하는 시들에서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를 연상하게 한다. 사본에 기록되어 있던 원문자 등을갈아내거나 지운 후에, 다른 내용을 그 위에 덮어 기록한 양피지 사본을 말하는 필리프세스트는 약품이나 x선, 자외선 등을 이용하여 지우기를 하면 본래 있던 글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김주혜 시인은 자신의 오랜 시 쓰기로 정제되고 깊어진 안목으로 더 상세히 말하면 생에서 얻은 지혜와 사물에 대한 잔잔한 애정의 안목으로 표면 뒤에 씌어진 옛 문서들을 헤집어낸다. 그것들의 서사 뿐 아니라 그 당시의 정서를 복원해 낸다.
단양군 적성면 골짜기
숲속의 헌 책방에 들어서자
흙과 자갈 바닥에 뒹구는 헌 책들
그 사이로 곅독물 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책 곰팡이 냄새가 왠지 정겹다.
-[숲속의 헌책방]부분
누가 산골짜기에서 헌책방을 발견하랴. 자신이 젊은 날을 채웠던 청계천변의 헌책방을 적성면의 숲속에서 만나는 시인은 오래된 시간의 두께를 젖히고 들어가 추억을 발굴해 현전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특히 먼저 가신 이들, 되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펭이지가 많다. 하느님이 오실 수 없어 지상에 대신 보낸 이가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태어나서 하늘 아래 어머니의 희생의 사랑을 비교할 그 무엇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사모곡은 세월이 흘러도 그치질 않는다. 마르지도 않는다. 코로나가 와서 시간이 많아진 어느날, 세탁기가 아닌 손빨래를 하면서 비누거품 속에서 춤을 추던 마디 굵은 어머니의 손을 추억한다.(손빨래)
레코드판에 바늘을 올려놓고 홈을 타고 흐르는 파도를 읽으면서 조리로 쌀을 고르는 어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 듣던 물 위를 스치는 쌀알의 소리를 듣는다. (오래된 흔적)
죽은 사람들이 만든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건 내 추억 때문이라며 살아있음으로 애증의 환상을 느끼니 지평선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지평선은 시인이 아직도 추구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방향성이며 미래향일 것이다. (모차르트를 들으며)
나를 힘들게 하는 나와 만나는 순간 무의식 속에서 부모님이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두 뺨이 뜨거워진다. 숨겨진 나와 만나는 순간에도 넘어지지 말라고 내 허리를 부둥켜안는 부모님이 잠재의식 속에서 나타난다면 시인 또한 약한 이들이 허리를 붙잡아주는 이생이 헛되지 않다고 느끼고 있음이 독자에게 읽혀진다. 그 깨달음 자체가 시인에게는 지복이라고 생각한다.
김주혜시인은 일생을 써도 모자라는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를 지금도 쓰고 있다. 이 편지가 왜 이리 길어야 하는지는 사랑하기 위해 고행길을 가 본 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든 나는 이 시집의 다음 시에서 화르르 불침을 맞는다. 그러면서 모든 상처입은 피조물들을 사랑해야지....라고 감히 또 중얼거린다
상처 입은 새를 만나면
불같이 뜨거운 혀로 핥아주라 하셨나요
일몰 좋은 바닷가에서 울고 있을 때
보석처럼 빛나는 하늘에 시를 쓰라 하셨나요
어둠이 붉은 해를 삼키고
폭풍과 암흑이 밤하늘 별마저 앗아갈 때
새의 깃털을 뽑아
이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를 쓰라 하셧나요
님 안에 머물기 너무도 힘들어
도망가고 싶고,
도리질 하고 싶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이 모두 떠나버린 몸
먼지와 잿더미 위에서
갈아입을 옷 한 벌 준비하니
님이시여, 돌아봐 주소서.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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