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시평

김주혜시집해설/ 고명수시인

주혜1 2022. 9. 2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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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한 내면탐구와 마지막 점안(點眼)

 

                                                                                                                                              고 명 수

 

 

1.존재의 현현으로서의 시

 

시인은 현대의 철학자다. 플라톤이 철학함을 죽음을 준비하는 예술이라고 하였듯이 인간은 죽음에 대하여 늘 사색하곤 한다.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항존하는 죽음 속에서 불멸의 실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곧 인간이기에 삶은 고통스런 여행으로 점철된다. 고통은 육체를 지닌 인간 존재의 한 측면이다. 모든 것은 항상(恒常)하지 않고 변해가기 때문에 상실과 소멸에서 오는 고통은 시적 상념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시인들은 무상한 삶 속에서도 변치 않는 불변의 실재를 추구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빛나는 온전함을 추구하는 철학자 시인은 세상과 사람을 연민한다. ‘우주의 대사제인 인간에게 있어서 언어는 문화적 삶의 조건을 이루며 실존적 기능을 한다. 언어에는 인간의 삶 자체가 얽혀 있으므로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언어는 진리의 옷을 입고 있다. 존재를 이해하는 새로운 통로로 시를 바라본 하이거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말하면서 사상가나 시인을 이 거처를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도 시적인 언어에서만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김주혜의 시는 김주혜라는 존재의 의미와 그 총체성을 드러내는 세계이므로 그의 텍스트를 따라가면서 그가 처한 존재의 상황과 세계인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시간여행자로서의 시인

 

 우리는 어릴 때 최초 양육자와의 2자 관계 속에서 전능성을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젖을 떼면서 탯줄을 잘린 이후 두 번째 상실을 경험한다. 냉혹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면서 최초의 행복한 시간은 깨어지고 지속적인 상실을 경험하면서 인간은 성장해간다.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논문에서 프로이드는 상실로 인한 슬픔을 애도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고통이 우울증이라 하고 그것은 모든 에너지를 내면에서 소진하게 만든다고 했다. 상실을 경험하며 유년기의 전능환상은 대부분 깨어진다.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면의 공백을 확보할 때 우리는 조금씩 자유를 얻게 된다. 언어라는 상징계 안으로 들어오며 겪게 되는 거세는 빈 공간을 만드는 하나의 기제이므로, 거세로 인한 좌절이 현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내면의 공백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가상공간은 인간을 사물 그 자체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게 해 준다.  

 

  어느새 가을도 끝자락에 들어서

그 많던 잎새들도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때 푸르렀던 시간도

상처뿐이었던 시간도

곱게 차려입은 만상의 가을산도

평화롭고 거룩하게 이별 준비를 한다.

 

(중략)

 

거름이 되어 떨어지는 낙엽들.

새순을 돋게 하고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시간 앞에 서서

-「새로운 시간 앞에 서서부분

 

 시간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시에서 화자가 느끼는 인생의 시간은 가을이다.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요, 행복과 충만으로 가득했던 시간도, 마음이 아리고 괴로웠던 시간도 다 내려놓고 평화롭고 거룩하게떠남을 준비하는 때이다. 이처럼 떠날 준비를 하는 일은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인생의 전반기가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면, 인생의 후반기는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한 심리학자가 말한 바 있듯이, 중년 이후의 삶이란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삶을 회상하고 남은 생을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바닷가, 검은 물떼새 날아가는 모래사장

한 남자가 흰 물감을 흠씬 묻힌 붓을 들어

검은 캔버스에 하얀 숫자를 풀어놓는다

로만 오팔카를 닮은 남자,

검푸른 바닷물에서

하얀 시간을 끄집어내려는 듯

그의 흰 셔츠 등판에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까지

흰 붓끝이 되어 눈부시게 흔들린다

막 가라앉기 시작하는 검은 시간들이

붓끝으로 몽땅 끌어올려져 하얀시간이 되어

검은 캔버스에  쌓인다

어두운 내 시간도 꺼내 그의 붓끝으로 던져버렸다

하얗게 채워지는 희망의 숫자들

하얀 나비떼가 검은 캔버스에 가라앉자.

하얗게 드러나는 숫자, 숫자들  

마침내 그가 붓을 놓는다.

비로소 완성되는 다가오는 시간.

-「시간을 그리는 남자전문

 

 완벽한 무능력의 상태로 태어난 인간은 양육자의 보살핌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으므로, 유년기부터 타인의 욕망에 부응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살아야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은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을 창조하기 위해 시를 쓴다. 타인의 시간 속을 방황하던 햄릿이 마침내 나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다라는 자각에 이를 때, 비로소 참된 자신의 시간에 살 수 있었다.

 위의 시에서 화자는 검은 시간에서 하얀 시간으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무한-소멸을 그린 화가인 로만 오팔카를 매개로 하여 화자는 자신의 어두운 시간을 꺼내 그의 붓끝으로 던져버린다. 흑과 백의 시각적 효과가 두드러지는 위의 시는 그림이라는 예술작품과의 동화를 통하여 완성의 시간즉 희망과 통합의 시간을 꿈꾸는 화자의 내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 내 귀,

두 귀 모아 즐겨듣던 노래들이

내 귀속에 숨어 살고 있다

 

새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

나팔꽃에게 전해 듣던 이야기

당신의 손을 놓은 자리에 별이 떠

바위나리를 잊지 못하는 아기별처럼

 

감추기 위해 말이 많던 지난날

수많은 사연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꿀먹은 벌처럼 윙윙

귀 없는 새처럼 지즐지즐

 

한동안 마주보지 않은 눈目과

귀담아 듣지 않던 말言들의 반항인가

바위나리처럼 숨어 우는 이명耳鳴.

-「숨어 우는 바위나리전문

 

 노년기의 제일 과업은 자아통합에 이르는 길이다. “내 귀 속에 숨어 살고 있던 소리들, “새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 “나팔꽃에게 전해 듣던나만의 이야기로 가득한 나의 노래를 부를 때 비로소 자기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자아통합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실을 털어내고 부질없는 허상을 떨쳐내고 마음속의 거리와 공백을 확보해야 한다. 타인의 소리에 매몰되던 시간들, 이를테면 감추기 위해 말이 많던시간들과 수많은 사연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꿀먹은 벌처럼 윙윙/ 귀 없는 새처럼 지즐지즐대던 시간들을 벗어날 때, 한동안 마주보지 않은 눈目을 바라보고, “귀담아 듣지 않던 말言들의 반항에 귀 기울일 때 비극은 희극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시간에 살고 자신의 리듬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한 시간에 도달하기 위해 화자는 지금도 바위나리처럼 숨어 우는 이명耳鳴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3. 시를 통한 애도와 슬픔의 치유

 

김주혜 시의 화자는 고독하고 출렁이는 낭만적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지금-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시간적으로 아득한 과거의 시간, 공간적으로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낭만주의자의 형상이다. 그러므로 그는 가슴이 뜨거우며 그의 내면은 돈내코숲처럼 아기자기하고 깊다. 필멸의 운명을 지닌 채 걸어가야 하는 현실에서의 삶에서 그의 가슴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놓쳐버린”(숲속의 헌책방) 시간을 그리워하며 방랑하는 화자는 인고의 시간들을 견디며 부활하는 과거의 유물들을 찬미하기도 한다(피맛골 항아리).

 

기러기 날아간 저녁답

 

달그림자 드리운 장독대 위

 

금간 달항아리

 

제 홀로 달 보듬고

 

눈물 그렁그렁.

-「달항아리전문

 

시의 이미지들은 상처의 흔적을 재구성한다. 상실의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보상으로서의 희열은 고통스러운 쾌락혹은 영원히 만족시킬 수 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데서 발견되는 역설적인 만족이다. 위의 시에서 보듯 금간 달항아리로 표상된 시적 주체는 깨어진 주체, 혹은 결핍의 주체이다. 결핍과 충만의 순환을 상징하는 달의 형상을 모방한 달 항아리는 금이 간 채로 제 홀로달을 보듬고장독대 위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러한 화자의 슬픔은 근원적 상실에서 오는 것이므로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정서를 수반한다. “찬란했던 기억때문에 그리움을 품게 되고 그것은 한 편의 시가 된다(외로움의 찬가).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서 시를 쓰는 행위는 근원적 슬픔에 대한 애도의 행위이며 내면의 공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글렌굴드가 연주하는 파르티타 6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납골당에서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간 이들에게

나자로야 일어나라 했던 예수처럼

그들을 불러 깨우고 싶다

조선시대 백자인 양

고려시대 청자인 양

위장한 모습으로 이름 석 자

먹빛으로 내리는 어둠에 몸을 섞은 이들

누구누구의 아비요, 어미였던

누구누구의 숨결이요, 심장이었던

그림자 없는 그들을 위해

얼었다 녹고, 또 언 시간들 모두 펼쳐놓고

그리움으로 무너진 가슴뼈를 보여주며

나자로에게 한 주문을 걸어본다

이미 생의 지도에서 점점이 사라진

그들 운명의 표지를

이제와 눈물로 바꾸려 하는 나를,

신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은 나를,

글렌굴드의 애절한 선율이 다듬어준다.

-「파르티타6전문

 

 삶은 상실의 연속이다. 부친을 잃은 햄릿은 긴 애도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 자신의 시간을 되찾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자아에 도달할 수 있었다. 햄릿이 간절하고도 절실한 독백을 통해서 자신을 애도해 나갔듯이 시인들이 시를 쓰는 행위 또한 삶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상실의 슬픔에 대한 애도의 행위로 볼 수 있다. 위의 시에서 화자는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파르티타라는 음악을 매개로 하여 필멸(必滅)의 존재인 인간의 운명과 상실에 대한 절절한 애도의 감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움으로 무너진 가슴뼈를 보여주며슬퍼하는 화자를 위무해주는 것은 음악이라는 예술이다. 문학과 음악과 미술을 망라하는 예술이라는 지식은 오랜 기간 동안 인류가 창조해온 대타자의 주이상스이며, 대부분은 주인기표의 개입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시인의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에 의해 인간의 보편적인 꿈과 슬픔에 대한 애도는 보다 풍요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고 있다.

 

다이어리를 작성하다

 

컴퓨터 앞을 잠시 떠나면

 

물방울들이 급히 몰려와 경호를 한다

 

색색의 물방울이 부딪쳐도 소리하지 않고

 

산란産卵의 구슬로, 사랑의 눈망울로

 

흐르는 강물소리 가득하다

 

그 모습에 우쭐한 나는  

 

종종 작업을 멈추고

 

김창열 화백의 시그니처 뒤로 숨는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공空은 색色, 색色은 공空으로

 

방울방울 점 하나 하나

 

나를 꿰뚫고 지나간다.

-「물방울전문

 

위의 시에서 화자는 이제 색색의 물방울이 부딪쳐도 소리하지 않는 시간, “산란産卵의 구슬, “사랑의 눈망울로 흐르는 강물소리 가득한 행복과 평화의 시간에 도달한다. 색과 공이 둘이 아닌 완전한 원의 형상을 한 물방울의 시간, 그것은 곧 상실을 털어내고 부질없는 허상을 떨쳐내고 마음속의 거리와 공백에 도달하는 시간, 온 천지에는 진정한 나, 참나밖에 없는 궁극적 실재의 시간, 진공묘유(眞空妙有)와 진아(true self)의 시간일 것이다.  

 

 

4. 마지막 점안과 자아초극의 길

 

 칼 융은 나이 듦에 대해 그것은 가차 없는 쇠락이 아니라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점진적으로 치밀한 사고를 하는 시기라고 했다. 노년의 시기는 진정으로 무르익고 온전히 만개하는 성숙을 향한 마지막 정련의 기회이다. 내면의 성장과 영성의 발달이 후반부 삶의 중요한 과제라면, 이 시기는 한 인간의 고유한 개성이 본래의 가치대로 영예와 위엄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마지막 점안을 시도하는 때인 것이다. 그래서 T.S.엘리엇은 노인은 탐험가들이어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결핍, 그로 인해 생겨나는 그리움으로 방황하던 화자는 찬란했던 젊음의 기억들을 뒤고 하고 기나긴 애도의 과정을 거쳐 무욕과 달관의 시간, 담백한 평화의 시간에 이른다.

 

여름의 끝자락

모두 다 떠나간 연못 한가운데

마지막 남은 연잎이 꼿꼿하게 서 있다

맑은 곳에 뿌리를 두지도

물 한 방울 욕심내지 않은

그 영롱한 색깔

그 우아한 봉오리로

두 손 합장하게 하더니

진초록 색깔마저 내어준 후

갈색의 바수어진 잎마저 사바세계를 향해

보시하려는가

남은 생마저 물빛에 우아하다

-「연잎의 자존심전문

 

위의 시에서 화자는 자신을 모두 다 떠나간 연못 한가운데서 있는 연꽃의 마지막 남은 연잎에 빗대어 그 꼿꼿함과 대범함과 무욕의 아름다움을 그 영롱한 색깔그 우아한 봉오리라고 찬미하고 있다. 그것은 화자로 하여금 두 손을 합장하게 만드는 거룩함마저 지니고 있다. 마치 뭇 중생이 속으로 들어가 그 잡다한 사바의 세계에 머물면서도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보살의 모습, 성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진초록 색깔마저갈색의 바수어진 잎마저뭇 생명을 향해 다 내어준 채로 남은 생마저 물빛에 우아한 연잎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어쩌면 화자가 지키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인 동시에 화자가 바라마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이러한 마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낭떠러지에 머물고 척박한 곳에서 진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나무들이 서로

부딪치며 산을 울린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바람은 가볍다

노래하는 나무가 되기 위해

좋은 자리를 마다한 가문비나무는

낭떠러지에 기울고 물살에 쓸려도

척박한 곳에서 진동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상처난 곳은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옹이 진 곳은 더 깊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방해되는 가지를 자르고, 잎을 떨구며

어느 장인의 손길의 손길을 기다리며

공명의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

죽음을 미리 배우고 있다

-「가문비나무에게 듣는다부분

 

위의 시에서 화자는 가문비나무라는 오브제를 통하여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 낮은 곳에 머물면서 노래하는 나무가 되고자 한다. 상처를 승화시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옹이진 곳을 심화시켜 더 깊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해되는 가지들을 잘라내고 갇힌 삶의 굴레부터 벗어나자유로워져야 한다. “단순한 아름다움(「돌고래에 관한 보고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한 마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을 미리 배워야 한다. 즉 이기적인 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기의 죽음에 도달해야 한다. 즉자적인 세계에서 대자적인 세계로 나와야 한다.

 

그대 있음에

나 향기로워지네

햇살도 기운을 차려

동동동 굴러다니고

나뭇가지 사이

바람도 산책을 나와

새들에게 길을 열어주네

나그네처럼 그 길을 걸어

구름이 말을 걸어오네

그대 있음에

나 가벼워지네

맑아지네

작은 새처럼

쫑쫑쫑 노래 부르고 싶네.

-「이팝나무 아래에서전문

                 

 위의 시에서 화자는 자신만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즉자(卽自)의 세계에서 비로소 의식적 존재자가 자기 안에 대상적 존재를 간직하여 그것에 관계하는 대자(對自)의 세계로 나아감을 확인할 수 있다. 물아일체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시간, 자연의 희열로 인해 생명이 약동하는 세계,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에서 언급한 바처럼 생명은 전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물결과도 같은 시간에 이른 화자의 진술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대 있음으로 인해 내가 가벼워지맑아지는 치유와 구원의 시간에 도달하여 노래 부르고 있는 화자를 발견한다.

 

 

5. 생명의 지속과 사회적 연대  

 

 구속이나 장애가 없는 자재의 상태를 우리는 자유라고 부른다. 자유는 서양의 리버티 혹은 프리덤의 개념에서 온 것인데, 여기에는 자연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 철학적·자기실현으로서의 자유와 인간 존재의 조건으로서의 자유,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등 다양한 개념이 포함된다. 붓다가 생로병사라고 하는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 해탈을 추구한 것은 일체 존재의 온갖 부자유로부터의 탈피라고 하는 과제를 실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자유와 고통의 원인을 불교에서는 무명(無明)을 근본원인으로 한 12연기와 그 해결을 위한 6바라밀, 8정도라는 수행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와서는 이러한 개인적 자유도 사회적 자유가 없이는 도달하기가 어렵고 사회적 자유 역시 개인의 인격적 상승 없이는 실현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잔디잡초의 관계처럼 생명은 얽혀 있어서 나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고통에 빚지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소승적 깨달음에서 벗어난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물어보자.

고개 떨군 꽃, ,나무야

아무도 찾지 않는 이 험한 숲속을 어찌 견디느냐

온갖 색채와 향기, 새와 짐승들에게

온전히 자리를 내어주니 행복하다고?

다시 물어보자

우리 어머니 어찌 살아오셨는지

온전히 자식 위해 삶을 내어주고

저 세상 가실 때 행복하셨는지

아니 아니지,

어머니 향기로 가득 찬

내 살과 피, 온몸 구석구석은

영원히 잠들지 않는 거대한 숲이 되었지

그 푸르름 속에 사랑의 열매가 들어있고

그 푸르름 속에 내 생이 이어지는 것이지

-「어머니 숲전문

 

위의 시에서 우리는 생명의 공생과 그 면면한 지속을 느낄 수 있다. “내 살과 피, 온몸 구석구석영원히 잠들지 않는 거대한 숲이 된 것은 온전히 자식 위해 삶을 내어주신 어머니의 헌신으로 가능했으므로 나의 목숨은 어머니의 향기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 거대한 생명의 푸르른 숲속에 사랑의 열매가 있는 것이고, 나의 삶도 이어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면한 생명의 지속과 계승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통과 희망의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너와 나. 우리가 손에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주고받으면 숲이 된다

네가 낳은 아이와

내가 기른 아이가

봄비 맞으며 벙긋벙긋

칼바람 눈서리 언 땅 속

서로의 뿌리를 얽고 견디며

숨소리마다 푸른 싹을 틔울 때

천년의 사랑이 시작된다

 

(중략)

 

우리가 왜 빈가슴으로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되는 숲이 된다

-「우리가 숲이 되는 이유전문

 

위의 시에서 화자는 너와 나우리가 되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주고받으면아집으로 분열된 공동체가 화합과 통합의 공동체, 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화자는 네가 기른 아이와 내가 기른 아이가 함께 어우러져 웃는 모습과 함께 칼바람 눈서리 언 땅 속과 같은 고난의 시기에는 서로의 뿌리를 얽고 견디며” “푸른 싹을 피워내는 고통의 연대를 함께 제시하며 고통과 행복을 함께 공유하는 천년의 사랑을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이상적인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로가 빈가슴을 지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수반된다. 이러한 자각을 지닌 화자는 작금의 사회적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고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과 함께 기성세대로서의 자각에 이르러 다음 세대들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꽃들에게 미안하다

서둘러 꽃망울을 터트린 것이

우리 아이들의 위기를 알리려 한

신호였던 것을…!

비상식과 비이성의 차가운 현실 앞에서

공생보다는 이기적인 바람만이 부는

이 탐욕의 사회를 만든 건 우리들이니

수백미터 차디찬 배밑바닥에서

눈도 못 감고 떠다닐 아이들 생각을 하니

일상의 일마저 덜컥덜컥 양심에 걸려

미안하다. 꽃들아!

-「꽃들에게 미안하다부분

 

위의 시에서 화자는 기후위기로 인해 조기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상현상을 지적하며 날씨를 예측하며 농사를 짓던 과거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의 질서와 균형을 깨어지게 한 기성세대로서 다음 세상을 살아가야 할 후속세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피력하고 있다. “공생보다는 이기적인탐욕의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와 비상식과 비이성의 차가운 현실을 질타하며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할 후손들에게 미안하다, 꽃들아!”라고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현실인식은 분단의 아픔을 토로하기도 하고(「아침신문」) 물질주의에 침윤되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현실(「우리가 사는 세상은」)을 풍자하기도 한다.

 

 

6. 삶에 밀착된 서정시를 향한 시인의 꿈

 

 시인은 남달리 예민하고 외로운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의 내면은 풍요롭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언명처럼 시는 사실의 경험이므로 시인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가능하다면 80년을 두고 꿀벌처럼 열심히 꿀과 의미를 모아야하는 존재이다. 릴케가 󰡔말테의 수기󰡕 에서 천명하고 있듯이,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都市), 많은 사람, 많은 책을 보아야 한다.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를 느껴야 하고, 아침에 피는 작은 풀꽃의 고개 숙인 부끄러움을 알아내야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시인의 사명과 본질을 잘 드러낸 것이다.

김주혜 시인도 다음 시에서 보듯이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다짐을 피력하고 있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덜커덩거리는 창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

되살릴 수도 있어야 하고

여행 끝에 만난 다람쥐에게도 사랑을 느껴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어떤 몸짓으로 꽃은 피며,

어찌하여 달빛은 잎새마다 얼굴을 다는지

그 추억으로 즐거워야 하며 또 잊어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쓸쓸한 시니피앙이 되어야 하고

우연한 순간에 짙은 에로틱에 녹아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떠날 채비를 하는 서쪽하늘,

풀벌레와 돌멩이들,

함께 노래 부르고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전문

 

위의 시에서 화자는 한 줄의 시를 위하여다양한 경험을 해야 쌓아야 함을 피력하고 있다. 주변의 사람과 사물들에 남다른 사랑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꽃의 몸짓을 바라보고 달빛의 표정을 읽고 즐거워해야 하며,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쓸쓸한 시니피앙이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처럼 일반 사람들이 무심히 흘려보내고 간과하는 존재들에 대해 남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따뜻한 감성으로 느껴야 한다. 꽃들은 엉덩이로 시를 쓴다에서 천명하고 있듯이 시인은 바람만 잔뜩 든 입술로 투덜투덜 갈 지之자만 그리는 시를 써서는 안 되며 삶에 밀착된 진정성 있는 시를 써야 함을 자각하고 있다.

 

소리를 듣는 게

왜 병病이라는 걸까

 

(중략)

 

무슨 걱정을 그리 하니

세상은 더 시끄러운 걸

 

너무 많은 고해告解를 했지

 

내 노래는 언제나 들을까.

-「나는 너무 많은 소리를 듣는다 부분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이라는 영화에 보면 귀가 멀어져가는 베토벤이 나의 머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어. 절대 멈추질 않아, 악보를 쓸 때 빼곤. 신은 나를 음악으로 채웠어라고 하며 너무 많은 소리가 들린다고 힘들어하는 장면이 나온다. 위의 시는 그 장면을 연상시킨다. 시인은 영혼의 세계를 탐구하는 자이다. 시인들은 그 내면에 영혼의 지진계를 지니고 있어서 영혼의 미세한 파문과 진동을 예민하게 느끼는 자들이다. 남달리 예민한 고감도 안테나를 지니고 있으니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소리를 듣는 게 병病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파동소리를 듣는 것이 시인이다. 그러한 생명의 소리를 듣는 것은 곧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은 소란하고 화자 역시 살아오면서 많은 잘못을 행하고 고해(告解)를 하기도 했다. 우리의 무의식은 타인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속에서 마음의 공백을 지켜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이 시인의 길이고 성숙한 자아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내 노래는 언제나 들을까라는 화자의 소망은 소란스런 타자들의 이야기를 다 비워내고 공백의 상태를 이룬 뒤에 오롯이 나의 노래로 가득 채울 날에 대한 기대를 보여준다.

 고독하고 풍요로운 내면을 지닌 김주혜 시인은 생명과 존재의 파동을 노래하며 삶에 밀착된 진정성의 시를 추구한다. 타자에 예속된 시간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던 시인은 새로운 시간에 들면서 자기만의 시간에 도달하고자 내면의 탐험을 지속하여 자아통합을 꿈꾼다. 근원적 상실로 인한 그리움으로 충만한 결핍의 주체였던 시인은 예술작품을 매개로 한 깊은 애도의 과정을 거쳐 내면의 성장과 영성의 발달을 통해 마지막 점안을 시도한다. 연잎의 자존심에서 보여주듯 시인은 갇힌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마침내 무욕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성자의 모습에 도달한다. 즉자적인 시간을 벗어나 대자적인 시간에 이른 화자는 잔디와 잡초처럼 얽힌 존재의 실상을 직시하고 고통과 희망의 사회적 연대를 꿈꾼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탐욕의 기성사회를 비판하는 시인은 후속세대들에게 미안함을 피력하기도 한다. 김주혜의 시가 더욱 넓고 깊어져서 디지털 환경 속에서 피폐해져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영성적 깨달음과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                          (시인, 전 동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