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시인, 신작 시집 『파르티타 6번』 발간
박제천
영성의 깨우침과 예술미학의 성취
고독한 내면탐구, 생명과 존재의 파동
김주혜 시인의 신작 시집 『파르티타 6번』이
문학아카데미시선 322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은 제1부 <돈내코숲의 다이어리> 제2부 <파르티타 6번> 제3부 <숲속의 헌책방> 제4부 <선문답>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에는 고명수 시인(전 동원대 교수)의 해설 「고독한 내면탐구의 미학적 성취」가 수록되었다. 고명수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고통과 희망의 사회적 연대를 꿈꾸는 시인의 미학적 성취가 더욱 넓고 깊어져서 디지털 환경 속에서 피폐해져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영성적 깨달음과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며 새시집 발간의 의의를 새겼다. 더불어 박제천 시인은 “삶의 무상과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교직하면서 겹쳐지는 영성의 깨우침과 예술미학의 성취”를 상찬하고 있다.
고독하되 풍요로운 내면을 지닌 김주혜 시인은 생명과 존재의 파동을 노래하며 삶에 밀착된 진정성의 시를 추구한다. 타자에 예속된 시간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던 시인은 새로운 시집을 통해 자기만의 시간에 도달하고자 내면의 탐험을 지속하여 자아통합을 꿈꾼다. 근원적 상실로 인한 그리움으로 충만한 결핍의 주체였던 시인은 예술작품을 매개로 한 깊은 애도의 과정을 거쳐 내면의 성장과 영성의 발달을 통해 미학적 성취를 시도한다. 시 「연잎의 자존심」에서 보여주듯 시인은 갇힌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마침내 무욕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성자의 모습에 도달한다. 즉자적인 시간을 벗어나 대자적인 시간에 이른 화자는 잔디와 잡초처럼 얽힌 존재의 실상을 직시하고 고통과 희망의 사회적 연대를 꿈꾼다. 이러한 김주혜의 미학적 성취가 더욱 넓고 깊어져서 디지털 환경 속에서 피폐해져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영성적 깨달음과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 ―고명수(시인, 전 동원대 교수)
김주혜 시인은 1990년 신경림, 이근배 시인이 심사한 『민족과 문학』 신인상에 지금까지도 작시법의 전범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작품 「스트레스]」로 당선했다. 등단 이래 시집은 『때때로 산이 되어』 『아버지별』 『연꽃마을 별똥별』 등 3권을 출간할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 엄격한 과작의 중견시인이다. 시인은 특히 “세밀한 묘사와 분위기 연출을 통해 작품의 전경과 후경의 이중적인 장치를 아우르는 테크닉과 상상력”이 뛰어나고, 거침없이 시의 매직 포인트를 찾아내는 신선한 눈매, 깊은 시력, 역동적인 상상력의 전개”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번 시집 『파르티타 6번』 역시 ‘뜨거운 얼음’으로 불리는 글렌 골드의 작품을 배경으로 삶의 무상과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교직하면서 겹쳐지는 영성의 깨우침과 예술미학의 성취가 긴 여운을 남기고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박제천(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
▶프로필: 서울 출생. 수도여사대 국문학과 졸. 1990년 『민족과 문학』 등단
시집 『때때로 산이 되어』 『아버지별』 『연꽃마을 별똥별』
2017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수상. <시와 함께> 동인.
E메일: 1juhye@hanmail.net 전)010-5019-9709
▶문학아카데미: 03084 서울시 종로구 동숭4가길 21, 낙산빌라 101호
tel) 764-5057 fax) 745-8516 ▶B5판·반양장 116쪽/ 값 10,000원
<시인의 말>
하늘이 텅 빈 채로 살아오면서
내 속에 묵혀 있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얼마나 절실했는지
떠나보내고, 내려놓고, 늘 잃을 준비를 하면서도
끌어안고 있던 애(詩)들에게
10년 만에, 네 번째 집을 지어 준다
묵은지처럼 곰삭은 애(詩)들에게
우리 엄마의 묵은지 손맛을 기대한다.
2022년 시월 상달
김주혜
<좋은시>
파르티타 6번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파르티타 6번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납골당에서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간 이들에게
라자로야 일어나라 했던 예수처럼
그들을 불러 깨우고 싶다
조선시대 백자인 양
고려시대 청자인 양
위장한 모습으로 이름 석 자
먹빛으로 내리는 어둠에 몸을 섞은 이들
누구누구의 아비요, 어미였던
누구누구의 숨결이요, 심장이었던
그림자 없는 그들을 위해
얼었다 녹고, 또 언 시간들 모두 펼쳐놓고
그리움으로 무너진 가슴뼈를 보여주며
라자로에게 한 주문을 걸어본다
이미 생의 지도에서 점점이 사라진
그들 운명의 표지를
이제와 눈물로 바꾸려하는 나를,
신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은 나를,
글렌 굴드의 애절한 선율이 다듬어 준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덜커덩거리는 창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
되살릴 수도 있어야 하고
여행 끝에 만난 다람쥐에게도 사랑을 느껴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어떤 몸짓으로 꽃은 피며,
어찌하여 달빛은 잎새마다 얼굴을 다는지
그 추억으로 즐거워야 하며 또 잊어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쓸쓸한 시니피앙이 되어야 하고
우연한 순간에 짙은 에로틱에 녹아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떠날 채비를 하는 서쪽하늘,
풀벌레와 돌멩이들,
함께 노래 부르고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
상처 입은 새를 만나면
불같이 뜨거운 혀로 핥아주라 하셨나요
일몰 좋은 바닷가에서 울고 있을 때
보석처럼 빛나는 하늘에 시를 쓰라 하셨나요
어둠이 붉은 해를 삼키고
폭풍과 암흑이 밤하늘 별마저 앗아갈 때
새의 깃털을 뽑아
이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를 쓰라 하셨나요
님 안에 머물기 너무도 힘들어
도망가고 싶고,
도리질하고 싶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이 모두 떠나보낸 몸
먼지와 잿더미 위에서
갈아입을 옷 한 벌 준비하니
님이시여, 돌아봐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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