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 묵시록
- 조광호신부
때는 2024년 12월 3일. 엄동의 한밤중
무궁화 나무에 썩은 오징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이 무슨 해괴하고 불길한 징조인가?
오징어 게임 영화에 나오던 ‘얼굴 큰 여자’를
쏙 빼닮은 외눈박이 큰 얼굴,
아니, ‘외눈박이 얼큰’이 아닌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이게 무슨 일인겨?
잠자리에 든 온 국민에게 ‘오징어 게임’ 비상을 거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지금부터 내 맘에 안 드는 놈들과
나를 괴롭히며, 까부는 놈들은 모두 꼼작 마라
움직이면 가만 안 놓아둘 거다’
아직도 잠이 덜 깬 사람들과 달콤한 선잠에 취한 사람들은
서로 어깨를 흔들며 내 정신이 옳은가?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눈을 비비고 코를 비비며
하하 저놈이 술에 취한가보다.
’아 하 하 하
저놈이 이 평화로운 오 밤 중에 심심한가 보다
그래도 설마
’아하하 저놈이 재밌는 오징어 게임을 하는가 보다. ‘하다가
아니, 저놈이 돌았는가 부 다 놀라다가 또다시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내 말이 끝났을 때 움직이는 놈들과
‘지금부터 내 맘에 안 드는 놈들은 모두 꼼작 마라’
움직이면 처단하고 척결한다. ‘꼼작 마라!
’척결한다. 처단한다. ‘라는 살기 등등이 격양된 그의 계엄 엄포가
점점 더 살벌한 결기가 비치자
비로소 오천만 국민은 처음으로 그의 선포가
게임 엄포가 아니라 비상계엄선포인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아이고머니나, 이를 어쩌지, 이게 무슨 날벼락, 똥 벼락이야.
아니, 그래도 믿을 수 없어
TV 화면에 징을 박듯 시선을 고정하며
숨을 멈추고, 눈을 비벼도 보고, 고개를 흔들어도 보기도 하는데
국회의사당 하늘에 검은 헬기가 뜨고
괴물 같은 검은 짐승이 괴물을 토해내듯
쌍 뿔 달린 계엄 공수특전 대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이고머니나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이고머니나 개그인 줄 알았는데
아이고머니나 그냥 게임인 줄 알았는데
아이고머니나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아이도 어른도 개도 고양이도
온 국민이 일제히 다 깨어나 숨을 멈추며
국회의사당 유리창 깨는 소리에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데
검은 하늘에 또 다른 검은 헬기가 그르렁거리는 날짐승처럼
여의도 밤하늘을 휘졌고, 40년 전 광주의 하늘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머니나 아이고머니나
아이고머니나 이를 어째지, 이를 어째지
살기가 등등하여 기가 막히고
오금이 찌릿찌릿 일촉즉발 가슴 조여
숨이 멎고, 가슴 치미는 순간이었습니다.
숨 막히고 내면이 흔들리는 강렬한 불안은
모두 가슴 속에서 폭풍이 몰아치며 폐를 조여
두려움과 긴장으로 심장이 시커먼 주먹에 움켜잡힌 듯
쪼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불안과 고통이 가슴을 옥죄여 오고,
어떤 이는 심장이 가시덩굴에 휘감긴 듯 조여오고,
또 어떤 이는 폐부 깊숙이 얼음송곳이 박힌 듯 숨이 막히고
숨이 가빠지고 차가운 불안감과 극도의 긴장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뇌를 찌르고,
목과 머리까지 활 활 분노의 불길을 지르더니
온몸이 일순에 낭패와 낙망의 낭떠러지 앞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피비린내 나는 광경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이게 어인 일인가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어둠 속에서 은밀한 밀정으로
총기를 앞세운 칠공칠 저격수들
뿔 달린 무장 계엄군과 자다 일어난 날개 없는 천사들 사이에
눈앞에 가믈 가믈, 밀고 밀리는 몸싸움 실랑이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싸움도 전투도 분노도 아닌 부드러운 물매 실랑이가 음악처럼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 밑에 흐르는 또 하나의 물결 같았고
마치 큰 물통에 담긴 물을
성질 사나운 사람이 흔들어 놓아 출렁이는 물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상야릇한 춤사위 같은 물매 너울 실랑이
저 어둠 출렁이는 물이랑 너머로 그 누가 오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은 계엄군과 날개 없는 천사들 마음을 지나
뜨거운 심장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울고 있었지만, 눈물은 없고, 그들은 소리치고 있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애원의 영가로 ’안 된다. 안된다.
다시 그러면 안된다, 안된다.’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누군지 끝내 알지 못하고 지쳐 잠들었습니다.
꼬박 밤을 새우고 어지럽게 침대에 쓰러져 막 선잠이 들려는데
내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쓱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빛은 빛의 그림자 같은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묘상하게 그 빛은 소리 내는 빛이었습니다.
나는 잠결에 소스라쳐 놀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내 의식의 저 낯선 기슭에서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저 빛고을에서 소년이 온다.’라고
나의 뇌리에 희미한 화약 냄새를 풍기며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12월 3일 밤 10시부터 12월 14일 오후 5시까지 그러니 꼬박 열하루,
더 정확하게는 259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악몽 같은 259시간이 지났습니다.
BC 259년. 잔인한 폭군 진시황이 태어날 때도
엄동의 한밤중에 오동나무에 똥 벼락이 내렸다는데
무궁화 나무에 피었던
불길의 징조 썩은 오징어 꽃은
열흘이 지나!
언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닌 밤중에 나타난 그 괴물은
슬픈 시대가 낳은 한국형 돌연변이
외눈박이 *사투르누스였습니다.
자기 혈육을 잡아먹던 그 괴물은
이제 권력에 저항하는 모든 인간은
모략과 음해로 끌어들이고
모반과 반역 협의를 조작하여
‘아주 이참에 싹 잡아들여 처단하라’라고 소리치며
분노의 불길로 자기 몸에 불을 붙여
열흘 밤낮,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다
동토에 피 묻은 홍채가 되어 떨어졌습니다.
그 괴물은 해동되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되살아나 분노의 불길로 되살아날지 모르는
환각 자색 홍채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은 겨울입니다.
다행히도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 삼척동자도 계엄과 게임이 다르다는 것은
진실과 거짓이, 진짜와 가짜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불과 열흘 만에 7,045만 온 국민이
이제 훤히 다 알아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대 한 민 국 만 세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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