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궤변의 꽃

주혜1 2025. 1. 4. 18:41

궤변의 꽃이 만발한 공화국에서
우리는 어떻게
궤변에서 진실로,
분열에서 연대로 나갈 수 있을까?

궤변(詭辯, sophistry)이란 얼핏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둘러대어 논리를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의 변론을 말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말을 가리켜 ‘궤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온갖 거짓말이 참말로 둔갑하여 온 나라를 들쑤셔 대고, 선한 사람들의 양심에 무서운 빨대를 꽂아 착혈과 수혈을 서슴지 않고 있다. 혼란과 혼란이 거듭되는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 경제, 사회적 무질서 속에서 끊임없이 위기 경고를 보내고 있다.

끝없는 갈등과 대립으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국가가 되고 있다. 이 불안정으로 주가는 급락했고, 환율 불안정은 외환 위기가 코 앞에 와 있어 경제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외교는 그 주체를 상실했고, 정치적 지도력은 바퀴 빠진 자동차처럼 되어 오도 가도 못하고 그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다.
국민과 지도자 간의 신뢰가 무너진 지 이미 오래되었고 그 붕괴한 신뢰로 사회적 연대는 마른 검불처럼 약화하여 곳곳에 갈등의 불씨가 자라나고 있다.

통치 행위로서의 "계엄"이라는 발언들은 위헌적이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괴변으로 정치판을 혼란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계엄은 고도의 통치 기술’ 계엄은 세련된 정치예술’로 생각하며 국민을 얕잡아보는 오만방자 하고 기고만장한 뻔뻔스러움에 많은 국민은 치를 떨고 있다. 전혀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는 철면을 두른 집단은 윤리와 진실이 사라진 공터에 문이 없는 화장실 국가를 만들고 있다.

오로지 당위 당략만을 위하는 한국의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은 법으로 가져가고 법으로 풀어야 할 일은 정치로 가져가서 해결해야 할 사항을 온갖 궤변과 사실 왜곡으로 개인과 집단으로 자기 욕심의 더러운 오욕의 늪에 빠져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의 삶은 동토의 마른나무처럼 피폐해지고 메말라 가고 있다.
그렇다. 기만적인 거짓 궤변은 신뢰를 저하할 뿐 아니라, 국가의 도덕적 기반을 깡그리 무너뜨려 혼란을 더욱 가중해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다.
하느님을 종 부리듯 이놈 저놈하고, 하나님이 사탄을 시켜 큰 재앙을 내렸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하는 한국 개신교는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하다.
그리고 그 광신자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소위 보수 정치인들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궤변은 악마의 언어이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거짓말로 상황을 호도하는 독이 든 악마의 언어다. 극도의 이기적인 독을 지닌 악의적인 거짓말은 청산가리보다 더 독하다. 이 무서운 독은 그릇에 든 것을 모조리 녹이고 나중에 자기를 담은 그릇마저 녹이는 지독한 독이다.
이런 청산가리를 너무나 태연하게 자기들을 뽑아 준 선한 사람들의 앞에 뿌리면서도 너무나 태연한 정치인들은 지도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죽음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 악마의 졸개들이다.
오늘 검찰의 기소대로 한 사람의 철저한 지시로 이미 ‘내란’이 확연한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내란에 연루된 그 주요 인물들이 다 갇혀 있어도 그 내란의 수괴는 버젓이 살아 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맞닥뜨린 악의 현실이다.
언제나 자기 살길만을 찾는 악마는 그 우두머리를 목숨을 걸고 보호한다. 그 머리가 무엇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기가 살기 위해 조건이 없이 막무가내로 몽니를 부리며 끊임없이 때를 기다리는 이들은 숨은 야수 같다. 이들은 시간이 가면 지치게 되어 진위와 승부가 묘연해지는 치킨께임을 끝없이 만들어 낸다.

이 사실은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명약관하하게 목격하고 있다. 이 술수에 속아서는 안 된다. 위험 하다. 법치 국가라고 하지만 우리는 광주의 괴수 ‘전두환의 몽니 법’에 그가 죽을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살았다. 이로써 선량한 우리 국민을 지붕 쳐다보는 강아지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런  일이 또다시 일일어나서는 안된다.
이번 일을 맡은 대한민국의 공수처는 이 사건을 넘겨받았지만, 아무런 구체적 내용도 없어 예의를 지키는 공수처는 공수처(拱手處)가 되어 있어 우리를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오늘 한국의 정치는 공적 책임을 수행하기보다는 이익과 권력을 지키려는 도구로 전락하면서,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다.
앞뒤도 없고, 머리와 꼬리가 분간키 어려워, 충동과 무질서로 불법과 합법이 곤두박질하고 있으니 가슴 아프고 한심하다. 죄가 없는 국민은 이제 망연자실, 피곤하고 지쳐있다.

끝없는 분열을 초래하는 악마들의 거친 숨소리, 억장이 무너지는 ‘궤변’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 이들은 세상이 아수라장이 될수록, 사람들이 갈팡질팡 하면 할수록 먹이 사냥이 쉬워짐으로 끊임없이 보도 듣지도 못하는 권모술수와 음모를 획책할 것이다.
그들의 거친 숨에는 갈등의 독이 들어 있고, 그 독을 뿜을 때마다 그 졸개들은 휘발유를 뿌려 댈 것이다. 이것이 궤변의 정체다. 악마는 절대로 멍청하지 않다. 그들의 간계와 간특함은 혀를 내 두를 만큼 끊임없는 속임수를 위한 묘수를 짜내며 위장과 변모의 마술을 부릴 것이다.
내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 내 안에는 도덕 법칙
이라는 칸트의 말을 무색케하는 이들의
패덕을 어찌 눈 뜨고
그냥 볼 수 만 있겠는가

막스 베버(Max Weber)는 "사회적 질서는 도덕적 합의와 신뢰로 유지된다"라고 말했다, 윤리적 지도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곧 민주적 공론장을 통해, 왜곡된 대화와 궤변이 아닌 합리적 토론과 진실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그의 말은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에서 도덕성과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진실이 묻히고, 국민의 도덕적 기반이 약화 된 이 땅에서
‘궤변에서 진실로, 분열에서 연대’로 나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떻게 윤리적 지도력과 도덕적 연대를 통해 궤변의 혼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정치가 개인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영역이 되게 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국민이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까?

국가의 진정한 힘은 국민의 도덕적 역량과 공동체의 연대에서 나오며, 이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치다.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는 한 국가의 힘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국민의 도덕적 역량에 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오늘 대한민국은 경제와 군사 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가로 성장했지만,
국민의 도덕적 역량이 더없이 취약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해 있고 사람 간에 신뢰와 연대는 더 없이 약화하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동체는 더 없이 약화 되었고, 사익을 좇아 들쥐 떼처럼 몰려다니는 패거리 집단이 팽배해 있다.
어쩌면 온 국민이 윤리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질주의와 경쟁 중심의 문화가 도덕적 가치를 약화하며, 출세 이기주의와 소외를 부추긴 결과가 아닐까?

개인의 윤리를 넘어,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국가적 과제로 남아 있는 ‘국민의 도덕적 역량’은 어디서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 근본이 무너져 어지럽게 흔들리는 이 인간 내면의 올바른 양심과 이성을 흔드는 이 인공지진을 무엇으로 멈출 것이며 이 쓰나미는 무엇으로 막아 낼 것인가?
       ㅡ조광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