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물빛 기도의 헌사
―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닌 당신에게
지난 밤, 한 줄기 소나기가 무더위의 계절 끝자락을 적시듯 쏟아졌습니다.
타들어가던 지구는 그 울음마저 속으로 삼키며 지쳐버린 사지를 풀어놓고,
오늘 새벽은 소리 없는 통곡처럼 울먹이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새벽 물안개가 잠든 산하를 감싸 안을 때,
당신의 기도는 이슬처럼 고요히내려앉습니다.
많은 말로 하늘을 재촉하지 않고,
단 한 마디로 온 마음을 열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기도.
갯가의 갈대 떨림 같은 낮은 속삭임이
별빛을 흔들어 깨우며 하늘 끝까지 닿습니다.
흠도 티도 없는 지순한 당신의 기도하는 모습은 잔잔한 호수의 수면과도 같습니다.
봄날의 햇살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미소,
그 미소 하나가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그 눈빛 하나가 상처 입은 영혼을 감싸 안습니다.
당신의 삶은 언제나 조용한 자리에서 빛납니다. 섬김을 바라지 않고 먼저 섬기며,
작은 일에도 성전의 경건을 심어 놓습니다.
당신이 다녀간 자리에는 언제나
난초의 향기 같은 은은한 흔적이 남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듭니다.
당신의 마음은 긴 겨울을 지나 맞이한
푸른 바이칼 호수와도 같습니다.
구름도, 새도, 돌멩이도 고요히 품어내고,
스쳐 가는 모든 파동을 잠시 감싸 안았다가
다시 맑은 고요로 되돌려 보냅니다.
낮아질수록 더 깊어지고,
비워질수록 더 충만해지는 그 신비,
당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봅니다.
당신은 들꽃과 닮았습니다.
화려한 정원에 서지 않아도,
오솔길 언덕 위에서조차 빛을 잃지 않는 존재.
하느님 앞에서는 촛불처럼 낮아져
은총을 맞이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빈 옹기처럼 자신을 비워
사랑을 가득 담아 나눕니다.
당신의 발걸음은 새벽 이슬을 아끼듯 조심스럽습니다.
세상을 무겁게 짓누르지 않고, 작은 풀벌레 소리에도 발길을 멈추어 귀 기울입니다.
그 발걸음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세상을 부드럽게 쓰다듬습니다.
넘어져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며 배우는 당신. 모욕은 침묵으로 품고,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빛을 지키는 당신. 그 믿음이 우리에게 길이 되고, 빛이 됩니다.
성인들은 말했습니다.
“겸손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하늘에 이르는 길이다.” “겸손은 모든 덕목의 문지기다.”
“겸손은 참된 위대함의 얼굴이다.”그리고 옛 노래는 속삭입니다.
“물이 깊을수록 소리를 내지 않고,
향기로운 꽃은 멀리서 더 그윽하다.”
그렇습니다.
겸손은 단순한 예법이 아니라
영혼의 뿌리이며, 하느님과 만나는 비밀의 문입니다.
자기 앞에서는 진실로,
타인 앞에서는 사랑으로,
하느님 앞에서는 비움으로
드러나는 그 신비 속에서
당신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세상에 나타납니다.
당신은 깊은 골짜기의 난초와도 같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향기를 멈추지 않고,
그 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스며듭니다.
당신의 기도는 하늘을 흔들고,
당신의 얼굴은 세상을 위로하며,
당신의 행동은 향기를 남기고,
당신의 마음은 사랑을 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닌 당신.
당신의 겸손은 세상에 남겨진 가장 고요한 빛이 되어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는 깊은 향기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향기를 따라,
마침내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배우고, 영원히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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