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천재 정약용 네 형제의 삶/조광호신부

주혜1 2025. 9. 3. 11:16

아름답고도 너무 슬픈 이야기
ㅡ천재 정약용 네 형제의 삶

폭염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동검도 채플 창가의 청동 십자가는 세월을 거치며 짙은 청동빛을 띠고 있다.

멀리 서쪽 바다 수평선을 배경으로, 채플 안에서 사선으로 놓여 있어,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다.

마치 창밖 예수상이 기도하는 이를 조용히 지켜보는 듯하다. 우리의 신앙도  숨은 자리에서 이렇게 지켜지고 있을 것이다.

정약용 형제들이 살던 남양주 한강 상류를 다녀왔다.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과 신앙을 생각했다.

500여 권의 저서를 남긴  정약용은 혼자만의 천재가 아니었다. 이 집안은 지적 능력과 함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각자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비운의  조선. 천재가문 가운데 하나였다.

같은 시대, 같은 핏줄,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네 형제는 모진 박해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한 뿌리에서 자란 나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듯이 말이다.

맏형 정약현은 신유박해 앞에서 신앙을 포기했다. 인간은 연약하다. 때로는 가장 소중한 것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그의 딸, 정난주 아가타는 아버지가 지키지 못한 신앙을 온몸으로 증언하며 순교 성인이 되었다. 배교 속에서도 은총은 이어진다. 인간의 한계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은 멈추지 않는다.

둘째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홀로 유배 생활을 하며 『자산어보』를 남겼다. 그는 순교하지도,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고립된 섬에서 학문과 자연을 관찰하며 살아간 그의 삶은 조용한 기도였다. 화려하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는 인내와 성실함이 있다.

셋째 정약종은 한국 최초의 교리서 『주교요지』를 집필하며 신앙 공동체를 돌보았다. 그리고 신유박해 속에서 믿음을 증언하며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사랑과 신앙의 증거였다.

막내 정약용은 배교와 방황을 겪었지만, 유배지에서 다시 신앙의 길을 찾았다. 『목민심서』에서 백성을 사랑하라고 했고, 『경세유표』와 『흠흠신서』, 『아방강역고』와 『마과회통』에 나타난 사상과 글 속에는 언제나 복음 정신이 담겨 있다. 그는 넘어졌지만 다시 하느님을 찾는 과정을 통해, 신앙과 이성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

네 형제의 삶은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났다. 연약함 속에서도 은총을 경험한 형, 고독 속에서도 인내를 지킨 형,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증언한 형, 흔들리고 다시 하느님을 찾은 형. 그들의 신앙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박해와 유배, 배교와 순교, 고독과 절망 속에서 오히려 더 깊고 진실한 신앙이 피어났다.

우리의 믿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는 신앙을 숨기고, 고독 속에서 지키며, 목숨으로 증언하고, 흔들리다가 다시 돌아온다. 완벽한 신앙인은 없다. 다만 각자 다른 모습으로 하느님을 찾아가는 순례자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네 형제의 삶과 신앙은 결국 하나의 은총으로 이어진다. 크고 작은 강들이 각기 다른 길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듯, 그 바다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 방황까지도 품어 안는다.

정약용 형제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이 흘린 눈물과 글, 보여준 사랑과 신앙은 오늘도 우리에게 흐른다. 신앙의 길에 정답은 없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이를 이해하며, 결국 모두가 은총의 바다, 하느님의 품으로 향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폭염이 가시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 나 역시 그 바다를 그리워한다. 정약용 형제들처럼, 나만의 길을 통해 그 바다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강이 바다로 흐르듯, 모든 신앙의 길은 하느님께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