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던지는 낯선 질문
ㅡ나는 신자인가, 제자인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세례를 받고 신자라고 합니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믿음을 고백하고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는 마음으로 믿음을 품는 사람이고, 제자는 그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머리로 진리를 받아들이지만, 제자는 온 삶으로 그 진리를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신자는 교회 안에 머물 수 있지만, 제자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누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삶 전체를 맡기고 함께 걸어 갈 제자가되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믿음의 경계를 넘어 삶 전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제자가 되는 것은 그 은혜에 응답하여 한 걸음씩 따라가는 실천입니다.
신자가 되는 일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는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세상의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길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자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에서 주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깊은 평안과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마음은 가난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많은 정보 속에서도 진실을 찾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불안과 고립, 끝없는 경쟁도 가져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너는 누구를 따라 살고 있는가?"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잘못된 이해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신분을 갖거나 교회에 소속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새롭게 정하는 일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자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기존 질서와 다른 관점으로 현실을 보려 애쓰는 이들입니다. 불의와 억압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를 향해 세상을 새롭게 보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하느님 나라의 드라마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종교적 위안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려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려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에 마음을 닫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깊은 관심을 갖는 사람, 십자가의 제자는 다른 이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역사 속에서 고난당하는 이들과 함께 서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도 부활의 희망을 붙들고, 아직 오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오늘 여기서 조금이라도 실현하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경쟁과 갈등 속에서도 용서와 화해를 추구하는 것, 소비주의와 이기주의의 유혹 속에서도 하느님의 가치를 우선하는 것,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약한 이들과 함께 서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제자의 길이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외면당하기도 하고, 선한 길을 걷다가 고통을 겪기도 하며, 진리를 붙들다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제자의 길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우리는 뜻밖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무거운 짐만이 아니라 깊은 평안과 기쁨을 주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사랑으로 감당한 아픔은 하느님 안에서 치유되고, 희망을 품고 흘린 눈물은 하느님의 위로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제자는 고백합니다. "내 십자가는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평안과 기쁨을 준다."
그 평안 속에 있는 깊은 고요함,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는 평화,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평화입니다.
제자는 그 평화를 맛보았기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주님의 길을 따릅니다. 그 길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들려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의 빛을 나타내려 애쓰는 것입니다.
그 길은 때로 무겁고 외로울 수 있지만,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 사랑과 희망이 충만한 미래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걸을 때 우리의 발걸음이 다른 이들에게도 작은 빛이 될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증언하며, 세상의 가치를 넘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이 세상에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절망이 가득한 곳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 미움과 분열이 있는 곳에서 사랑과 화해를 실천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부활의 삶은 죽음 후의 미래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현재입니다. 제자는 이미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들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신자에서 제자로 부르시는 초대입니다.
이 부르심은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시작됩니다. 십자가의 깊은 평안과 영원한 평화, 그리고 부활의 생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문턱에서,
나는 아직도 신자에서 제자로 넘어가는 그 길목에서 평생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참으로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나의 내면을 향해 솔직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ㅡ창밖에 한무리 철새떼가
동트는 새벽 하늘을 가로 질러
물결 흐르듯 눈앞을 스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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