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들숨과 날숨에 하느님의 숨이

주혜1 2025. 9. 20. 22:15

들숨과 날숨에
하느님의 숨이 계신다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서 생명은 새로운
리듬을찾는다.

여름의 작열한 숨결이 스러져 가고 서늘한 바람이 대지를 어루만질 때, 동검도의 갯벌은 또 다른 생명의 무대로 변모한다.

밀물 시간에 맞추어 날아드는 철새들의 V자 진영은 하늘에 새긴 고대의 문자 같고, 그들의 날갯짓은 천공과 바다를 잇는 기도 같다.

바닷물의 들고남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호흡이요, 우주가 맥박치는 소리다.
모든 생명은 이 원시적 호흡의 터전 위에서, 그 리듬을 몸에 새기며 살아간다.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창세기의 이 구절은 인간 존재의 이중성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그릇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숨을 담은 성전이다. 영어 성경이 이 '입김'을 "breath of life"라 번역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숨은 곧 생명 그 자체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말의 아름다운 특성 중 하나는 상반되는 두 동작을 하나로 묶어 표현하는 것이다.

들랑날랑, 빼닫이, 들락날락,  들숨날숨. 이는 단순한 언어적 현상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대립하는 두 힘이 결국 하나의 완전한 순환을 이룬다는 철학이 우리말 속에 스며들어 있다

들숨과 날숨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 행위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행위 속에 얼마나 깊은 신비가 숨어 있는가.
우리는 숨을 쉰다고 말하지만, 과연 우리가 스스로 숨을 쉬는 것일까? 들숨은 창조주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고, 날숨 역시 그분의 은총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의 스승이셨던 국문학자 심재기교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
호흡은 우리의 능동적 행위라기보다는 창조주께서 매 순간 베푸시는 은총의 반복이다. 우리는 숨을 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숨이 우리를 통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겸손한 깨달음인가.

'숨 죽이다'라는 우리말 표현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문자 그대로라면 생명을 끊는다는 뜻이어야 할 텐데, 우리말에서는 오히려 경청과 집중, 경외와 겸손의 태도를 가리킨다. 이는 위기의 순간 생명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내면 깊숙이 간직하며 외부의 소음을 잠시 멈추고 본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숨을 쉬며 살지만, 유독 인간만이 스스로 '숨 죽이며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는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자 책임이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경외할 줄 안다는 것, 신비 앞에서 숨을 죽일 줄 안다는 것.

이러한 호흡의 이해는 인간 문화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든다.

음악은 음과 쉼표의 대화로 완성되고, 회화는 여백과 채움의 호흡으로 생명을 얻는다. 시는 운율과 침묵 사이에서 피어나고, 춤은 긴장과 이완의 반복 속에서 영혼을 드러낸다.

인간의 모든 창조적 행위는 결국 들숨과 날숨의 구조를 닮아 있다.

받아들이고 내어주고, 모으고 펼치고, 침묵하고 말하고. 이것이 바로 존재와 표현의 근본적 토대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숨결 속에 놓인 신학적 사건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첫 숨을 들이쉬고, 죽을 때 마지막 숨을 내쉰다. 그 첫 숨과 마지막 숨 사이의 모든 호흡이 창조주의 은총이요, 매 순간이 기적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마지막 날숨을 내쉴 때, 그 숨은 어디로 갈까?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품으로, 모든 숨의 근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듯, 하느님의 숨에서 와서 하느님의 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신앙의 길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자신의 호흡 속에 하느님의 숨이 깃들어 있음을 인식하며 사는 것, 그 생명의 신비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감정적 고양이나 신비주의적 체험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객관적 조건이자 창조 질서의 근본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첫 호흡과 함께 이 진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매 순간 들이쉬는 숨 속에서 창조주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기도가 되고, 우리의 존재는 찬양이 될 것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창가에 기대 서서, 새벽 안개 사이로 바라보는 갯벌의 풍경이 있다.

갯골 사이로 바닷물이 밀려오는 광경을 *숨죽이며* 바라본다. 이 지구의 극변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이, 이 우주적 호흡의 일부가 되어 있음이 더없이 고맙고 신비로운 아침이다.

안개 속에서 피어오르는 물새들의 울음소리, 갯벌을 적시며 밀려오는 파도소리,

그리고 내 안에서 조용히 반복되는 호흡소리.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을 이루고 있다.

창조주의 숨결로 시작되어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갈 영원한 노래를.

이 고요한 아침, 들숨과 날숨 사이,
고맙고 신비로운 찰나의 이 순간
물 밀듯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숨을 나누어 받은 형제자매이며, 이 거룩한 호흡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가

그리고 그 숨이 우리 안에 있는 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