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그림자
ㅡ노인성 엷은 치매
젊은 시절 , 나는* 어르신들은 왜 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실까,*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를 처음 말하는 듯 언제나 되풀이 하시는 노인들의 모습이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런데 세월이 흘러,이제 나 또한 그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문득 자신을 살펴보면,
내 안에서도 그런 징조가 보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이미 말했던 생각을 또다시 정리하며, 무심코 과거의 장면 속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노인성 엷은치매의
그림자는 잘 볼 수 없는 하얀그림자 같습니다.
이제 이 그림자를 눈여겨 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사실이 나를 조용히 긴장하게 합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반복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삶의 무게와 세월이 남긴 문신같은
혼의 흔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반복이 성찰과 의미의 갱신 없이 이어질 때,
그것이 서서히 정신의 경직, 나아가 영혼의 닫힘으로 변해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노년의 반복에는 어쩌면 내 존재에 대한 까닭 모를 불안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직 의미 있는 사람인가’,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남아있을까.’
그 불안이 무심히 자랑으로, 혹은 억울함으로,때로는 오래된 원망의 언어로 되살아나곤 합니다.
그런 말들은 처음엔 따뜻한 회상처럼 들리지만,
자주 되풀이되면 어느새 자기 확인의 딱하고 가여운 독백으로 변해갑니다.
그때의 반복은 더 이상 삶의 해석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자아를 붙잡으려는 처절한 심리적 몸부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반복은 점차 기억을 응고시키고,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여지를 닫아버립니다.
마음의 문이 좁아지고, 판단은 단선화되며,
타인의 말이 귀에 닿지 않습니다.
결국 아무도 막아낼수없는 옹고집. 꼰대가 되어,대화는 흐름을 잃고,철벽 같은 독백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 상태는 정상과 비정상,상식과
비상식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운
인간관계를 초래하게 될것입니다
그 누구도 쉽게 이 문제를 풀수없는
난처한 양심의 줄다리기를 하게될것입니다
이 현상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치매의 전조,
혹은 정신의 유연성을 잃어가는 매마르고 외로움을 타는 ㅡ엷은 치매의 징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인성 엷은 치매는 단지 뇌의 질병이 아니라,
의미를 잃은 반복이 깊어져 관계가 단절되는 상태라고 할수있을 것입니다.
입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말은 더 이상 타자에게 닿지 않고
자신의 기억 속을 되돌며 맴돕니다.
신앙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하느님의 새로운 말씀을 들을 귀를 잃은 영적 귀먹음의 상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새롭게 말씀하시지만,
자신의 어제 말을 되풀이하는 영혼은
그분을 ‘과거의 신’으로만 머물게 할 것입니다.
그때 신앙은 생명의 흐름이 아니라,
습관화된 종교적 반복으로 굳어질 위험이 있는 듯합니다.
반복의 병은 망각에서 생긴다기보다,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일생을 살아온 습관과 무의식이
여과없이 나타나는 이 시기는
잊지 못해서라기보다 놓지 못해서,
과거를 바라본다기보다 붙들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 될것입니다
그렇다면 치유의 길은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일 것입니다.
노년의 반복이 은총으로 바뀌려면,
그 말이 집착의 되풀이가 아니라 감사의 되새김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의 사건 속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찾아내고,
그 기억을 오늘의 은총으로 다시 읽을 때,
반복은 병이 아니라 기도의 언어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열린 귀일 것입니다
사람과의 대화, 세상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처음처럼’ 듣는 마음.
이것이 굳어버린 영혼의 관절을 풀어주는
은총의 움직임이 될 것입니다.
과거를 붙잡은 손을 조용히 펴서
그 기억을 하느님께 맡길 수 있다면,
그 반복은 더 이상 폐쇄가 아니라 해방의 기도가 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그때 노년의 언어는 자랑이나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고백으로 바뀔 수 있을 것 입니다.
단순한 잔소리나 습관처럼 보이는
이 반복의 긍정은 기억의 관조가될 것이지만
반복의 부정은 집착의 경직이라 해야 할것입니다
전자는 기도를 낳고, 후자는 병을 부릅니다.
노년의 지혜는 ‘많이 안다’는 확신이 아니라,
‘이제 들을 수 있다’는 겸손에서 자라나는 것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닫힌 입보다 열린 귀가,
자기 말보다 하느님의 말씀이 앞설 때, 늙음은 쇠락이 아니라 빛의 깊이로 무르익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반복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가 우리 모든 노인들의 새로운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반복이 집착으로 굳으면 영혼은 닫히지만,감사로 승화되면 기도가 될 것 입니다.
결국 노년의 품격은 무엇을 더 말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새롭게 들을 수 있느냐로 결정 될 것입니다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강화... / 조광호신부 (0) | 2025.11.17 |
|---|---|
| 가난을 낭만화하지 말라/조광호신부 (0) | 2025.11.15 |
| 숲속에서/ 조광호신부 (0) | 2025.11.04 |
| 주아 드 비브르 (0) | 2025.11.03 |
| 회광반조(回光反照)/ 조광호신부 (1) | 2025.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