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우듬지의 명상/조광호신부

주혜1 2026. 2. 16. 22:51

우듬지의 명상

     — 둥지를 짓는 존재와
     하늘을 향한 초월

갯가의 작은 절벽 위에 자리한 동검도 채플 3층 사제관 창밖으로 고개를 들면, 키 큰 상수리나무 우듬지가 바로 눈앞에 와 닿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자리에서, 바람이 스치고 햇살이 머무는 그 끝자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저를 불러 세웁니다.

우듬지는 나무의 맨 꼭대기, 가지와 잎이 가장 높이 모여 있는 부분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입니다.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가 보이지 않는 기초라면, 우듬지는 하늘을 향해 가장 높이 드러난 자리입니다.

비유적으로는 어떤 생각이나 삶의 가장 높은 지점, 혹은 중심을 넘어선 열린 끝자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말씀드리자면, 우듬지는 나무가 하늘과 가장 가까워지는 자리입니다.

그 우듬지에 한 달째 까치 부부가 집을 짓고 있습니다.

새벽이면 하루 종일 까치 부부는 우듬지와 숲 사이를 오가며 집을 지어 갑니다. 한 마리가 가지를 물어다 놓으면 다른 한 마리가 다가와 방향을 고치고, 다시 함께 날아올라 또 다른 재료를 구해 옵니다.

가로와 세로를 재듯 고개를 기울이고, 바람의 방향을 읽는 듯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입니다.

저는 그 모습을 난생처음 이렇게 가까이에서, 거의 숨소리까지 느껴질 듯한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른 가지 하나를 얹고, 잠시 물러서 바라보고, 다시 날아가 또 다른 가지를 가져오는 그 반복 속에는 한 생명의 결단이 담겨 있습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비를 피하고 알을 품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이 거친 세계 한가운데서 “나는 여기 머물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존재의 선언처럼 보입니다.

요즈음 상수리 우듬지에 얹힌 그 작은 둥지는 제 사유를 쉼 없이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1. 우듬지— 가장 높은 자리의 떨림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버팁니다. 깊은 흙 속에서 말없이 힘을 모읍니다.
그러나 우듬지는 햇빛 아래에서 떱니다.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흔들립니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을 ‘세계-안-에-존재하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지만, 동시에 언제나 열려 있는 존재입니다.
우듬지는 완성의 자리이면서 노출의 자리입니다. 가장 높이 오른 생각일수록 더 많은 바람을 맞습니다. 사유가 깊어질수록 의문도 깊어집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무너짐의 전조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입니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 구조는 이미 굳어버린 구조일지도 모릅니다. 바람에 따라 몸을 기울일 줄 아는 나무만이 오래 살아남습니다.

2. 둥지 — 언어가 엮는 세계

까치는 가지를 엮어 둥지를 만듭니다. 처음에는 허술해 보이지만, 날이 갈수록 형태가 잡혀 갑니다. 바깥에는 굵은 가지를 두르고, 안쪽에는 더 부드러운 재료를 깔아 둥지를 깊게 다집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갑니다. 기억과 경험, 신념과 교리, 사랑과 상처를 하나씩 엮으며 “나”라는 집을 세워 갑니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이 언어의 질서 안에서 자신을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세상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자기 자리를 마련합니다.
신학과 철학, 예술 역시 그러한 둥지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고, 그 구조 속에서 안정을 얻습니다. 그러나 둥지는 숲 전체가 아닙니다. 교리는 하느님이 아니며, 사유는 존재를 온전히 담지 못합니다.

3. 틈 — 초월이 스며드는 자리

아무리 단단히 엮은 둥지라 해도 그 안에는 작은 틈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틈으로 공기가 드나듭니다. 둥지는 흔들리지만, 그 틈 덕분에 오히려 압력을 견딥니다.
우리 삶에도 그러한 틈이 있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고통, 예기치 못한 상실,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 앞에서 우리는 멈추어 섭니다.
독일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는 인간을 “초월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단지 사물을 인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그 너머를 향해 묻고 갈망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찾을 때 사실은 궁극을 갈망하고, 우리가 사랑할 때 완전한 사랑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끝없는 지향이 바로 초월입니다.
그러므로 틈은 결함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닫힌 체계에는 은총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4. 흔들림 — 부러지지 않기 위한 유연함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날, 까치집은 크게 흔들립니다. 저는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바라보지만, 그 둥지는 놀랍도록 버텨 냅니다.
흔들리기 때문에 견딥니다.
굳어버린 신념은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품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열려 있는 신앙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흔들림은 약함이 아니라 생명의 탄력입니다.
십자가가 강철의 상징이 아니라 자기 비움과 내어줌의 표지인 것처럼, 참된 힘은 유연함 속에서 드러납니다.

5. 집과 하늘 사이

까치는 둥지에 머물지만, 거기에 갇히지 않습니다. 잠시 앉아 있다가도 날개를 펼쳐 숲 위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옵니다.

집은 쉼의 자리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사유도, 신앙도, 체계도 머물 수 있는 자리일 뿐 하늘 자체는 아닙니다.

존재는 언제나 우리의 인식을 초과하고 초월합니다.
우리는 언어 속에 거주하지만, 존재는 언어를 넘어 우리를 부릅니다.

6. 틈을 기억하는 삶

철학은 둥지를 부수는 일이 아니라, 둥지가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는 일일 것입니다. 신앙은 모든 답을 소유하는 태도가 아니라, 초월을 향해 열린 채로 서 있는 태도일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하늘이 스며들 자리를 남겨 두는 일입니다.
우듬지에 얹힌 까치집을 바라보며 저는 깨닫습니다.

집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집은 궁극이 아닙니다.

흔들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조건입니다.

머물되 갇히지 않고,
붙들되 절대화하지 않으며,
흔들리되 부러지지 않는 존재.

집을 짓되 하늘을 잊지 않는 삶.

우듬지는 오늘도 바람에 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떨림 속에서,
모든 존재와 기억들이 조용히 깨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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