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아, 신부님 신부님

주혜1 2005. 10. 24. 16:20
일생을 청빈과 순결, 그리고 순명을 실천하며 살기로 땅바닥에 엎드려 맹세하신 사제들을 아끼고 존경하는 마음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남다르다. 이 점이 외국사제들에게도 위로와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 사제성소가 떨어지고 있는 원인도 사제들을 위할 줄 모르는 신자들의 무관심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스스로 찾은 종교로, 또 그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신앙과 순교정신이 있었기에 사제에 대한 사랑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미덕이요, 곧 우리 한국 교회의 자랑이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아직 그린벨트 해제가 안 된 지역이라 처음 이사 와서 성당을 찾으니 허름한 단층 빈 기와집이 한 채 괴괴히 있는 곳에 팻말만이 을씨년스러웠다.
이런 곳에 첫 사제로 발령을 받아 오신 신부님께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지 짐작만 해도 송구스럽다. 난방도 안 되고 집안은 온갖 벌레들이 들끓어 피부병까지 앓으셔야 했다.

낡은 집을 헐고, 비닐하우스로 성전을 짓고 타 본당에서 버리는 의자를 얻어 오시고는 어린이처럼 기뻐하신 일, 그렇게 마련한 성전을 행인의 담배불로 홀랑 태워버린 일, 설상가상 그 일로 벌금이 수 천 만원이 나와 곤혹을 겪으신 일, 사목위원들의 불목과, 수녀님의 교통사고 등등...실로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들이 신부님을 괴롭게 해 드렸다. 그러나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그 어려운 일 묵묵히 겪으면서도 늘 한결같으셨던 신부님께서 임기가 만료되어 떠나시는 마지막 미사에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나도 놀랐다. 어떤 만남이든지 반드시 이별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그동안 교리봉사를 하면서 늘 신부님께서 멀리서 다정스레 지켜보시는 데 힘을 얻었고, 한 편의 수필과 같은 강론 말씀을 들으며 감격해 했었다. 열악한 성당에 오시어 어려운 일 모두 겪으시고 떠나시는 신부님께 죄송한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가슴을 적시고 또 적셨다.

그렇게 신부님을 보내고 많은 신자들이 찾아가 뵙는다. 신자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셨기에 그 분을 생각하는 신자들의 마음도 남달라서 줄지어 찾아뵙는 모습을 보며, 아름답지만 우려스런 마음도 들었다.

사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때때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지나친 사랑이 화를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사를 떠난 성당이 없듯이 그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를 멀리 해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자는 결코 사제를 멀리 해서는 안 되지만 너무 가깝게 지내서도 안 된다. 자칫 사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부님의 사생활에 대한 잘잘못을 일일이 채근하고 시시비비를 가림으로써 신부님의 마음을 크게 상해 드리거나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고 나서는 신부님의 심기를 그르치는 일들을 전하는 일들이 없지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들 닫고 보이지 않는 데서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조용히 기도와 존경으로 성숙시켜 나갈 때, 우리 성전은 더욱더 활성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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