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기도를 올리면서 나는 성모상의 표정을 살핀다. 환하게 미소 짓는 날은 “ 엄마, 다녀올게” 하며 인사하고 가볍게 집을 나선다. 내가 성모님을 “엄마” 라고 부른지가 영세를 받은 직후부터이니 근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 당시 나는 한 자매의 권유로 레지오에 입단은 하였으나 무척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날도 회합을 끝내고 성경공부를 하러 그 자매의 집에 들어서려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집안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두 나와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는 우리와 달리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 준비를 하며, 한사코 만류하는 나에게 그는 성모상을 바라보며 살짝 눈을 흘기더니,
“엄마, 집 또 안 봤지?”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게 웬일인가. 성모상에 대고 “엄마”라니! 게다가 집 안 봤다고 투정을 부리다니…….
“엄마 집 안 보고 뭐 했어?”
기겁을 할 것 같은 그녀의 말에 나는 전율이 돋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그래, 그녀의 동요 없는 평화스러운 표정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차를 마시며 그녀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물질은 필요에 의하여 공유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 집이 길가에 있어서 허술한 게 문제에요. 새로 산 VTR이 아깝긴 하지만, 다시는 안 살 거야, 그 시간에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지. 집에 있었으면 다쳤을 텐데 얼마나 감사해요.”
그 자매의 이런 태도야말로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도 성모님을 “엄마” 라고 부른다. “엄마!” 하고 부르면 미국에 계신 친정어머니의 음성이 따뜻하게 가슴에 들어와 앉으며 물이 고인다. “엄마, 엄마” 얼마나 가깝게 느껴지는 성모님인가. 사랑은 말보다 침묵으로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신화 속에 사랑의 여신이며, 달의 여신이기도 한 아프로디테는 바다에서 생겨났다. 바다는 곧 침묵이며, 달 또한 어둠의 침묵이다. 침묵 중에 성모님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 욕심으로 불러들인 화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얼마나 많이 갉아먹고 있는가! 재산싸움을 보다 못한 노모가 한강에 투신한 일이며, 돈 때문에 사람을 잃는 일 등.
참다운 신앙인의 자세와 삶의 의미와 행복이 어디 있느냐의 해답은 신앙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느낌도, 구원이 되었다고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당했더라도 우리 정신을 파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답을 신앙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을 만날 때 얼굴에 평안이 깃든 사람은 성품도 역시 평화롭다. 종교를 갖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기성찰과 희생 봉사이고 보면, 그 자매의 얼굴이 성모상을 닮아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어두움 속을 헤매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인간은 신을 믿는 한에 있어서만 인간다운 모습을 보존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마음의 움직임이 그렇게 느껴졌을 테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성모상의 표정이 보인다. 그 표정이 곧 묵주기도 제목이 된다.
“엄마, 집 또 안 봤지?”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게 웬일인가. 성모상에 대고 “엄마”라니! 게다가 집 안 봤다고 투정을 부리다니…….
“엄마 집 안 보고 뭐 했어?”
기겁을 할 것 같은 그녀의 말에 나는 전율이 돋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그래, 그녀의 동요 없는 평화스러운 표정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차를 마시며 그녀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물질은 필요에 의하여 공유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 집이 길가에 있어서 허술한 게 문제에요. 새로 산 VTR이 아깝긴 하지만, 다시는 안 살 거야, 그 시간에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지. 집에 있었으면 다쳤을 텐데 얼마나 감사해요.”
그 자매의 이런 태도야말로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도 성모님을 “엄마” 라고 부른다. “엄마!” 하고 부르면 미국에 계신 친정어머니의 음성이 따뜻하게 가슴에 들어와 앉으며 물이 고인다. “엄마, 엄마” 얼마나 가깝게 느껴지는 성모님인가. 사랑은 말보다 침묵으로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신화 속에 사랑의 여신이며, 달의 여신이기도 한 아프로디테는 바다에서 생겨났다. 바다는 곧 침묵이며, 달 또한 어둠의 침묵이다. 침묵 중에 성모님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 욕심으로 불러들인 화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얼마나 많이 갉아먹고 있는가! 재산싸움을 보다 못한 노모가 한강에 투신한 일이며, 돈 때문에 사람을 잃는 일 등.
참다운 신앙인의 자세와 삶의 의미와 행복이 어디 있느냐의 해답은 신앙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느낌도, 구원이 되었다고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당했더라도 우리 정신을 파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답을 신앙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을 만날 때 얼굴에 평안이 깃든 사람은 성품도 역시 평화롭다. 종교를 갖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기성찰과 희생 봉사이고 보면, 그 자매의 얼굴이 성모상을 닮아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어두움 속을 헤매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인간은 신을 믿는 한에 있어서만 인간다운 모습을 보존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마음의 움직임이 그렇게 느껴졌을 테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성모상의 표정이 보인다. 그 표정이 곧 묵주기도 제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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