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늙음은 은총이다.

주혜1 2005. 11. 14. 11:30
 

늙음은 은총이다


 요즘 노인들이 복사를 서는 성당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즐겁게들 봉사하는지 좋은 반응을 받는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인들이 소외받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이때, 교회에서 할 일을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람은 30세까지는 남의 힘으로 자라고, 60까지는 자기와 가정을 위해, 60이후의 삶이야말로 참되게 하느님만을 위해 사는 것이다. ‘

 어느 신부님의 이 강론 말씀은 결국, 사람은 60이 다 되도록 자기만을 위해 살았다는 결론이다. 자식을 위해, 남편을 위해, 부모를 위해 사는 것도 다 자기를 포함한 삶이니 60이후 시기야말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삶, 온전히 하느님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기라는 거다. 이 말씀을 다시 잘 새겨보면, 지독한 자기사랑의 말씀이다. 노인으로 살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 자칫 지나친 욕심으로 자식에게 짐이 될 지도 모르니 하느님만을 위하는 삶, 그건 곧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의 갈구가 아니겠는가. 하느님만을 위하는 길이 곧 자신의 길이라는 신부님의 이 말씀은 노인 시기야말로 은총의 시기이며, 경륜과 지혜와 인내의 산 증인이라는 말씀이다.

 우스갯소리인지 요즘 세태를 풍자한 소리인지, 항간에 떠도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얘기는 결코 웃어넘기기엔 가슴이 서늘해지는 얘기가 있다.

 어느 시어머니가 며느리 생일이 돌아오자 선물을 주고 싶어서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 정말이죠, 어머니? 그럼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 하더란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어 꾸며댄 개그려니 하고 한바탕 웃기는 했으나 뒷맛이 씁쓸하다. 누구에게나 노년기는 올 것이고, 이처럼 가족에게 배척받는 신세가 될 걸 상상해 보자. 젊은이들이여, 노인 시기란 은총 받은 사람들만이 갖는 시기임을 부러워하라. 질병 없고, 사고 없는 사람들만이 갖는 특권인 것을. 노인이 되어보지 못한 채 불림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는 나의 성이었다. 집에 오면 엄마보다 할머니부터 찾았다. 할머니가 안 보이면 불안하고 짜증이 났다. 할머니 무릎에서 옛날이야기 들으며 잠이 들었고, 공부가 하기 싫으면 할머니 품속으로 피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만물상이었고, 잘못을 저지르면 덮어주는 곳. 아프면 약이 되신 손. 무서운 아버지도 꼼짝 못하는 가장 힘이 센 분. 시집 갈 때 할머니 데리고 갈 거라고 입버릇처럼 했던 나를 가장 사랑하신 분. 할머니 때문에 버릇이 없어졌다고 어머니께 야단을 맞곤 했지만,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예의 바르고, 정서적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요즘 영재로 화제가 된 송유근이의 영재성도 자유롭게 행동하게 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그냥 지켜봐 온 노인분들 덕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년이 빨라지고 일자리가 줄어든 현 사회는 노인 아닌 노인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다. 이러한 때 교회가 앞장서서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명절 때마다 뿌리를 찾아 대이동을 하는 우리의 미풍도 인간의 특별한 은총임을 상기할 때, 노인 외면의 풍조와 2세를 낳지 않으려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는 신에 대한 반란이라 하겠다. 인간 배아복제 등, 별의별 과학의 발전도 모두 하느님의 허락 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겸허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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