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그립다

주혜1 2005. 11. 14. 10:41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그립다



 요즘 학교들은 대부분 급식을 한다. 김치물 흐르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주부들은 도시락 반찬 걱정을 안 해도 되니 1석 2조라고 환영하나, 나는 불만이다. 집단 식중독이며 집단급식으로 오는 폐해, 급식 업체의 경쟁, 그 이면의 일들도 많을 것일까 마는 그러한 문제들보다 급식이 주는 삭막한 분위기가 교육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의 정성이 깃든 도시락의 정신적 유산을 요즘 학생들은 모르고 있다. 똑같은 밥, 국, 반찬을, 같은 모양의 그릇에 받아 들고 먹는 모습은 마치 양식장 우리 안에 길러지는 동물 같아서 ‘이건 아니다’ 하고 혼자 고개를 젓는다. 뿐만 아니라 급식이 끝난 뒤 얼마나 많은 양의 음식물이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 나가는지 모른다.

 급식이 없던 시절, 도시락밥을 남겨 가면 엄마한테 혼났기에 억지로 밥을 다 먹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속에 엄마의 사랑이 담긴 쪽지라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쁜지. 그게 바로 음식을 낭비하지 말라는 엄마의 살아있는 교육이요, 사랑인 것이다.

 우리 입맛은 대체로 같지만, 각 가정의 음식 선호도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성격들도 음식에 따라 변한다. 지금처럼 남이 만든 개성 없는 음식을 먹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참을성 있고,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인물을 기대하며, 음식의 소중함을 일깨울 것인가. 

 부모 자식 간에 이런 재미도 없고, 교육적이지 못하고 추억도 없는 요즘 점심시간을 나는 혐오한다. 아니 슬프게 생각한다. 도시락 반찬이라야 김치 아니면 콩자반이 대부분이었지만 모두 꺼내놓고 먹는 순간이 얼마나 정겨웠던가. 매일 콩자반만 가지고 와서 별명이 콩자반이 된 아이도 있다. 지금도 그 애를 콩자반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마냥 즐겁다.

 그 시절, 유독 혼자 먹는 아이가 있었다. 학기 초라 서먹해서 그러겠지 했는데 달포가 지나도 여전하기에 어느 날 나는 도시락을 들고 그 애한테 가서

“얘, 너는 왜 맨날 맛있는 거 싸와서 혼자만 먹니?”

 하고 도시락 뚜껑을 활짝 열어젖혔다. 순간, 새까만 보리밥에 반찬이 달랑 새우젓뿐인 것을 보고는 아차 싶었으나, 짐짓

“어마, 보리밥이네. 나와 바꿔먹자.”

 하면서 허락도 없이 내 밥과 반찬을 덜어주고, 그 애의 보리밥과 새우젓을 덜어왔다. 그 일로 1년 내내 그 애를 피해 다니다 졸업식날 복도에서 마주쳤다. 내심 겁이 났으나 그 애가 악수를 청하며 하는 말이 의외였다.

“나, 네가 준 그 쌀밥과 장조림 잊지 못할 거야. 졸업하고 연락할게.”

악수를 하며, 나는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  

 도시락에 얽힌 이야기는 겨울이면 더 즐거웠다. 찌그러진 낡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쌓아놓고 음식 섞인 냄새를 참으며 점심시간을 기다린 추억, 아! 그립다. 가난한 시절이여.

 가난이 그립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그립다. 가난을 해결해줄 이가 누구겠는가.

 “마음이 가난한 자여, 그대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하느님, 당신밖에 없습니다.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때가 언제 올 지.....  (0) 2005.11.14
늙음은 은총이다.  (0) 2005.11.14
인생을 낭비한 죄  (0) 2005.11.14
예쁜 예비신자들을 위하는 길  (0) 2005.10.24
상처로 치유되는 상처  (0) 200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