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나의 시를 말한다. -그를 위한 속죄의 삶

주혜1 2008. 3. 23. 00:45
오늘밤도 나는 별여행을 떠난다


김주혜


처녀좌를 출발하여 사파이어
그 푸른 빛의 사슬을 따라갔다
좀생이별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새순처럼 돋아나고 있는 별무리들을
한점 한점 획을 그으며 따라갔다
사다리꼴의 별들이 자리를 떠나고
꼬리별이 어둠을 가로지른 지 얼마되지 않아
황금색의 일등성 별 하나가
사자후를 터뜨리며 멈추었다
멈춘 거기,
거꾸로 매달린 채 떠 있는 별자리가 있었다
긴 사슬에 얽혀 불목하니로 살아가는 내 별자리
나를 자꾸 뒤돌아보게 하며
떨며, 서성이게 하는
유난히 추워보이는 저 별이
언제쯤 저 사슬을 끊고
먼 과거로부터의 굴레를 떠나
푸른 별숲의 함성을 껴안을 수 있을까
오늘밤도 나는 별여행을 떠난다.
 

                                                                          그를 위한 속죄의 삶


       살아 있다는 것은 가슴을 부서지게 하는 과정이고, 부서질수록 가슴은 커져서 더 큰 우주를 안을 수 있는 가슴을 만들어 간다고 한다. 빗물, 강물, 눈물 그리고 삶 등 모든 흐르는 것들은 아름답다. 그러나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만지면 손바닥 가득 눈물이 묻어나는 삶을 결코 아름답다고 하지는 못하리라.

         세월이 가면 잊혀진다는 그 거짓말을 믿고 싶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리움은 가슴에 쌓여 더욱 두껍게 자리를 잡고, 건드리기만 해도 뜨겁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콸콸콸 흘러 온몸을 적신다.

        인생을 다른 무엇과 조금씩 바꾸어 나갈 때 인생의 참의미를 갖는다면 나는 이 커다란 상실과 과연 무엇을 바꾸었을까. 매일 매일이 그와 바꾼 삶, 그러나 이미 의미를 상실한 시간의 흐름인 것을…. 사람들은 이제 그만 기억 속의 그를 지우라고 한다. 그러나 내 가슴에는 이미 지울 수 없는 파일로 그가 남아, 그와 함께 지낸 추억들을 반추하는 힘으로 남은 생을 살고 있음을 어쩌랴.

         붉은 와인을 마시면 사랑을 하고 싶다. 그리움의 정점에서 지적 허영심과 애정결핍증을 풀어줄 사내를 만나 붉은 열애에 빠져 익사하고 싶다. 종교까지 같으면 하느님이 보내주신 위로자임이 분명하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근사할 것 같다. 무책임하게 떠난 그에게는 보기 좋게 복수하는 것이 되니까. 외로움이 바이러스처럼 잠복해 몸부림치기 직전에 숙명적으로 만나, 마치 사랑으로써만 내 상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열광할 것이니 그 사내는 분명 행운아일 것이다. 차디찬 이성이여, 칼날 같은 맥을 끊고 나를 펄펄 끓게 만들어다오. 내일은 없고, 오직 오늘만 있는 내게, 흘러간 세월 이상의 붉은 기운으로 그대의 심장을 녹여주리니…

       그러나,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그가 있을 때는 남의 남자들이 더 크게 보였다. 멋진 연애하는 시도 썼다. 내 가슴을 가리키며, “이 속에 들어 있는 누군가가 궁금해” 라고 말할 정도로 리얼한 불륜의 시, 바람난 여편네 시를 신나게 써댔다. 무관심한 우리 남자에게 여봐라는 듯이 시위도 할 겸. 그러나 웬걸, 그는 “시는 시일 뿐, 시로만 볼 뿐이야” 하며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뭐, 이런 오만이?"

       그러던 중 「오늘밤도 별여행을 떠난다」란 시가 그 해 좋은 시로 선정되었다. 나름 뻐기며 자랑하자, 무관심으로 일관해 오던 그가 뜻밖에도 자기가 보기에도 그 시가 제일 잘 썼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미련하게도 그의 손바닥 안에서 팔팔 뛰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고는 그 앞에서 더 작아질 수밖에 없는 나를 발견하고는 허탈했었다.
 
그는 내 인생의 이정표 역할만을 하다가 떠났다.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순간도 살지 못했던 남자. 불우한 남자. 그는 늘 몇 수 앞을 바라보는 큰 산이었다. 너무나 큰 산이라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었는데 무관심하다고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고 때로는 무능하다고까지 했으니…. 
 
 그를 나의 반쪽으로 선택한 어릴 적 나의 안목에 자족하며, 내 남은 생은 그를 위한 속죄의 삶이어야 마땅하다.  이제는 과시할 대상도 없고, 좋아해 줄 사람도 없으니 시를 쓰는 목적도,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소중한 단 한 사람이 없는 시 쓰기란 마치 픽션 없는 현실만 같아 재미가 없고, 의욕도 안 난다. 그러나 이 기막힌 이별이 갖는 단절과 차단의 슬픔을 넘어서려면 시를 쓰는 길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나, 모두 내숭이다. 슬프다, 외롭다, 아프다 하면서도 해를 넘기며 잘 살아 있는 걸 보면 내 아픔은 순전히 내숭이 아니고 무엇이랴.  죽을 듯이 보고 싶을 때면, 눈물 뿌리며 달려가 무덤 앞에 선다. 펑펑 울다가 지치면 욕바가지를 쏟아붓는다.
‘그래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한참 동안 그렇게 미쳐 있다가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있을 나를 그려보면, 오히려 무덤 속에 있는 현실이 마치 바람이 불고, 날이 저물고, 달이 뜨고,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편안한 순리로만 느껴진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 외로움은 영원히 나의 몫이 된 것임을….
 
이렇게 용감하게 부르짖으며 생과 부딪치고 있는 나를 보면 얼마나 대견해 할까. 물가에 내보낸 아이처럼 늘 못 믿어했는데…. 착한 사람이었고, 넉넉한 그였으니, 눈물범벅인 채로 삭아지는 내 모습보다 훨씬 좋아할 것 같다.

          “나 잘하고 있지?”

           지금 그는 어둠 속에서 그가 제일 좋아하던 나의 시 「오늘밤도 나는 별여행을 떠난다」을  떠올리며 밤하늘을 바라보리라.  그리하여 곧 이승에서의 불목하니 사슬을 끊고, 황금성의 사자후를 터뜨리며 어둠을 가로질러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으리라.
 
먼 훗날, 그를 만나게 되면 해일처럼 달려들어 못다한 사랑의 말일랑, 원망일랑 한꺼번에 쏟아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