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적인 시를 쓴 여성시인으로는 누가 있을까. 80년대의 시인으로는 앞에서 다루었던 고정희 외에 <절망하기 위해 밥을 먹고/절망하기 위해 성교한다>고 했던 최승자가 있다. 90년대의 시인 중에는 박서원과 이연주, 혹은 최영미와 신현림을 들 수 있겠고, 네 시인보다 훨씬 과격한 김언휘도 있다. 이들 시에 나타난 여성성 혹은 페미니즘적 요소에 대한 탐색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다른 자리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나는 이제부터 성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노래한 시를 찾아보고 싶다. 외설도 얼마즌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여름, 햇볕에 바싹 달군 홑이불을 덮었다. 태양의 맨살이 나를 받아 안는다. 달큰한 살내음, 태양의 흑점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계란 노른자위처럼 말랑한 그곳으로 기분 좋게 눈을 감으며 내 알몸을 맡긴다. 풀먹인 햇살이 까칠까칠 가슴께를 더듬는다. 봉싯 솟아오른 봉우리. 서서히 온몸이 달아오른다. 감이 부풀고, 대추 열매가 부풀고, 사과가.......머지않아 나의 정원엔 태양을 닮은 자식들 쑥쑥 쏟아져 나오겠지? 두둥실 떠오르는 한낮. -김주혜.[동침] 전문
한여름, 햇볕에 바싹 달군 홑이불을 덮었다. 태양의 맨살이 나를 받아 안는다. 달큰한 살내음, 태양의 흑점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계란 노른자위처럼 말랑한 그곳으로 기분 좋게 눈을 감으며 내 알몸을 맡긴다. 풀먹인 햇살이 까칠까칠 가슴께를 더듬는다. 봉싯 솟아오른 봉우리. 서서히 온몸이 달아오른다. 감이 부풀고, 대추 열매가 부풀고, 사과가.......머지않아 나의 정원엔 태양을 닮은 자식들 쑥쑥 쏟아져 나오겠지? 두둥실 떠오르는 한낮. -김주혜.[동침] 전문
문학작품 속의 사랑 치고 불륜 아닌 것이 있던가. 애틋한 사랑도 없지는 않지만 순탄한 사랑과 갈등 없는 맺어짐은 일단 재미가 없으므로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처녀 총각의 사랑일지라도 갈등이 아니면 파멸이요, 혼전관계가 아니면 삼각관계이다. 부부간의 정상적인 사랑이 작품의 소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김주혜의 [동침]은 부부지간의 운우지정을 더없이 아름답게 그린 시이다. 가슴께를 다듬는다. 봉싯 솟아오른 봉우리, 온몸이 달아오른다. 부플고.......성행위의 과정임에 틀림없는데, 이 시에서는 <음란>과 <쾌락>이 연상되지 않는다. 감이며 대추, 사과 같은 것들이 햇볕을 한껏 받고 여룸듯이 내가 오늘 누리는 이 성적 기쁨이 결국 새생명을 탄생케 할 것이라며 <기분 좋게 눈을 감으며 내 알몸을 > 맡길 수 있다며 시인은 성을 노래한다. 인공수정도 가능해진 시대이지만 동침을 해야 자식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불면의 진리이다. 평이하고도 짐부한 것을 갖고 시를 썼는데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정상적인 성관계를 문학이 도무지 다뤄오지 않았기 째문에 역설적으로 <진부함>이 <신선함>을 준 것이 아닐까.
성을 상업화하게 되면 외설에서 퇴폐로, 퇴폐에서 변태로, 변태에서 엽기로 이어진다. 더욱 거칠고 난폭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성 그 자체는 생명체의 생명력 발휘이며 그것은 또한 종족의 유지를 가능케 한다. 성행위는 그렇게 때문에 인간의 행위 중 참으로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젊은 시인들의 시가 대체로 불쾌한 성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중견 이상의 시인들은 유쾌한 성, 건강한 성, 생명력 넘치는 성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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