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공방일기(2)- 부모님/ 리디아 수녀 (프라도 수녀회)

주혜1 2008. 4. 7. 20:43
제목 : 부모님(2)
혜진이 혜수네가 이사간 지 꽤 오래 되었지만
무슨 일이 있거나 행사가 있으면 오기도 하고 지나는 길에 들리기도 합니다.
가끔 엄마도 서울역에 오면 혜수를 똑 빼닮은 동생 혜민이를 데리고 옵니다.
이 식구들이 올 때마다 좀 더 나아진 깨끗한 모습을 보면
사람에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습니다.
공부방이 처음 생길 때 쪽방에 살고 있던 혜진이네는
4년 전에‘함께하는 집’의 추천으로 사랑의 리퀘스트에 나갔습니다.
텔레비전에 방송되고 그 프로그램에서 지금 갈현동 연립주택
전세를 얻어 주었습니다.
방 3칸과 부엌, 거실, 화장실과 목욕탕이 따로 있습니다.
방 한 칸에 모든 것이 해결되던 이곳 쪽방에서 잘 씻지 못해
옷이든 몸이든 꼬질꼬질 했던 그때의 모습은 사라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것이 정말 보기에 좋습니다.

지난 2006년 10월에는 서울시와 SK 행복만들기 주최로
결혼식을 못올린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을 모아 워커힐 호텔 야외마당에서
합동결혼식을 하니 꼭 와야 한다는 연락이 아빠한테 왔습니다.
지금 이름은 잊었지만‘가문의 영광’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영화배우가 사회를 본다,
호텔 뷔페를 실컷 먹게 해주겠다는 말로 싫다는 경아와 성원이를 졸라
루시아 수녀님과 함께 갔습니다.

넓으나 넓은 호텔 마당에 새하얀 식탁 수십 개가 양쪽으로 차려져 있고
수십 쌍의 부부들이 두 줄로 서서 한가운데로 줄줄이 입장을 했습니다.
식을 못올리고 일생을 살아온 부부들이 뒤늦게 결혼식의 한을 푸는 곳이었습니다.
꽃장식과 예복은 여느 부잣집 결혼식처럼 화려한데
나이 들어 고단한 삶의 표정과 휠체어를 타고 결혼식을 즐거워하는 신랑신부!
이상하게도 이처럼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슬픈 결혼식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결혼식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결혼을 못해서 부러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이 멋지기도 하고 참 신기해서입니다.
그리고 한 번 먹은 사랑의 마음이 영원하기를 맘껏 빌고 싶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의 결혼식이라며 혜진이는 아가씨처럼 이쁘게 미니치마를 입었고
‘엄마 아빠 결혼식에 와서 어떠냐’고 물으니 혜민이를 돌보던 혜수는
쪽팔리는 지 약간 삐딱한 표정으로 픽 웃다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늘도 없이 아직 뜨거웠던 시월의 땡볕 아래 슬픈 결혼식이 지루하게 끝나고
가족마다 10명 이내로 제한된 식탁에 고급 뷔페 요리가 운반되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우리는 앉을 자리가 없어 물 한모금도 못얻어 먹었습니다.
너무 미안해 괜히 오시라고 했다며 자꾸 자리도 없는 식탁에 앉으라는
혜진이 아빠를 뒤로하고 셔틀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혜진 혜수도 뒤따라옵니다.
한참을 헤매다 근처 식당을 찾아 냉면과 쫄면 등을 실컷 먹었는데
호텔 뷔페를 올리겠다고 큰소리 친 나를 보고
이젠 절대로 수녀님 말 믿고 안따라 오겠다며 야유하는 경아와 성원이에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방학이라 겨울캠프에 가자고 전화를 했더니
혜진이는 여름캠프에 같이 갔던 친구 방지혜와 함께 왔습니다.
이런저런 소식을 물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혜진이가 그럽니다.
자기 친구 하나가 아빠가 새아빠인데 친구를 싫어하고 자꾸 때려서
집을 나왔는데 혜진이 집에 같이 살고 있답니다.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가출한 딸의 친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는
부모님의 너그러운 마음이 세상을 지키는 힘이라 생각하니
참 귀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방이 많고 살림이 넉넉해도 쉽사리 자리를 내주기 어려운데
알콜과 노가다로 일생을 보내는 아빠,
글도 세상도 몰라 늘 아이들에게 의지하는 엄마지만
집나온 아이를 그냥 당연히 받아줍니다.
능력이 있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제자식을 포기하는 부모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러고도 스스로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이득도 없이 살아가나 봅니다.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돌아올 계산도 없습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아이를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만 알뿐입니다.
혜진이 엄마가 잠깐 들렸길래
“아니, 자기들도 어려우면서 어쩔라고 그 애랑 같이 살아요?“ 물으니
“어떡해요. 갈 데가 없는데. 걔네 엄마가 반찬도 해오고 생활비도 쪼끔 줘요.”
합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진정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배우고 못배우고 부자고 가난하고 상관없이 니식구 내식구도 상관없이
갈 곳 없는 사람을 거두는 마음입니다.
이 사회가 지금처럼 부유하지 않고 모두가 가난했던 옛날 같습니다.
일기 끝 2008.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