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장사꾼들은 나를 보면 쌀이 있는가? 군복을 벗고 여기로 왔을 걸 하는 후회 때문인지 나는 그들의 팔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왜서나면 나야말로 가난한 군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군복 입은 지 석 달도 채 안되는 신입이다. 가족을 다 잃고 난 후 중앙에서 간부로 일하는 먼 친척 되는 사람이 총참모부에 줄을 대어 배급이라도 타먹고 살라고 입혀준 군복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해양학 전공의 대학 졸업증을 가지고 있어서 빽만 있으면 바보도 출세하는 나라인지라 국방연구소에 중위로 입대할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쌀을 달라고 하다니, 나도 바로 몇 달 전에 처와 자식까지 굶겨 죽인 짐승 같은 놈이라고 그들에게 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래선지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해져서 오늘은 과거를 돌이켜 볼만한 것을 하나라도 사야지 견디기 어려웠다. 뭘 살까. 나는 갑자기 허둥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던 나에게 한 장사꾼이 들고 있는 빵이 보였다. 딸애가 그처럼 먹고 싶어 하던 밀가루 빵, 그 앞으로 다가간 나는 품속에서 돈을 꺼내며 얼마인가 성급하게 물어보았다. 장사꾼은 마침 백 원이라고 대답했다. 빵이 든 봉지를 만져보니 아직도 따뜻했다. 순간 그 온기가 심장으로까지 스며들며 나의 두 눈도 더워졌다. 이 100원이 없어! 이 100원이 없어! 하는 부르짖음이 온 몸을 북처럼 때렸다. 아니, 아이도 못 만져 보았던 따끈한 빵을 네가 지금 사서 어쩐단 말인가 하고 매질하는 것 같아 손에 쥔 100원이 금방 떨렸다. 나는 미안하단 말을 던지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다. 피하면서 빵을 만졌던 손을 불이 나게 불끈 쥐였다. 그 힘이 그대로 어깨에도 미쳤는지 사람들이 내 몸에 부딪치며 곱지 않게 흘겨 보았다. 나는 겹겹이 막아서는 인파를 뚫으며 시장출구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못가 도저히 전진할 수 없는 사람장벽에 막혀버렸다. 키 돋움을 해서 앞을 보니 가운데는 텅 비워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또 어떤 장사꾼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구경거리를 만든 모양이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조선에는 시장에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누구는 빈깡통으로 기름등잔을 만들어 팔았고 누구는 담배꽁초를 주어 힐터로 이불도 만든다. 풀죽도 먹기 힘든 나라여서 일명 송기떡이라고 하는 각종 나무껍질도 식용으로 많이 나온다. 세수물도 판다. 전기가 없어 도시에 물 공급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맹물도 세수물이라는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 어디가나 맹물세수는 5원, 비누세수는 십원, 이런식으로 세수하고 가세요. 소리치는 여인들이 허다하다. 나는 길이 열릴 때까지 참아 보려고 했지만 사람들의 땀 냄새와 비위생적인 시장 환경의 오물냄새 때문에 더 참을 수 없었다. 하여 군인스러운 거친 말투와 우직스런 몸동작으로 무작정 헤집고 앞으로 나갔다. 어찌나 빼곡히 몰려있었던지 내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다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땅이 보이는 곳에 다달은 나는 이마의 땀을 씻을 새도 없이 눈앞의 광경에 굳어지고 말았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그 여인 옆에는 정말 6살쯤 돼 보이는 처녀애가 죄진 것처럼 머리 숙이고 앉아 있었다.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자식을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실례들은 많이 듣고 보아 왔어도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그것도 빵 한 봉지 값에 팔다니, 모여선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너나없이 저주를 퍼부어댔다. “저 년 완전히 미쳤구먼”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자식을 어떻게 팔어?” “생긴 건 바람둥이처럼 매끈한데 속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군” “요즘 별의별 놈들을 다 보겠구만” 어떤 사람이 애 엄마가 맞긴 맞아? 하자 한 노인이 처녀애에게 묻기까지 했다. “애야, 저 여자 정말 네 엄마냐?” 그 목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아이의 얼굴을 주시했다. “저런저런, 애가 불쌍하구나” “야 쌍년아 아이를 팔겠으면 제대로 팔아라. 백 원이 뭐냐” “개도 삼천 원인데 딸이 개 값도 안 되냐!” “제 입도 풀칠하기 힘든 세상에 누가 돈 주고 아이를 갖다 기를 사람이 있겠다고 저 지랄이야” “그러게나 말이지. 차라리 아이를 키워달라고 사정하면 동정이라도 받겠다” “백 원으로 부자 되겠냐 미친년아!” 그 소리들은 고함에 가까웠지만 여인은 두 눈을 내리 깔고 미동도 없었다. 그게 더 미웠는지 사람들의 욕은 더 거세져 돌덩이처럼 날아들었다. 누군가 “야 할 말 있으면 어디 변명이라도 해봐. 저거 벙어리 아니야”라고 하자 이번엔 욕질보다도 벙어리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 보기에도 그 여인은 정말 듣지도 말도 못하는 벙어리 같았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저 여자, 저 여자라는 말 대신 저 벙어리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서로 수군들 거렸다. 벙어리에게 아무리 욕을 해봤자 소용없겠다 싶었는지 누군가 이번엔 큰 소리로 아이에게 아버지가 없냐고 물었다. 또다시 시장 안은 조용해졌다.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하는 하나같은 기대감에 어찌 보면 모두들 긴장한 듯싶었다. 아이는 좀 전보다 더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아부진 없어요. 먹지 못해서....” 여기까지 맥없이 중얼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머리 들며 또릿또릿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우리 엄마 욕하지 마세요.... 울 엄마 지금 암에 걸려서 죽으려고 해요.” 비명처럼 들리는 아이의 그 소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찌르는 창 같았다. 그 창 앞에선 어느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죽음보다 이제 곧 죽어야 할 삶을 볼 때가 더 침통한 법이다. 그 여인을 보니 이 세상 마지막 시간을 보는 것 같았다. 목소리라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사연을 쏟아 놓으며 통곡이라도 해보겠는데 그렇지도 못하는 것이 오죽하랴싶어 사람들은 더더욱 처량하게 벙어리 여인을 지켜보았다. 왜 이때껏 그를 한번도 동정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도 엄마를 닮아 미운 구석이 없었다. 갸름한 얼굴, 쌍까풀진 두 눈, 오똑한 코, 작은 입술, 이렇게 흩어보던 나는 아이의 입술 밑에 난 작은 김(점)을 보고 흠칫했다. 내 딸애에게도 그 자리에 그런 작은 김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김이 있어야 복이 되고 보이는 곳에 있으면 화가 된다는 동네 어르신의 말 때문에 늘 가슴에 걸렸던 딸애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처녀애의 불행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는 딸애를 먼저 보냈는데 저 애는 아빠를 먼저 잃었구나 하는 처지의 공통심리가 작용하면서 언젠가 만났던 인연 같기도 했다. “저 여자 죽으면 애는 정말 어찌 사노” “엄마도 살고 애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친척 중에 애 기를 사람이 없을까?” “에구 저거 불쌍해서 어쩌노” 그들 중 장사꾼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모녀 앞으로 다가갔다. 장사꾼은 5백원을 꺼내 여인의 손에 쥐여주고 대신 목에 걸린 종이장을 벗겨내며 말했다. “아주머니, 요즘 누구나 먹고 살기 힘든데 남의 아이를 돈 주고 데려다 키우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이 돈 가지고 가시우”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공감하는 소리들이 연발했다. “맞아요. 그 사람 말 들어요.” “어서 그렇게 해요. 여기 나와 있어야 병이나 더 심해져요. 엄마가 살아야 아이도 살지요” “날도 찬데 아이 데리고 어서 가요.” 나는 그 말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여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소리들을 못 들어서인지 아니면 듣고 하는 행동인지 벙어리 여인은 장사꾼의 손에 돈을 돌려주고 글을 다시 목에 걸었다. 5백원보다 애를 부양해주는 게 더 고맙겠다는 마지막 사정 같기도 하고 자기는 그 돈에 살아날 목숨이 아니라는 의미 같기도 했다. “가자. 인간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에서 이런 짓은 분명히 체제증상 모독죄야. 어디 네 새끼 까지 정치범 수용소에 가 봐라.” 팔소매까지 걷어 올리고 안전원이 여인을 무섭게 잡아끌자 아이가 울음 절반 애걸 절반으로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아파서 그래요. 제발 놔주세요. 엄마 가자. 엄마 죽을 때 나도 같이 죽으면 되잖어. 나 혼자 안살거야” 엄마랑 같이 죽겠다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아내와 딸의 죽음을 보는 착각과 함께 온 몸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나만의 불행이 아니라 이 나라 인민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는 불행, 이런 불행의 나라를 금방 저 놈은 인간중심의 사회라고 했다. 노예제도 때도 사람은 사람 값으로 당당히 팔렸다. 그러나 100원에도 팔릴 수 없는 노예보다 못한 목숨들이여서 저 놈은 저렇게 지금 마구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모녀에 대한 동정도 동정이지만 그 놈의 행위가 얄밉기도 하여 벙어리 여인에게 다가가며 큰 소리쳤다 “이보시오.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겠소. 나에게 돈 백원이 있소” 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뭐야!?” 하면서 나에게 머리를 돌리던 안전원은 나의 군복을 보고 뚝 굳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의 손에 돈을 쥐어주며 나는 간절히 말했다. “이 백원으로 당신 딸을 산다기보다 당신 모성애를 사는 것이니 그렇게 아십시오” 그리고 그 말을 시각적으로 확인시키기 위해 딸애의 여린 손목을 확신있게 잡았다. 내가 당장 데려 가려는 줄 알았는지 여인이 반사적으로 내 팔을 성큼 잡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갑자기 사람들을 밀어내며 어디론가 급히 갈려고 하였다. 처음 그의 행동을 이해 못하던 사람들이 이내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나도 벙어리 여인의 돌발적인 행동이 몹시 의문스러웠다. 나는 흐려지는 눈을 껌뻑이며 다시 보고 또 보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판 100원으로 사 온 밀가루 빵 한봉지였다. 나와 모든 사람들을 더 울리게 한 것은 벙어리라고 생각했던 그 여인이 빵을 아이의 입으로 가져가며 왕왕 통곡할 때였다.
탈북자의 시집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 중에서 |
이 글은 2003년 남한에 온 탈북자 김운주(가명)씨가 지난해 7월 자유북한방송에 기고한 것이다.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주 청취자로 하는 라디오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은 이 글을 지난해 7월17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최근 이 글은 누군가에 의해 잔잔한 음악이 곁들여진 동영상 파일로 제작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로 확산됐다. 자유북한방송 “100% 사실” 자유북한방송은 김운주씨가 북한을 탈출하기 전 평양의 한 시장에서 직접 본 광경을 허구없이 쓴 글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북한방송 김기혁 부국장은 2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글 내용은 100% 사실”이라며 “김씨에게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가감없이 써달라고 부탁해 기고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국장은 이어 “북한에서 이 같은 상황은 일반적인 광경”이라며 “북한 시장에 나가보면 집에서 굶고 있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어린 아이도 많고, 겨울이면 헐벗은 어린 동생을 안고 함께 얼어죽은 누나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했다. 자유북한방송은 ‘너무 일반적인 풍경’이란 이유로 이 글을 방송하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은 이 얘기를 들어봤자 별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김 부국장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평범한 소재여서 라디오로는 방송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며 “남한 사람을 위해 인터넷 기사용 소재로만 썼다”고 말했다. “지어낸 얘기 아닐까?” … “사실이 아니었으면…” 그러나 이 글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나가자 “혹시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네티즌도 있다. 실화라고 하기엔 너무 극적인 줄거리인데다 단편 소설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완벽한 구성과 반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Ro***’라는 네티즌은 “내용이 극적이라 정말 실화일까라는 의구심도 든다. (너무 비참한 얘기여서) 사실이 아니라면 더 좋겠다”고 했다. 쿠키뉴스는 이 글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자유북한방송을 통해 탈북자 김씨와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자유북한방송측은 “김씨가 북한 노동당 중요직에 있던 탈북자여서 신분을 노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원문보기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민성 기자, 기사전송 2007-01-30 12:38
|
'간직하고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먼 자들의 도시 (0) | 2009.01.10 |
---|---|
예이츠의 시, 엘리엇의 시에 나타난 삶과 죽음 (0) | 2009.01.02 |
시인의 세계-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0) | 2008.02.24 |
윌리암 포크너 연설문, 노인과 바다, 외 (0) | 2007.10.25 |
윌리암 포크너 (0) | 2007.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