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든 문학의 창조성이 삶의 영역을 넘어서서 죽음 다음에도 이어진다는 생각은 공통적으로 지닌 것 같다. “시는 죽음을 초월한다”는 허만하 시인의 간명한 언급이 그러한 생각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2008년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한꺼번에 수상한 바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되었는데, 영화 팬들 사이에 찬반 양론이 무성하였으나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 영화에는 마치 악마처럼 설정된 잔혹한 살인마가 나오고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 살려고 몸부림치는 도망자가 나오고 이 사건을 언제나 한발 늦게 추적하는 나이든 보안관이 나온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은퇴하여 꿈에서 보았던 몽롱한 사건을 부인에게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영화는 거기서 바로 끝나고 만다. 평범한 노인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노인을 위한 영화는 아니구먼” 하고 극장 문을 나올 것이다. 이 영화의 노인들은 모두 잔혹한 살인마 앞에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무력한 존재로 나온다. 우연과 광기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인생의 연륜이나 노인의 예지는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 시는 1928년에 출판된 시집 '탑(The Tower)'에 수록되어 있다. 그 시의 전반부는 다음과 같다.
그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아니다.
젊은이는 서로 팔짱을 끼고,
나무의 새들은―그 죽어가는 세대들은―노래 부르고,
연어 뛰는 폭포, 고등어 몰려드는 바다,
물고기건 짐승이건 새건 모두 여름 내내
배고, 낳고, 죽는 것들을 찬양한다.
모두들 그러한 감각의 음악에 사로잡혀
늙지 않는 지성의 업적을 무시한다.
늙은이란 한갓 하찮은 존재일 뿐,
지팡이에 걸린 누더기일 뿐, 만약
그 덧없는 옷을 이루는 모든 조각들을 위해
영혼이 손뼉 치며 노래하고 다시 소리쳐 노래하지 않는다면.
또한 영혼의 장엄한 업적을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노래할 학교도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 바다를 항해하여
이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온 것이다.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Monuments of unageing intellect.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노인에게 고달픈 세상이 되었다는 영화의 메시지와는 달리 이 시는 노년의 지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남긴 업적의 장엄함을 강조한다. 순간의 감각에 사로잡혀 지성의 영속성을 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겉으로는 남루한 누더기처럼 보이는 노인의 육신 속에 우리가 간직해야 할 장엄한 영혼의 노래가 간직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는 예이츠가 예순을 넘어 쓴 시이니 육체의 쇠약과 노년의 예지 사이에서 노년 편에 서서 시상을 전개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예이츠는 천 년 동안 고대 문명의 꽃을 찬란히 피웠던 비잔티움을 설정하여 불변의 황금으로 이루어져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예술(the artifice of eternity)’을 꿈꾸는 것이다. 이러한 시의 내용과는 달리 이 시의 첫 구절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혹은 영화의 원작인 소설)는 예이츠의 꿈이 무참히 무산되어 가는 비루하고 추악한 현실의 모습을 폭로하고자 한 것이다. 영화는 그렇지만 우리는 예이츠의 눈길처럼 노시인의 원숙한 정신을 우러러볼 뿐이다.
원로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든 사람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고 그 다음이 T. S. 엘리엇(1888~1965)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어떤 점이 시인들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각인되었을까? 흔히 릴케를 독일 시인이라고 하지만 그는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했을 뿐 여러 나라를 오가며 생활했기 때문에 유럽 시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그는 1875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는데, 이때 프라하가 있는 보헤미아 지역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 있었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가 독일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독일어로 작품 발표를 하였다.
그는 10세 때 양친이 이혼하여 아버지 밑에서 고독한 성장과정을 거쳤다. 아버지의 뜻에 의해 프라하의 군사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20세 때부터 프라하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인문학 수업을 받았다. 한때 파리로 가 조각가 로댕의 비서로 일하기도 했으나, 40대 중반 이후에는 스위스 산중의 뮈조 성에 기거하며 그의 걸작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완성하여 1923년에 출간하였다.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고독한 집필 생활을 하다가 원인 불명의 병으로 51세의 나이에 타계하였다. 평생 병약한 몸으로 여러 곳을 편력하며 고독 속에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해 간 릴케의 삶과 문학은 많은 시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초기에 대상의 객관적 형상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형상시도 쓰고 사물의 독자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물시도 시도했으나 눈으로 보는 시에서 벗어나 “‘마음의 작품’을 쓰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했다”(안문영 역, 『두이노의 비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문학과지성사, 1991, 141쪽 참조). 특히 많은 여행을 통해 유럽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여 그 나름의 독특한 사유 체계를 구성하였다. 그에게 신과 종교는 기독교의 울타리에 갇힌 독선적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깨달음으로 가는 안내자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는 “삶의 긍정과 죽음의 긍정은 하나”이며, 죽음은 삶의 가려진 또 한 면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이승도 저승도 없는 온전하고 커다란 통일의 세계 속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천사들’이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위의 책, 124쪽 참조) 이렇게 삶과 죽음을 초월한 천사의 이미지, 생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열망을 추구한 오르페우스의 이미지는 관념의 차원이 아니라 문학적 상징의 차원에서 현대 시인들에게 다양한 명상과 탐색의 자료가 되었다. 요컨대 기독교적 천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도 희랍 신화의 인간중심적 열린 사유를 도입하고, 관념적이면서도 새로운 사색을 유도하는 릴케의 시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결합한 양식이라 할 만하다. 한국 시인들은 릴케의 다층적 상징성에 젊은 시절 깊은 충격과 자극을 받았고 노년에 들어서도 릴케의 흡인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죽음과 삶을 함께 넘으려 했던 릴케의 상상력이 더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그러면 T. S. 엘리엇은 어떠한가? 엘리엇의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나 『황무지』의 모더니즘적 특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엘리엇이 보인 인도의 신비주의 사상이나 불교적 사유에 대한 관심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의 원로시인들이 엘리엇에 관심을 갖는 데에는 엘리엇의 모더니즘적 병치은유의 기법보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불교 사상적 요소가 무의식적 동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엘리엇은 하버드 대학 재학시절 인도 철학 강의를 듣고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배우면서 인도 철학과 불교 사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후기 시로 갈수록 불교 사상적 요소는 그의 작품에 더욱 짙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이정호, 『포스트모던 시대에서의 영미문학의 이해』,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1, 358-401쪽 참조)
그의 유명한 평문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 나오는 ‘비개성’ 이론은 불교에서 말하는 ‘제법무아諸法無我(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의 관점과 유사하며, 『황무지』에 나오는 ‘깨어진 조각의 형상들’ 역시 실체가 없는 무無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모든 것이 흩어져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사상과 관련된다. 특히 그가 50대 중반에 완성한 후기의 대표작 『네 사중주(Four Quartets)』(1943)에 나오는 다음 시행은 『금강경』에 나오는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는 구절과 통한다.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 안에 있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 안에 포함되어 있다.
Time present and time pass
Are both perhaps present in time future
And time future contained in time past. (위의 책, 391쪽에서 인용)
이뿐 아니라 “나의 시작에 나의 끝이 있다(In my beginning is my end)”고 말하며, 시작과 끝이 합쳐지고 움직임도 아니고 정지도 아닌, ‘일종의 영靈의 중심’인 항정점(恒停點/the still point : 위의 책, 394쪽)을 역설적 언어로 표현한 것도 불교 사상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는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영원한 시공의 초월을 순간 속에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순간이 영원이 되고 끝이 시작이 되는 불교의 순환적 우주관을 통해 동양정신과 서양정신의 통합을 염두에 두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엘리엇의 문학이 세계의 문학이 되고 한국의 원로시인들에게도 매력 있는 시인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한국의 원로시인들은, 육체의 노쇠에도 불구하고 남은 시간이 얼마이든 시에 열정을 바치고, 삶과 죽음을 함께 긍정하며 순환의 시간 속에 영혼의 숨결을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평론가이기 때문에 원로시인들이 문학평론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관심이 갔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인문학적 지성을 바탕으로 공정한 마음으로 시의 뿌리를 살펴 문학적 감동의 실체를 섬세하게 드러내되 도식성에 갇히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다만 한 분 김규동 시인은 “평론가가 있는가요?”라는 답변을 하였다. 이것은 매우 슬픈 전설과도 같은 답변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문득 예이츠의 마지막 작품 「벤 불벤 산 아래에서(Under Ben Bulben)」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이 구절은 예이츠가 유언으로 남긴 자신의 묘비명이며 실제로 그의 사후 묘비명으로 새겨졌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겠지만, 미래의 행인은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갈 뿐일진저.
삶에, 또 죽음에,
차가운 시선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가라!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이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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