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유명론에 대해

주혜1 2008. 10. 6. 17:42

이번에는 경험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인식 주체의 경험이 지식의 연원이자 진리의 근거’라는 사고방식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경험주의는 철학적 전통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름 뿐인 ‘인간’ 또는 ‘인간'인 우리들


경험주의의 사촌쯤 되는 사상이 있는데 이는 ‘유명론’입니다. 유명론이란 한마디로 말해 ‘오직 이름뿐’이란 것이지요. 무슨 뜻이고 하니, 이 세상에 보편적인 것은 오직 이름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즉 개별적인 ‘선화’, ‘철수’, ‘선희’는 있어도 인간이라는 보편자는 그들에게 이름을 붙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여기에도 반대의 의견이 있습니다. 바로 ‘실재론’이지요. 이것은 보편자는 분명 존재한다는 의견은로 위의 예에서 보면 사실 개별적인 ‘선화’, ‘철수’, ‘선희’라는 모든 개인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라는 ‘보편자’는 분명 실재한다는 의견이지요.

정리하자면 유명론은 오직 이름붙이기 나름이라는 것이고, 실재론은 보편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뿌리는 어디에 있지?


이 서로 다른 대립된 의견은 고대 그리스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실재론적인 입장은 약간은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상통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가 실재하고 인간의 지식이란 그 이데아 세계에 대한 기억이며 따라서 진리란 그 기억을 되살려 이데아의 세계에 다시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이데아란 보편개념이고 이것이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유명론은 정확히 들어맞는 사상가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의문점을 갖지요. 그리고 이 의문점을 다시 요약한 사람이 포르피리오스보에티우스 정도입니다.


중세로 들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 플라톤주의적 입장에서 실재론의 편에 서있습니다. 중세철학 전반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지요. 신학적 사고방식에서 유명론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칫 신이란 이름뿐인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유명론을 잘못 주장했다가 중세시대의 그 끔찍한 화형을 당했을지도 모르지요.
여하튼 실재론의 우세 속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즉 인간의 사고가 발달할수록 자연관찰이나 지식을 신학의 체계 속에서 증명하기 힘들어지죠. 그런데 이에 힘을 다시 준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입니다. 이른바
스콜라철학이 탄생한 것입니다. 토마스아퀴나스는 스콜라철학의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조류 속에서 보편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잉태되고 훗날 유명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학자들은 이제 실재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과 유명론자들간에는 당연히 논쟁이 붙었지요. 물론 이 논쟁은 당연히 실재론자들의 유명론자에 대한 억압으로 끝났습니다. 당연한 시대적인 결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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