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인 250 여 명, 여수에서 바다를 노래하다

주혜1 2008. 11. 13. 09:46

시인 250 여 명, 여수에서 바다를 노래하다
한국시인협회  | 2008.11.10


한국 시인협회 가을 세미나가 11월 8~9일에 여수에서 열려 전국에서 모인 250 여 시인들이 ‘바다’를 노래하였다. 바다를 주제로 한 157편의 시가 <바다가 시인을 부른다> 표제로 엮어지기도 하였다. 한국시인협회 오탁번 회장의 권두에 적힌 글은 이러하였다. “1908년 <<소년>> 지에 발표된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기점으로 하는 한국 현대시 100년의 의의와 성과에 대하여는 그동안 관련 학계와 문단에서 다양한 문학사적 조명을 거듭해 왔습니다.”에서 밝힌바와 같이 한국 시인협회 가을정기세미나의 주요 의제로 삼았다.

개화할 준비가 전무한 상태에서 서양문물과 일본의 침략야욕에 노출된 조선 말기에 발화자를 ‘바다’로 한 ‘소년’에게 보내는 시적 전언은 의미심장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세계로 뻗어가는 유일무이한 관문이었던 바다는 오늘날에는 미래의 경제의 바로미터로 인식하고 그 활용과 경제적 가치 도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수는 2012년에 엑스포박람회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만국박람회의 다른 이름인 엑스포가 해양도시 여수에서 개최되어 신해양경제의 선도도시로 입지를 구축한다는 목표아래 여수시는 만반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여수로 전국시인들이 집결하였다.

8일 토요일 아침 8시에 운현궁 앞으로 속속 시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껏 가장 많은 대수인 4대의 버스에 시동이 걸려 있었고 이름표를 찾아 앞가슴에 단 시인들은 수학여행 가는 학생처럼 설레는 얼굴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 외에도 서울에서부터 승용차로 출발한 시인들이 많았고 전국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속속 여수로 모여들었다. 참가자의 수가 종잡아 250여명에 달했다. 9시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동탄을 빠져 나오기까지 속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였다.

여름이 길었던 까닭에 가을도 느리게 움직였다. 들판에는 갈무리해 놓은 볏짚이 빈 논을 채우고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단풍은 더욱 고왔다. 중부지방보다 비가 좀 더 많은 까닭이겠다. 기흥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탄천휴게소 2층을 가득 채운 시인들은 국밥과 비빔밥으로 점심을 들었다. 도착 시간은 예정보다 늦어졌다. 도착한 시인들은 곧장 세미나 실로 모였다.

여수시장의 환영사가 있었고 이어진 오탁번 회장의 인사말은 시인들의 디엔에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시인은 예언자이고 무당이고 사기꾼이다. 시인들이 엑스포 성공적 개최를 축원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라는 말로 전국시인대회를 자축하였다. 동시에 시인의 존재에 대해 좀 더 부언한다면 깃발이고 불꽃이고 축포이겠다.

이어서 내빈들을 소개하였는데 하루 전에 도착하여 여수를 둘러본 김남조 선생을 비롯하여  박희진, 이근배, 이건청, 오세영,, 이생진, 김용직, 박상천, 신병은, 윤강로, 이가림, 이영춘, 문인수, 신현정, 성찬경, 손광은, 임호상, 허형만, 조창환, 신협, 송명진, 양채영, 이명수, 이길원, 송욱, 고창수, 나태주, 이승하, 구재기, 박정대, 등 많은 시인들이 자리를 빛내 주었다.

<바다가 시인을 부른다> 는 학술세미나의 발제자는 서울대 명예교수이고 예술원 회원이신 김용직 선생이 맡아 <한국 현대시에 있어서 ‘바다’ 심상의 형성 전개> 라는 제목으로 ,해에게서 소년에게> 가 왜 현대시의 효시인지 그리고 새로운 문화 기호로서의 바다, 육당 시의 문화사적 의의를 다루었다. 정물화된 바다를 보여 주었던 김억과 김소월의 바다와 반제의식을 보여준 임화의 바다와 육당의 바다를 비교분석하였다. 토론자는 한양대 교수 박상천 시인의 질문이 있었다. 두 번째로 바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인연 그리고 생체험을 가진 이생진 시인이 <섬, 고독을 위하여> 가 준비되었다. 여러 섬들의 단상을 정리해 주었다. 등대가 자살을 유혹하는 격렬비열도, 등대가 추억의 지표가 되는 횡간도, 섬을 고집하는 선비 거문도, 여서도, 홍도, 섬을 떠나는 사람들의 말도, 섬에서 온 편지라는 소제목의 대모도, 노인과 소주의 소모도, 무인도를 위하여- 옹도, 바보 같은 바다야 가의도, 중에 일부를 발제자가 낭독하자 토론자로 선정된 신병은 시인은 지극히 개인적인 단상에서 출발한 것임으로  질문은 바다, 섬으로 떠도는 이생진 시인의 이해로 생래적 특질에 대한 것이었다. 토론자는 질문과 동시에 이생진 시인에 대한 이해로 자체 결론을 맺었다. 사회는 이승하 시인이고 이근배 시인 발제 연설의 좌장으로 토론자들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바다시가 낭송될 때마다 국악 그룹 금타가 배경음악을 연주하였고 사이사이에 연주를 해주었고 2부에서 젊은 소리꾼 제정화 고수 박수철이 장단을 맞추며 소리를 들려주었다. 소리꾼 제정화는 춘양가를 준비하였으나 오늘의 주제와 어울리는 수궁가로 바꾸어 들려주었다. 시인들은 우리의 소리의 독특한 창법과 정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250여 명의 시인의 만찬이 한일관에서 베풀어져 흥겨운 자리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문화의 보고인 남도의 음악과 음식과 문화 사랑의 열정을 잠시 떠올리며 낯 선 시인들끼리도 대화의 자리가 풍성하였다.

숙소로 돌아온 시인들은 배정된 호실을 확인하고  곧장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시인들은 리조트 로비에 모여앉아 김생수 시인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미 정평을 얻은 박완호 시인은 이명수 시인의 강권에 못 이겨 탁자 위로 올라가 개다리 춤을 추었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 되었고 나갔던 시인들이 하나 둘 합류하며 송상욱 시인이 기타를 쳤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여니 남도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 왔다. 남도는 리아스식 해안이 많아 바다는 마치 잔잔한 호수 같았다. 섬이 가로 막아 바다는 내륙의 저수지 크기 정도로 보였다. 늦도록 여흥을 즐겼음에도 아침에 모습들을 빠짐없이 보여주었다. 입동이 지난 지 이틀이 된 일요일 여수의 아침은 산책하기에 그만이었다. 이곳은 남국의 정취를 얼마간 포함하고 있었다. 야자수를 올려다보며 화단의 꽃의 이름은 시인들에 따라 달리 추측되었다. 천리향과 유사한 잔잔한 꽃의 향기는 전국에서 모여든 시인들의 후각을 자극하였다.

조식 후 9시 반에 오동도를 향해 버스가 움직였다. 삼 십여 분 갔을까. 버스는 멈췄고 시인들은 하차했다. 오동도에는 오동나무는 얼마 없다. 동백나무가 울울창창하고 후박나무 물푸레나무가 관찰되었다. 호박엿은 원래 후박 껍질로 만들었으나 발음이 와전되고 와전된 발음대로 후박껍질 대신 호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동백섬을 조금 오르자 새소리가 들렸다. 문화 해설자는 직박구리라고 알려주었다. 오동도의 이름의 유래가 인상적으로 들렸다. 오동나무가 많은 오동도로 오동 열매를 먹는 봉황이 몰려들자 왕이 날 징조로 여기고 두려운 나머지 오동나무를 베어버렸다고 한다. 그 자리를 동백나무로 채워진 셈이다. 스스로를 한정시킨 전설이 전해주는 정신이 주는 불편함을 가지고 용굴로 갔다. 정작 용굴 안으로 들어가기는 용이하지 않았다, 난간에 기대어 바위틈에서 자라는 해국과 머위 꽃이 해풍에 키가 자리지 못한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 섬을 둘러보고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분수로 모여 사진을 찍었다. 많은 사람을 앵글 속에 가두느라 이선 시인은 위치를 재정비하였다.

점심은 게장백반을 들고 전날 받은 가죽 쿠션을 떠올리며 GS 칼텍스 홍보관에 하나의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사회공헌이라는 다소 생소한 직함의 이승필 팀장은 애송시와 자작시를 낭송하며 시인들과 교감을 유도했다. 우리는 홍보영화를 보고 버스를 탄 채로 정유공장을 둘러보았다. 이십 여분을 30 킬로의 속도로 돌아보며 지극히 피상적일 수밖에 없지만 쇠파이프의 이어짐은 말문을 막았다. 뇌의 주름 같은 무수한 파이프와 연결된 기계들, 서투른 솜씨로 사람의 뇌를 베껴놓은 것 같은 정유공장의 기계구조물들을 둘러보며 사람의 일들을, 결과들을, 인간의 문명을, 바다 앞에서 막막해지듯이 막막한 감정에 맞닥뜨렸다. 나는 바다가 시인을 부른다는 주제 아래 지낸 이틀간의 일정을 생각하고 바다를 생각하며 옆 걸음질치며 곧 뻘을 파고들며 몸을 숨기는 엽낭게처럼 어느새 작아져서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