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눈꽃이 소리없이 울고 있다. 펑 펑 펑

주혜1 2009. 1. 3. 08:43

zzzz2008년 12월 30일 김주혜 시집『연꽃마을 별똥별』

 

눈꽃이 소리없이 울고있다, 펑, 펑, 펑

 

눈 내리는 동짓달 깊은 밤, 김주혜 시인의 『연꽃마을 별똥별』을 읽는다. 아버지별, 어머니별, 별똥별도 흰 눈꽃 수놓인 이불 한자락 덮고 잠든 깊은 밤 『연꽃마을 별똥별』을 읽는다.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무겁고 슬퍼지면 가끔 창밖을 바라본다. 함박 눈꽃이 소리없이 울고있다. 펑, 펑, 펑. 그렇게 슬픔을 날려 보내며 시인에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4년『문학과창작』계간평에서 시인의 시「억장」을 ‘잘 되면 제탓, 못 되면 조상탓’ 이라는 말을 들먹거리며 너무 안일하게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이후 2007년, 병술년 윤칠월에 할머님 묘를 개장하고 화장시켜드리며 그 정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억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며 “----아무래도 이 팔자가 꼬인 것은 명당값도 못하는 조상탓인 것 같아 아버지의 집을 허물기로 했다”는 시인의 솔직한 고백이 가슴 아픈 곳을 정곡으로 찔렀다. 그 다음 전개되는 비극적인 풍경 앞에서는 백기를 들고 무조건 항복, 시인의 기막힌 슬픔에 투항 할 수 밖에 없었다.

---한 삽 한 삽 퍼올리는 동안, 시간의 켜를 허물고 나는 아버

지를 따라가겠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10년 동안 아

무도 몰래 흘린 눈물로 흠뻑 젖은 채 오들오들 떨고

계신 아버지를 붙들고.

-「억장」후반부

 

시는 그렇게 절망의 밑바닥을 절정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시인이나 그 시를 읽는 이나 스스로 그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야했다. 혹시 절망이 너무 깊거나 상처가 치명적이면 어떻게하나하는 걱정도 들었다. 허나, 신작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연꽃마을 별똥별」을 읽다보면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그가 보고 싶어 연꽃마을로 달려왔다. 숨은 듯이 참선

參禪을 하고 있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부좌跏趺坐

하고 앉은 그의 손가락 끝에 잠자리가 날아와 앉았다.

잠자리도 흠칫 몸을 떠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

다. 별똥별 한 줄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하늘에서

내 안으로 곧장 날아왔다. 동쪽으로 갈까 서쪽에서 잠

을 잘까. 이 하늘 저 하늘 떠돌던 별똥별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한꺼번에 연꽃마을 내 가슴 어둠 속으로 쏟

아져 들어왔다. 그 울음덩이가 불로 타오르고 물보라

로 꽃을 피웠다. 내 안에 연꽃 향기가 가득 찼다.

-연꽃마을 별똥별전문

 

시인은 우연히 날아앉은 잠자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사뭇 떨려옴을 이야기 하고있다.

‘세밀한 묘사와 분위기 연출’의 묘를 한껏 살려냈다. 참선중인 그의 모습과 잠자리의 미세한 떨림, 정중동(靜中動)으로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시인은 “나는 눈을 감았다”라는 시적인 장치를 마련한다. 별똥별과 연꽃마을이 시인의 가슴 속에 쏟아져 들어오는 극적인 장면 변화를 위해 읽는 이에게는 갑작스런 충격을 줄이기 위한 완충장치인 셈이다. 또한 시인에게는 눈을 감음으로써 상상력의 세계로 훌쩍 날아갈 수 있는 차원의 변화가 용이해진다. 시인은 “내 안에 연꽃 향기가 가득찼다”까지 한 걸음으로 내달아 갈 수 있었지만 “동쪽으로 갈까 서쪽에서 잠을 잘까. 이 하늘 저 하늘 떠돌던 별똥별”하면서 짐짓 딴청을 부린다. 읽는 이가 새로운 장면 변화에 익숙해질 때까지 마음의 여유를 부려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이런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그 다음 눈부신 결말을 예비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 울음덩이가 불로 타오르고 물보라

로 꽃을 피웠다. 내 안에 연꽃 향기가 가득 찼다.”

 

별똥별이 울음덩이로 불로 타오르는 동안의 시인의 뜨거운 고통을 짐작해본다. 내마음까지 확확 달아올랐다. 불로 타올라 남긴 것이 한 줌의 재였다면 참으로 허망했겠지만----

시인에게는 한 줌의 재가 아닌 ‘물’, ‘물보라’가 남아 생명성을 갖게되니 시인의 이름만큼 (주혜가 주님의 은혜라는 뜻이라고 한다) 축복스럽다. 물보라에서는 고통을 씻어내는, 어떤 정화의 힘이 느껴진다. 물보라로 꽃을, 그것도 연꽃을 피워내 시인의 가슴 속은 연꽃 향기로 가득 채워진다. 시의 초반부에서 손을 내밀어도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연꽃을, 보고싶던 그를 오롯이 가슴 속에 다 채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의 극락인 셈이다. 멀리있는 그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연꽃의 향기, ‘香遠益淸’(북송 사상가 주돈이1017-1073, 愛蓮說 ) 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우여곡절,「억장」에서 「연꽃마을 별똥별」로 시인은 향기롭게 일어섰다.

 

그밖에도 가슴에 꼭꼭 와 닿는 시편들이 많았다. 제 1부, 「억장」,「매생이를 아시는지요」, 「부활」, 세 편에서 시인의 시세계를 총체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대보름달이 뜨면 몸이 뜨거워지는 여자,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건드리면 뜨거운 열정이 활활 살아나는 여자, 그 또한 김주혜 시인의 참모습이니 ‘나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라는 노랫말에 슬쩍 끼워넣고 싶다. 경건한 멧세지를 전해주는 「부활」의 성스러운 모습처럼 아마 오늘 밤, 새해를 맞는 자정 미사를 드리고 있을지 모르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사물들 제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그 날, 그 시간, 그 어둠」의 서늘하고 투명한 슬픔이 긴 여운을 남긴다.

 

해가 저문다

주위에 빛나던 것들 서서히

빛을 추슬러도

모든 사물들 제자리에 그대로 있다

 

적막이 길게 가로지르고

새들도 둥지를 찾아 떠났다

어둠이 내리나

둘레의 꽃들은 향기를 잃지 않고 있다

바람은 대낮보다 더 싱그럽고

풀 향기는 새벽처럼 짙게 속삭인다

 

차라리 흐르는 눈물방을

그 투명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

한 마리 반딧불이가 되고 싶다

-「그 날, 그 시간, 그 어둠」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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