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은행나무 아래 비닐하우스 그 집- 늙음은 은총이다. / 성모기사

주혜1 2009. 2. 17. 17:08

은행나무 아래 비닐하우스 그 집

 

 

김주혜 비비안나(시인)

 

얼마 전 동창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는 오늘날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생겨나는 사회적 문화적 갈등은 물론, 사적으로도 노인 부양에 따른 도덕 윤리의 붕괴 현장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어느 집안에서 치매 끼가 있는 어머니의 거처를 의논 끝에 시설 좋은 요양소로 모시고 가는 차에서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시던 어머니가 한숨을 푹 쉬며 "참 멀리도 갖다 버린다.” 고 혼잣말처럼 하시더라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현대판 ‘고려장’이 따로 없구나 싶어 곧 닥쳐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젖어 모두들 한동안 숙연해졌었다.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수명 연장의 획기적인 현상을 가져왔고, 이제는 그 본연의 욕구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복합적인 문제들로 새로운 가정 내의 골칫거리가 되어 말년엔 결국 현대판 ‘고려장’ 신세가 되어 시설에나 들어가게 생긴 것이다.

 

그동안 우리 민족의 자랑이었던 대가족제도 속에서 공경의 대상으로 존재해 오던 노인이 오늘의 현실에 와서는 퇴물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 그 노인들이 지니고 있는 삶의 지혜는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고 말았다. 그 결과, 현실은 도덕불감증 환자들로 북적이고, 시공을 초월한 온갖 꼴불견의 현장에서조차 노인들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주어야 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자녀들마저도 장성한 후엔 마치 저 혼자의 힘으로 자란 것처럼 행동하니 이 시대에 노인들에겐 진정으로 설 땅이 없어져 결국 혼자 살아가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 되고 말았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이 직장에 다니셨던 관계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나의 성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부터 찾았다. 할머니가 안 보이면 불안하고 짜증이 났다. 모든 걸 할머니 손으로 해결하는 나를 보다 못해 시집은 어떻게 가냐고 놀리면 '할머니 데리고 가면 되지' 하고 철없는 말을 할 정도로 할머니를 따랐다.

 

그러던 내가 그동안 직장에 나간다는 핑계로 주일미사만 겨우 지켜오다가 직장인반 레지오에 입단을 하고 나서 독거노인들의 비참한 실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불현 듯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 성당 근처는 그린벨트로 묶여져 있는 곳이어서 아직도 무허가 판자촌 비닐하우스에서 어렵게 사시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있었다. 우선 매우 어려운 처지에 계신 두 분의 할머니부터 방문하였다. 한 분은 연세가 85세로 당뇨와 혈압 그리고 골다공증으로 건강이 매우 안 좋아 금세 돌아가실 것만 같은 상태였으며, 또 다른 한 분도 84세로 당뇨와 혈압으로 고생하시며 거동조차 불편하여 끼니도 제때 챙겨 드시지 못하였다.

그분들에게 다가가기는 정말 힘들었다. 오랜 세월 홀로 지내다 보니 표정이 굳어 있었고, 방문조차 귀찮아 하셨다. 삶의 찌든 방안에는 연탄난로가 한가운데 귀빈처럼 차지하고 있었으며 천장에선 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비가 샌 흔적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빛이라야 조그마한 비닐 창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햇살이 고작이었다.

 

두 분 중 한 분은 자식도 낳아보지 못한 채 당뇨로 한쪽 눈은 실명이 된 상태였으며 온 몸에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른 한 분은 아들이 있으나 큰 아들은 이민을 갔고, 작은 아들은 일정한 수입이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할머니를 돌보지 않고 있었다. 두 분 모두 심한 골다공증과 이러저러한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마음의 병이 깊었다. 손주들 이야기할 때면 눈물을 보이는 모습에서 내 할머니 모습이 더욱더 간절하게 생각났다.

이 두 분을 방문하기로 마음먹고, 정기적으로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고, 집안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치워드리면서 위로하며 기도하며 성모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힘썼다. 시간이 흐르자 할머니들께서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할 무렵, 무엇이 가장 어려우시냐고 여쭈어 보니 병원 가는 일(거리상 멀고, 교통편도 없는 곳임)과 반찬이라고 하여 동사무소와 적십자사 그리고 관내 복지관에 연락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가정간호사의 정기적인 방문으로 치료받으실 수 있게 해 드렸을 뿐만 아니라 이부자리와 연탄 등 생필품도 받으실 수 있도록 해 드렸다.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늙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가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이르는 거룩한 곳으로 가라” 고 하셨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일흔 다섯 살, 늙은 후에야 거룩한 곳으로 가라고 하셨으니 젊음보다 늙음을 더 중요시 여기신 것이 아닐까.

 

거룩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혼자 사는 법을 터득해야만 할 것 같다. 젊은 시절 온갖 가면으로 감싸던 거짓의 너울을 벗고,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는 때가 노년의 시기인 것이라고 보면, 하느님께서 이 시기를 인간에게 마련하심도 바로 그러한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노년의 시기는 결코 위기의 시기가 아니라 은총이 시기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비닐하우스 독거노인들 역시 절대적인 고독의 위기에서 하느님을, 성모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그것이 은총이라는 선물로 다가가 이제는 하느님의 자녀로 밝게 변화된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찾게 된 것이다. 더욱이 무허가 판자촌 비닐하우스에 사는 할머니들이 전에는 친분도 없이 소원하던 관계였으나 한 신앙공동체를 이루자 서로 왕래하며 나눔을 갖는 모습에서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거룩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방문 시 귀찮아하던 모습에서 이젠 기다리는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무엇이든 줘서 보내고 싶어 하는 할머니들을 보며 친 혈육 같은 정도 느껴졌다. 뒤돌아 나오는 손을 꼭 잡아주시는 고목의 수피 같은 손등에서 오래전 잊혔던 나의 할머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지만, 혼자 사는 거룩한 법을 터득하여야겠다는 나의 미래를 설계할 계기도 되었다. 봉사하러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년의 시기에 대한 배움의 자리가 되었다.

 

성숙할 대로 성숙한 시기를 늙음이라고 부르지 말자. 살아온 생이 위대했으므로 본향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와 마음가짐을 갖는 때이므로 결코 욕심이 없는 시기이며, 젊음의 시절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존재감마저 깨닫게 되는 새로운 시기인 것을 알면 결코 늙음은 천대 받아도, 퇴물취급 받아서는 안 된다.

독거노인을 방문하면서 발견한 기쁨이 바로 나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선 계기가 되었으니 노년의 시기에 접어든 내게 하느님께서는 그동안 우울했던 존재의 거처를 확실히 알려 주시기 위해 두 분 할머니를 방문할 시기를 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이 얼마나 신비로운 계약인가.

끝으로, 그 분들을 방문한 느낌을 졸시로 표현한 ‘은행나무 아래 비닐하우스 그 집’을 소개한다.

 

은행나무 아래 비닐하우스 그 집

 

김주혜

개발제한지구 비닐하우스

혼자 사는 마리아 할머니는

자유당 시절 이야기만 꺼내면 신이 난다

토평동 벌말에 들어온 지 40여년

자식 하나 낳아보지도 못했으나

영감님과 함께 심은 은행나무는 해마다 잉태하여

지천에 깔린 자식들로 다복하다.

당대 최고 정치인들과 교류하고

장안에 손꼽히는 멋쟁이 영감님과

고대광실에 스란치마 끌며 명동을 누볐으니

지금의 비닐하우스 집은 남은 생의 덤

매주 수요일이면 할머니의 꼬부라진 허리도 펴지고,

꺼져가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

행여 잊혀질까 두려워 꽁꽁 싸매둔 지난세월

풍성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

방문객인 나와 함께

장막을 젖히고 허리 굽혀 들어온 햇살과

내게 들려 보낼 까만 비닐봉지 안의

은행알과 은달래, 비단냉이들도 귀 쫑긋하는

사랑과 평화가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