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영혼
김주혜(비비안나)
“여보세요? 주혜선생님이세요?”
며칠 전 핸드폰으로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받지 말까 하다 받았다. 가느다란 여성의 음성도 낯설지만 주혜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기에 더욱 의아했다. 주혜는 내 필명이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려면 호적상의 이름으로 불러야 하건만 이 여자는 지금 주혜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는가?
“.........네, 그렇습니다만, 뉘신지..?”
“ 저 크리스티나에요. oo동 성당에서 선생님께 교리 배운....! ”
그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 저 레지오 단원 세실리아씨가 제 대모이시고 많이 아팠던......”
아,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화들짝 반기며
“아, 네 생각나요. 건강은 어떠세요? 근황을 들으니 레지오에도 입단하셨다면서요?”
“ 덕분에요. 선생님 뵙고 싶어서 여러 번 전화도 했었는데.....”
그러니까 10년 전, 내가 기막힌 이별을 한 후 몸과 마음 모두 만신창이인 채 성당에 들어서자 수녀님께서 묵묵히 내게 환자를 위한 방문교리를 하라는 직무를 던져 주셨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수녀님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거절할 수 없는 무게감를 느끼고 순명하였다.
레지오 단원 안내로 반 지하인 그녀의 집에 들어서자 싱크대에 어지럽게 놓인 아침 먹은 그릇들이 현실을 짐작케 했다. 레지오 단원은 들어서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며, 설거지부터 하기 시작하더니 나보고는 방으로 들어가라는 눈짓을 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침대 아래 비좁은 공간에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한 여자가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마치 사람의 뼈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여주는 표본과도 같았다. 게다가 쌀쌀한 늦가을인데도 몸에 얇은 명주 같은 천 하나만 걸치고, 이불도 홑청 같은 얇은 천을 덮었는데 그조차 무겁다는 듯 걷어내기까지 했다.
조심스럽게 곁으로 다가가니 귀찮은 표정이 역력하였다. 밖에서 설거지며 청소를 해주고 가는 레지오 단원의 끈기와 정성에 굴복하여 마지못해 교리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난감했다. 천주교를 알리는 교리보다는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삶(그때 내가 보기엔 그랬다)에, 영혼 구제를 위해, 뭔가는 해야 하건만....! 말없이 뼈만 앙상한 그녀의 하얀 손을 조용히 잡아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지르는 비명소리에 질겁을 하고 손을 놓았다. 그녀의 피부는 뭐가 닿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아프다고 했다. 그녀가 쌀쌀한 날씨임에도 명주처럼 부드러운 얇은 옷을 입고, 이불도 안 덮으려고 하는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가족 관계부터 물었다. 남편과 중3인 딸과 함께 풍족하지는 않지만 단란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여름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먹고 구토 증상이 있은 후 몸이 음식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병원도 다녀볼 대로 다녔고, 약도 먹을 대로 다 먹어봤다고 한다.
원인도 모르는 병을 수년 동안 앓고 있자 시댁 식구들은 스님을 모셔와 독경을 하고, 친정 식구들은 개신교 목사를 모시고 와 예배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기도인 줄은 알건만 왠지 시끄럽고 불편하여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성당에서 왔다는 분(밖에서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은 아무 기도도 해주지 않으면서 조용히 청소와 설거지를 해놓고 가곤 했다면서 자신에게 종교가 꼭 필요하다면 천주교를 택하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를 쉬엄쉬엄 들려주었다.
그때 웬 남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남편이라고 소개하면서 점심시간에 맞춰 잠시 들른 거라고 하였다.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남편을 보자 나는 그녀의 병이 꼭 나아야 한다고 주님께 간절히 간구했다.
조금 있으니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의 딸도 엄마를 부르며 명랑하게 들어왔다. 엄마에게 줄 꽃 한 송이를 컵에 꽂으며 오늘 몸 상태는 어땠느냐고 묻는 참으로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었다. 아! 하느님, 이들에게서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비우시겠나이까? 눈물이 가슴을 타고 흘렀다. 그녀가 가고나면 저 순하디 순하게 생긴 남편과 저 예쁜 딸이 그녀의 빈자리를 어떻게 견디며 아파할까 생각하니 한없는 연민의 정이 솟았다. 그 빈자리의 아픔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에.......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나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며 대화를 나눴다. 천주교를 알리는 짧은 교리와 함께 끝날 무렵, 남편에게, 딸에게 좋았을 때 고마웠을 때를 회고하며 편지 쓰기를 숙제로 내주었다.
그녀는 충실히 숙제를 했고, 그녀의 글은 날로, 날로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남편과 딸에게도 보였냐고 묻자 수줍게 웃었다. 그녀가 웃자 내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편지를 쓰라는 숙제를 내준 것은 그녀가 남편과 딸에게 대하는 짜증스런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읽고 나는 과장되게 칭찬을 하며 시도 써 보시라고 권했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표정이 달라져갔고, 글도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펜 들 힘이 없어서 하루에 두세 줄 정도의 문장으로 시작했던 그녀가 꽤 긴 글의 편지를 쓰며 남편에게 짜증냈던 자신을 후회하며, 딸에게 야속했던 마음을 후회하는 글을 눈물과 함께 써 내려갔다.
그렇게 하길 3개월 단시간에 교리를 마치고 크리스마스날 휠체어에 의지하여 크리스티나 성인의 본명으로 영세를 받았다. 그 후 나는 아픈 추억이 있는 그곳을 떠나 이사를 하고는 소식이 자연스럽게 끊어졌었다. 가끔 그곳 교우를 통해 그녀의 안부를 물으니 휠체어에서 벗어나 목발을 짚고 다니다 그 목발에서도 해방 되어 레지오에도 입단하였다고 하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영혼이 몸을 이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참으로 놀라웠다. 짜증과 원망과 자괴감으로 자신을 파먹었던 그녀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오로지 그 분께 의지하며 살아가니 하느님 나라가 임한 것이라고.
인간의 몸은 어느 순간 어떤 세포에 의해 최초로 혼란스럽고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는 병이 나면 우선 치료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정상적인 세포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다양한 종류의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호주 원주민들이 던진 무탄트 메시지에서도 우리가 치료해야 할 중요한 상처가 무엇인가 깨닫게 되면 자연 치유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인간의 몸은 높은 차원의 영혼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몸에 이상이 생기면 상처 입은 관계를 찾아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즉, 하느님의 영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구러 10년의 세월. 그녀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도 했고 딸은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남편도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또, 내가 편지 쓰기 일기 쓰기를 숙제로 내주며 칭찬해 주던 일을 잊지 않고 방통대 국문학과까지 입학을 하고 지금은 시공부도 하고 있다고 한다. 할렐루야! (가톨릭문인 신앙에세이집-몸과 영혼의 거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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