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스핑크스, 예수수난 교회, 그리고 고고학 박물관 관람

주혜1 2010. 4. 30. 08:08

돌을 구부린 듯한 건축 양식의 귀퉁이! 놀라운 기술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싶어하던 스핑크스

이 스핑크스를 보기 위한 나의 이번 여행의 목적이 있는 곳에 다달았다

 

마음 같아선 저 스핑크스의 목을 끌어안고 싶었다

그러나 접근 금지! 그래도 좋았다. 의연히 서있는 스핑크스여! 내가 볼 수 있도록 수천 년의 세월을 기다려줘 고맙다.

 

'스핑크스'라는 말은 그리스의 문법학자들에 의해 '묶다' 또는 '압착하다'라는 뜻의 동사 '스핑게인'(sphingein)에서 파생된 것이나, 그 어원은 전설과 무관하며 분명하지 않다.
전설상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보이오티아 테베의 날개달린 스핑크스로, 그것은 뮤즈가 가르쳐준 수수께끼(목소리는 같지만 발이 4개가 되기도 하고 2개가 되기도 하고 3개가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묻고 그 답을 요구하여 틀린 답을 말하는 사람을 잡아먹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고 한다. 마침내 오디푸스가 (사람)을 맞추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이 이야기에서 스핑크스가 전지(全知)하다는 전설이 나왔음이 분명한데, 오늘날에도 스핑크스의 지혜는 속담이 될 만큼 유명하다.
미술품으로서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이집트 기자에 있는 거대한 와상(臥像) 스핑크스로, 카프레 왕(제4왕조의 제4대 왕, BC 2575경~2465경)의 재위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그 왕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이집트 역사를 통해 스핑크스는 계속 왕의 초상으로 사용되었다(그러나 아랍인들은 기자의 스핑크스를 아부 알 하울의 이름 또는 '공포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음). 스핑크스는 이집트인의 영향으로 아시아에 알려졌지만, 아시아에서는 스핑크스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메소포타미아에는 본래 스핑크스가 없었으나, BC 1500년쯤 레반트 지방에서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아시아의 스핑크스가 이집트의 원형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사자의 몸에 날개를 덧붙인 데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그뒤 아시아 및 그리스 세계에 계속 나타났다. 또다른 혁신은 BC 15세기에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여성 스핑크스였다. 그것들은 도장이나 상아제품·금속제품에 새겨졌는데, 대개 한 발은 든 채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었으며, 사자나 그리핀(독수리 반 사자 반) 또는 다른 스핑크스와 짝지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BC 1600년경 그리스 세계에 처음으로 스핑크스가 등장했다. 중기 미노아 시대가 끝날 무렵의 크레타 유적들과 후기 헬라도스 문화기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미케네의 구덩식[竪穴式]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날개 달린 것이 특징인 스핑크스를 보여준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아시아의 스핑크스에서 유래했지만 모습은 달라서, 대개 꼭대기가 불꽃처럼 튀어나온 납작한 모자를 썼다. 그것들은 후에 전해진 전설과 무관하며, 그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스 예술).
BC 1200년 이후, 아시아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것과 비슷한 형태와 자세를 지닌 스핑크스들이 계속 나타났지만, 그리스 미술에서는 약 400여 년 동안 스핑크스가 사라졌다가, BC 8세기말경에 다시 나타나 BC 6세기말까지 널리 퍼졌다. 동방의 모티프와 자주 관련되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동양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하며, 그 모습도 청동기시대 그리스 스핑크스에서 직접 파생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후기 그리스 스핑크스는 거의 언제나 여성이었고, 대개 다이달로스 양식의 당대 조각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길게 늘어진 가발을 썼으며, 몸은 우아해졌고 날개는 아시아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곡선 형태를 띠었다. 스핑크스들은 꽃병이나 상아제품·금속제품 등의 장식에 쓰였고, 고대 말기에는 사원의 장식물로도 사용되었다. 스핑크스들은 만들어진 배경이 확실하지 않으므로 그 의미를 판정할 수 없지만, 그것들이 사원에 있는 것으로 보아 보호기능을 지녔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5세기쯤에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가 만나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꽃병에 나타났는데, 대개 스핑크스는 기둥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예를 들면 보스턴에 있는 놀란이 만든 적회식 암포라). 고전기의 다른 기념물들은 오이디푸스가 무장을 하고 스핑크스와 싸우는 것을 보여주는데, 전설의 초기 단계에서는 스핑크스와의 대결이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러한 단계에 대해 문학은 아무런 단서도 제공하지 않지만 인간과 괴물과의 싸움이란 선사시대부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미술의 보편적인 주제였으므로, 그리스 미술은 자문학(自文學)에는 없는 이러한 주제를 중동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서 발췌

 

 

 

 

예수 수난 교회 바깥 풍경. 자잘한 물건을 들고 팔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안 산다고 손사레를 치니 내 손에 들고 있는 볼펜과 바꾸자고 한다.

옆 친구가 볼펜을 주니 좋아하며 목걸이를 맘대로 고르라고 한다. 우리의 볼펜과 믹스커피를 매우 좋아한다는 가이드의 말! 우리나라 만세!

 

 

 

국립박물관을 들어가기 위한 수속을 밟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지친 모습들이 역력하지만 나는 이집트의 매력, 옛정취에 취해 조금도 피로하지 않으니....전생에 이집트인이었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