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생혼과 혼 그리고 영

주혜1 2010. 6. 12. 18:39

 

 

 

 

 

글을 쓰다보면, 특히 복음과 관련된 글을 쓰다보면 참 난감한 경우가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시비성 어투, 저속한 어투, 핍박성 어투, 비하성 어투, 질책성 어투,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으로 몰아붙이는 어투가 댓글에 달린 경우이다. 이런 류의 댓글을 다는 이들이 흔히 내세우는 것이 성경이다. 자기들은 성경에 비춰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류의 사람들 중에서 성경을 제대로 아는 이들은 드물다. 성경을 제대로 아느냐 모르느냐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복음)’를 제대로 아느냐 모르냐이다. 그러니까 성경을 아무리 많이 통독해도, 성경의 박사라고 해도, 국내외의 유수한 대학의 신학교수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건 성경을 모르는 것이다. 일례로 진화론이나 종교다원론을 신봉한다면 그들이 신학박사, 신학교수라고 해도 그들은 성경을 모르는 부류에 속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면 진화론이니 종교다원론이니 하는 이론들은 신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론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이 신봉하는 것들이다.

 

 

흔히 성경 성경하면서 성경을 통해서 툭하면 마치 재판관이나 되는 것처럼 판단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 중에는 바리새인, 즉 예수께서 자신이 바로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도 모자라 예수께서 기사와 이적을 베풀어도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은 그 당시 소위 성경에 정통하다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이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 성경에 정통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바리새인들을 보고 아예 성경을 모른다(마태 22:29)고 한 것이다. 도리어 예수께서는 그들보다는 차라리 세리나 창기들이 성경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 까닭은 천국은 성경을 아는(믿는) 이들이 가는데,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보다는 오히려 세리나 창기들이 천국에 먼저 갈 수 있다(마태 21:31)고 했기 때문이다. 성경의 저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모른다고 하면 그건 성경을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님 당시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얼마전 ‘두 율법의 차이’라는 아래 글에서 어떤 분으로부터 난간한 경우를 겪은 바 있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은 그 분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분이 성경의 이름으로 나를 질책했으니, 그 분이 갖고 있는 왜곡된 성경이해를 바로 잡아서 성경의 진리를 보수하기 위해서, 나아가서 잘못된 인간 이해를 바로 잡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인간을 육과 영혼으로 나누어서(2분법) 이해하기도 하고, 육, 혼, 영으로 나누어서(3분법) 이해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둘 다 엉터리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문제의 발단으로 돌아가자.

 

 

그 분은 나의 글, ‘두 율법의 차이’에 대해 그 글의 댓글에서 성경에 없는 말을 함부로 쓴다는 질책성 말을 한 바 있다. 그는 내가 사용한 창세가 2장 7절의 “생혼”은 성경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니까 그 분은 성경 어디에서도 “생혼”이라는 말을 절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가관이다. 그 분은 성경에는 육, 혼, 영이라는 말만 나오기 때문에 창세기 2장 7절의 ‘생혼’을 ‘생혼’이라 하면 안 되고 그냥 혼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성경을 모르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그 생혼을 그냥 혼이라고 하면, 그것이 왜 성경을 모르는 것인지, 나아가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왜 하나님을 모독하게 되는지 이제 그 까닭을 알아보자. 그 전에 성경에서 ‘혼’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Niv 영어판의) 생혼이나 (Kjv 또는 Nasb 영어판의) 생명적 존재(생명체, living being)로 표현해야 하는 곳이 한곳 있으니, 그 곳이 창세가 2장 7절임을 명심하자.  

 

 

성경에 의하면 아담이 생명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의 몸을 흙으로 빗었을 때가 아니라 흙으로 빗어진 그 몸의 코에 그 분의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이다. 그 하나님의 생기(형상)로 아담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담은 흙으로 빗어진 몸(육)만으로는 아직 생명이 없었고, 하나님의 생기가 그의 코에 들어와서 마음을 갖게 됨에 따라 그는 비로소 ‘생명적 존재’(living being)가 된 셈이다. 따라서 아담의 생명의 원천은 그의 육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다. 이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는 성경 말씀이 입증한다. 그러나 아담의 그 마음은 아직 영(spirit)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혼(soul)에까지만 미친다. 이에 대한 증거는 아담이 비록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을 지라도 아직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며, 그가 아직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까닭은 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영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담은 영적이지 않고 혼적이다. 이렇게 아담이 영적이지 않고 혼적이기 때문에 비록 그가 선악과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도 지옥에는 가지 않지만(왜냐하면 아직 죄가 없기 때문에) 천국에는 갈 수 없다. 하나님이 영인 까닭에 천국에는 하나님에게서 온 영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면 왜 창세기 2장 7절에서만 그냥 혼이 아니라 생혼으로 번역돼야 하는가? 그 까닭은 위에서 봤듯이 아담에서 생명의 원천은 육이 아닌 혼(마음)이고, 그는 아직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상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상태이다. 그런 의미에서 Niv영어 성경은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람(아담)을 생혼(living soul)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전혀 무리가 아니다. 그러니까 창 2:7절에서 사람을 ‘혼’이 아니라 ‘생혼’으로 번역돼야 하는 결정적인 까닭은 아담이 아직 죄를 짓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이다.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육(몸)을 만들고 그 다음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혼(마음)을 만들었지만, 이렇게 창조된 상태에서 아담이 아직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육과 혼이 통일된 하나의 생명체인 바, 그에게서 혼과 육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 아담이 영원히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에게서 혼과 육은 영원히 분리되지 않으며, 이는 곧 그가 영원히 산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담의 생명의 원천인 혼(마음)이 죄를 짓지 않을 경우, 그 혼은 영원히 산다. 이에 그 혼은 그냥 혼, 즉 육과 분리되는 혼이 아니라 생혼, 즉 그의 몸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혼인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선악과를 취하자마자, 다시 말하면 죄를 짓자 말자, 그는 하나님의 생기(형상)를 상실하여 원래의 흙(육)으로 돌아가게 되었다.(창 3:19) 이는 원래 영원히 살도록 창조된 아담이 일정시간이 지나면 사망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사망한다고 함은 혼과 육이 분리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담이 죄를 범한이래 그와 그 후예들의 혼은 더 이상 생혼일 수 없고 그 혼의 생이 사망한, 그래서 생혼이 혼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한 생명체(living being)로 통일돼 있던 혼과 육은 서로 분리되니, 여기서 혼과 육이 나누어진 것이다. 그래서 일정시간이 지나면 혼과 육이 서로 분리되어 혼도 죽고 육도 죽게 돼 있다. 그런데 여기서 혼이 죽는다는 말은 혼이 육과 분리된 순간 그 혼 자체(혼의 존재)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혼이 육에 들어온 죄, 즉 육적 욕심(썩어 없어질 것)의 종노릇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혼의 죽음은, 다시 말하면 생혼에서 생의 죽음은 아직 그 안에 죄가 들어오지 않아서 육의 종노릇하지 않던 혼(마음)이 그 육에 죄(욕심)가 들어온 까닭에 그 육의 욕심(죄)에 매여 그것의 종노릇을 하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담이 죄를 범한 후부터 ‘생혼’이라는 말은 성경에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고, 그 앞에 생이 빠진 그냥 ‘혼’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점을 무시하고 만약 창세기 2장 7절의 ‘생혼’을 ‘생혼’이 아닌 ‘혼’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아담이 창조되는 순간부터, 그러니까 아담이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도 아담이 이미 죽기로 돼 있음, 즉 그의 혼과 육이 일정시간이 지나면 분리되기로 돼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담이 혼과 육이 분리되기로 돼 있는 것, 즉 죽게 돼 있는 것은 아담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코를 통해서 들어온 하나님의 생기에 이미 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지극히 선하시고 그래서 죄가 전혀 없는 하나님을 죄로 가득한 존재, 마귀로 전락시키는 것이니, 하나님을 모독해도 그보다 더 한 모독은 없다. 따라서 성경 성경하면서 창세기 2장 7절의 생혼을 그냥 혼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성경을 모르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다. 섣부른 신학적 지식을 깔고서 성경에 접근할 경우 그러한 오류를 범하기 쉽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학이야말로 성경의 본질(예수 그리스도)을 보지 못하게 하여 영원한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마귀의 가장 권위있는 무기일 수 있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과를 취하여 그의 생혼의 생이 죽어서, 그래서 혼이 죽었다는 것은, 그 혼이 (생명 자체인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죄를 먹고 사는 그래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하와를 유혹한) 마귀를 따름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혼은 만약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죽으면 저절로 마귀를 따라 마귀가 가는 지옥(무저갱)에로 가게 돼 있다. 따라서 생혼의 생이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움받은 혼 자체가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혼이 죄로 인해 마귀를 따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혼이 마귀를 따르게 되었다는 것은, 혼이 마귀의 에너지원인 죄의 원천, 즉 육체의 종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상으로 보건대, 창세기 2장 7절의 생혼을 그냥 혼이라고 해야 성경적이라는 주장은 전혀 비성경적이며, 따라서 그것은 성경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봤듯이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에는 그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는데도, 그 생혼을 그냥 혼이라고 하면 아담이 죄를 지은 이전이나 그 후에도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 그 죄로 완전히 변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나아가 아담의 그 변화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완성한 것을 기록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을 영혼과 육으로 나누는 것도, 영, 혼, 육으로 나누는 것도 엉터리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위에서 봤듯이 인간에게는 창조될 때부터 영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은 혼과 육으로만 나눠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간에게 영이 없었는데 영이 왜 끼어드는가? 그리고 또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애초의 인간, 즉 생혼의 아담은 아직 하나님으로부터 영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한 생명의 존재가 아닌 것도 밝혀졌다. 이로써 또한 생혼의 아담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생령이 될 때 온전한 생명, 즉 참 생명의 존재가 됨도 밝혀졌다.

 

 

그리고 나는 생혼에서 타락된 아담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생령의 온전한 참 생명으로 거듭나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의 태초에 예정했고, 또한 그 타락한 아담을 그리스도 안에서 생령의 아담(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하시기 위해 필요한 방법이 두 개의 율법임을 나의 글, ‘두 율법의 차이’에서 밝혔다. 그리고 첫 아담과 그 후예들은 예수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그와 함께 죽어 장사지낸 후에 비로소 율법을 마친 그리스도와 함께 거듭났을 때 비로소 생령의 참 생명(신령한 존재)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거기서 시사하였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거듭난 예수 그리스도의 후예들은 첫 아담의 후예들보다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휠씬 더 업그레이드된 것임을 또한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신 방법’이라는 나의 글에서 밝힌 바 있다. 그렇게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지금까지 봤듯이 첫 사람 아담에게는 영이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후예들에게는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이 임해 있으며, 결국에는 그 두 영이 하나가 되는 “온영” 혹은 “우리 영”(롬 8:16, 살전 5:23, 참조)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후예들이란 애초에 영이 없이 생혼으로 있던 아담이 죄로 타락하여 생혼의 생이 죽은 그래서 육과 분리될 수밖에 없는 그 혼이 믿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만난 사람, 즉 영혼의 사람이다. 따라서 육, 혼, 영 또는 육과 영혼은 거듭난 사람에게만 가능하지 거듭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직 육과 혼이다. 물론 거듭나지 않는 사람에게 마귀의 영이 들어와 있으나, 그 영은 사망의 영이니 무의미하다. 다시 말하면 그 영은 참 영이 아니란 말이다. 참 영이 아니기에 그 생명은 참 생명이 아닌 사망이다. 그리고 이 영혼의 사람은 비록 몸이 죽어도 휴거되어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 몸도 완전히 회복되어 그 영혼으로 인해 영원히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이 됨은 물론이다. 그 때는 육, 혼, 몸이 완전히 하나된 신령함 자체이다. 이제 더 이상 육, 혼, 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분리는 죽음을 의미하니, 그렇게 분리되지 않는다고 함은 영원히 죽임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생이다.   

 

***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은 구별돼야 함은 룰론이다.


출처 : 십자가복음 사관학교
글쓴이 : 예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