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자 교리방

이스라엘의 역사

주혜1 2011. 6. 6. 00:15

1. 성조시대

 

 성조시대란 아브라함 - 이사악 - 야곱 - 야곱의 열두 아들의 시대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형성의 뿌리가 되는 사람들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나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은 셈족의 일부로서 기원전 19 - 17세기에 시리아의 초원을 유랑하던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첫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있는 우르에서 살다가 그 강의 상류에 있는 하란으로 이주를 하였는데, 그 곳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즉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창세 12, 1-17 참조)는 내용입니다.  말이 좋아 부르심이지 사실 75세의 유복한 노인에게 이 말은 마른 하늘의 날 벼락인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땅과 자손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는 정처없는 유랑의 길을 나섭니다.

 

<이사악>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약속과 계약의 징표로 이미 100세에 이른 그에게 아들 이사악을 주십니다.  이사악은 야곱과 에사오라는 두 아들을 두게 되는데 장남인 에사오는 죽 한 그릇에 동생인 야곱에게 장자 상속권을 팔아 버립니다.

 

<야곱과 열 두 아들>

   아브라함과 이사악에게 내려졌던 하느님의 축복은 야곱에게 계속 이어지게 되어 야곱은 열두 아들을 두게 되는데 그들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며, 지파의 이름 또한 그들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나 혈육간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요셉은 에집트로 팔려가 후에 에집트의 통치자가 되어 야곱 가문은 에집트의 고센 지방으로 이주하여 살게 됩니다.

 

 성조시대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에집트를 탈출하게 된 그 뒷 배경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으며, 아울러 그들의 이주를 신앙적 측면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2. 모세와 출애굽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지구상에 정식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에집트에 정착한 후 40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은 많은 수로 불어났고, 새로 등극한 에집트의 파라오는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히브리인이면서, 에집트의 궁전에서 자란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조상들의 하느님 야훼를 만나 뵙고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자기 민족을 구할 사명을 받습니다.  파라오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모세는 자기 민족을 이끌고 에집트를 탈출합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신앙사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어 슬픔과 고통의 생활을 하던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해방절" 혹은 "파스카"라 하여 후손 대대로 지켜가는 가장 큰 축제로 삼았습니다.  "파스카"라는 말은 '거르고 지나가다', '건너 뛰다'라는 뜻으로 야훼께서 에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으로 에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죽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거르고 지나갔다는 사실과 기적적으로 갈대 바다를 건넘으로써 노예에서 하느님의 뽑힌 백성으로 변화됨을 기념하려는 것입니다.  에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를 향해 고난의 길을 떠납니다.  시나이 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 하느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계약을 다시 갱신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되며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십계명을 주십니다.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 정착에 이르기까지는 40년의 광야생활이 필요했습니다.  광야와 40이라는 숫자는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말로서 현실 세계의 고난과 시련 및 훈련을 뜻합니다.  또한 한 인간의 일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공자님 말씀 중에도 나이 40이면 불혹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이 40쯤 돼야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인생관을 정립할 수 있듯이 한 민족도 성숙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사건은 파라오의 정치적 압제에서의 해방 뿐만 아니라 창조시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 즉 새로운 질서에로 들어감이었습니다.

 

3. 가나안 정착과 판관시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에집트를 탈출한 영도자 모세는 가나안 복지를 눈 앞에 두고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여호수아가 잇게 됩니다.

 "가나안"이란 뜻은 '장사꾼' 또는 '자줏빛 물감장수'를 뜻하는 말로서 염직 문화가 발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영어에서 사용하는 '알파벳'도 가나안 문화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가나안은 상당히 고급 문화를 누렸던 지역입니다. 그러나 원시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게 된 원인을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즉, 가나안에 이미 살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온갖 학대를 받고 있었기에 이스라엘의 침입에 대해 내부에서 호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려운 싸움의 승리의 원인을 하느님의 섭리라고 보았습니다.  가나안 정착 사업이 마무리되고, 광야에서 들어온 히브리인들과 가나안의 히브리인들 사이에 '세켐'에서 장엄한 계약의식을 맺게 됩니다(여호수아 24장).  즉 야훼만을 숭배하기로 맹세하는 의식으로서 이때부터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태평세월이 계속되면서 광야에서의 시련과 고난을 잊어버리고 차츰 북부와 남부로 갈라져 단결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또한 본래 가나안은 바알신을 숭배하던 지역이었는데 차츰 이교 신앙에 물들기 시작하여 도덕적 타락을 가져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열 두 지파로 나뉜 부족 동맹체제였는데 비상사태시에만 부족이 힘을 모았고 이때 이들을 지도하던 자들을 판관이라 하였습니다.  판관은 소송사건의 해결 뿐 아니라 정치 군사 종교의 지도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모두 열 두 명의 판관이 있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삼손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4. 왕정시대

 

판관시대가 끝난 이스라엘은 이제 왕정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할 무렵 에게해 근처의 섬들에서 살던 해양 민족인 필리스데가 가나안 해안지역에 정착하게 되자 이스라엘과는 끊임없는 분규가 발생하였고, 급기야는 전면전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전지파에서 모인 연합군이 대패하게 되고 계약궤 마저 빼앗기는 비운을 맛보게 됩니다.  이웃 민족들의 세력에 역부족을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의 판관인 사무엘에게 이웃 민족들 처럼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게 되고, 적을 물리치고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울을 왕으로 옹립하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발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직 왕이라기 보다는 전시대의 판관 보다 약간 더 힘을 가진 지도자에 불과했습니다.  사울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점차 야훼의 눈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은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다윗왕>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다윗은 국가조직을 정비하여 완전한 군주국가 체제를 확립합니다.  그는 남쪽과 북쪽의 세력을 합치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필리스데인들에게 빼앗겼던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에 안치시킴으로써 명실공히 예루살렘을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로 삼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충실했던 다윗에게 하느님은 예언자 나단을 통해 "다윗 왕가의 영원한 번영"을 약속하게 되고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은 다윗 왕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왕 다윗은 충실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를 빼앗고 우리야는 전쟁터에서 죽게 만듭니다.  그 죄로 다윗 가문에는 가정불화, 근친상간, 모반 등의 수치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기원전 975년경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삼고 다윗은 눈을 감게 됩니다.

 

<솔로몬 왕>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으로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외교, 국방, 무역, 개화정책 등으로 국가를 부강하게 하지만 정략결혼으로 인한 이교도의 우상숭배의 만연, 지나친 건설사업 등으로 인한 강제 노동과 무거운 세금 등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되고, 그의 이러한 행실 등으로 인해 그의 사후에 왕국의 분열을 가져오게 됩니다.

 

5. 왕국 분열과 예언자들의 활약

 

⊙  북부왕국(이스라엘)

 

기원전 722/1년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지도층 인사들이 앗시리아로 끌려가 앗시리아에 동화되고, 앗시리아의 주민들이 북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남아있던 사람들마저 그들과 융합되어 자신들의 민족과 종교를 상실하게 됩니다.  신약성서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한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아모스, 호세아 등의 예언자가 활약하였습니다.  예언자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으로써 하느님의 대변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즉 이들은 백성들이 방탕할 때는 하느님의 경고를, 시련기에는 하느님의 약속에 의한 희망을 전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야훼 하느님께 향하도록 하였습니다.

 

⊙  남부왕국(유다)

 

유다는 기원전 597년과 587년 두 차례의 바빌론의 침략으로 함락됩니다.  유다에서 활약하였던 예언자로서는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는 나라가 망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새 이스라엘을 안배하시리라는 확신을 갖고 언젠가는 다윗의 후손 중에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을 백성들에게 전해줍니다.

남부 왕국의 멸망의 원인은 내부적으로는 사회불안과 종교의 타락에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초 강대국인 앗시리아와 바빌론의 침입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시리라는 희망 속에 메시아를 기대하게 됩니다.

 

6. 유배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 남동부 지방인 바빌론 근처(오늘날의 이라크 지방)로 유배되었습니다.  이 유배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분수령을 이루게 됩니다.  모든 체제와 제도가 종말을 고하고, 국가적 제사의식과 공동체가 붕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공동체가 이 유배지에서 싹트게 됩니다.

예레미야 52, 28을 보면 약 4,600여명이 3차에 걸쳐 유배를 가게 되는데 이들은 주로 정치, 종교의 지도자들이었고, 지식층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유배지에서 새 이스라엘을 설계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유배이유를 야훼 하느님과의 계약을 어긴 죄로 인한 징벌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제 성전, 제사, 국가도 없어진 상황 아래서 자신들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의식을 지니기 위해서는 율법을 준수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안식일, 할례, 정결법 등을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잃어버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족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전승들을 정리하여 역사서와 예언서들이 이 시기에 많이 나오게 됩니다.

유배 말기의 위대한 예언자로는 제2 이사야를 들 수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서는 1 - 39장, 40 - 55장, 56 - 66장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제2 이사야는 40 - 55장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 없이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대신 제물이 되어 고난을 당하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이라는 노래를 통해 절망과 좌절에 빠진 유배 중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고난받는 야훼의 종은 이스라엘을 정신차리게 하고, 이방 민족들에게는 빛을 보여주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7. 구약말기

 

기원전 539년에 페르샤의 키루스가 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이듬해에 유배지의 유배인들에게 해방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그곳에서 생활 터전을 잡은 상태이므로 귀환하지 않고 자기네 나름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부 야훼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과 고국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귀환하였는데 그들의 지도자가 즈루빠벨이었습니다.  즈루빠벨은 귀환 즉시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위하여 힘썼고 여러 예언자들이 신앙의 쇄신과 종교개혁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고 단지 율법을 근거로 하는 새로운 율법 공동체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연안을 통일시킴에 따라 이스라엘은 다시 희랍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후 안티오쿠스 4세라는 왕은 유다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헬레니즘화시키기 위해 안식일과 할례를 폐지하게 하고 유대인들이 금기시 하던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게 만듭니다.  이같은 박해에 대항하여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하여 종교적 항쟁이 발생합니다.  마침내 유다 마카베오는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고 기원전 142년에 자주독립을 성취하지만,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고 유다는 다시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갑니다.

기원 후 70년에 유다의 독립을 위한 항쟁이 일어났으나 예루살렘의 파괴를 가져왔고, 다시 135년의 유다인의 마지막 폭동의 실패로 이스라엘은 1,800여년간 지구상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에 대한 항쟁과 마카베오 가문의 몰락이 계속되면서 유대인들은 극심한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을 격려하던 여러 사상들이 있었습니다.  즉 다니엘서에는 이제 다윗의 후손중에 메시아가 나올 것이라는 사상 대신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실 것"이라는 사상이 팽배 하였고, 그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는 다시 가증스러운 외적을 물리치고 다윗 왕과 같이 위대한 나라를 재건하여 줄 세속적 메시아를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종말론적 사상이 팽배하였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뒤엎으시고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이룩하시리라는 세말적 사상입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사상들이 유포되고 있었을 때, 예수님은 아주 뜻밖의 방법으로, 성령을 통하여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시어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인 마굿간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무서워 도망하였지만 후에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의 감도로 용기를 얻고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종합 심화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수 천년의 역사를 짧은 시간에 살펴보았는데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원과 약속의 역사인 구세사"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반역과 실패 그리고 좌절과 가장 쓰라린 실망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보면 흔히 희망은 무참히 꺽이고, 바라던 일은 기약없는 미래로 미루어지곤 합니다.  구약성서의 어느 곳을 펼쳐 보아도 구원이 명실상부하게 완전히 이루어진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구원의 역사이지만 실제로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그러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약속과 배신, 용서와 배신으로 점철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진행된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과 자유를 안겨준 출애굽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완성됩니다.  아브라함부터 계속된 하느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계속해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걸어온 길은 어쩌면 우리가 걸어왔고,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좌절과 실망, 고통의 역사가 우리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하느님만을 주님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새로운 자유와 해방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