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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

주혜1 2011. 6. 1. 08:35

1. 세계 종교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

초세기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 신념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러한 종교들에 대해 어떤 언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사실상 부정적이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강렬한 신앙체험을 갖고 있었기에, 타종교들이 구원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을 당연시 여겼던 것입니다.

3세기의 교부 치프리아누스는 '교회 밖에서는 아무런 구원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인간이 구원되려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고백하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크리스찬 신앙의 중요한 측면, 즉 구세주요,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함을 강조하기 위한 소극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정식은 계속하여 견지해 왔으며, 1442년 플로렌스 공의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

 "우리 주이시며 구세주의 말씀으로 설립된 로마 성교회는 가톨릭 교회 밖에서 존재하는 사람들, 즉 이교인 뿐만 아니라 유다인도, 이단자도, 裂敎者들도, 만일 이들이 죽기 전에 가톨릭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고 오히려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마태 25, 41) 영원한 불에 빠지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고백하고 선포한다."

어떻습니까?  너무 무시무시한 배타성을 보여준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런 선언은 영구불변의 절대 보편성을 띤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상황이 고려된 후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이러한 타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선언들은 중세기의 사회적, 정치적 맥락 안에서 등장하였는데 그것은 서방세계에서 계속되는 독특한 유대 공동체들의 존재와 회교도들의 위협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경제력과 이슬람의 군사력으로 인해 위협당하는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상황을 반영하여 부정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 교회는 타종교들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사상(무차별주의)의 위험을 우려하면서, 교회의 고유의 기능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총이 가톨릭 교회의 可視的인 경계를 넘어 전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츰 타종교에 대한 교회의 태도가 부드러워져 가고 종교자유의 원칙이 점차 인정되어 가다가, 마침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 교회의 입장은 커다란 변화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공의회는 '교회에 속하는 것이 구원에 필요하다'고 명백히 가르치면서도 다른 편으로 하느님은 이교인에게도 충분한 은총을 부여하시고, 이 은총은 교회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도달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에 경계를 긋는 것을 금하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만인을 위해 죽으셨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이미 중세 때부터 '열망의 세례(熱洗)'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서 비그리스도인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해 왔습니다.  또 공의회는 타종교들의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들을 인정하고 그들과의 형제적 대화와 접촉을 통해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요컨데 교회는 극복할 수 없는 오류의 처지에서 자기 탓 없이 교회 밖에서 생활하는 인간에게 구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타종교 및 타세계관에 관해 긍정적인 최종판결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서도 신약이나 구약 그 어디서도 타종교에 관하여 절대적으로 명료한 판결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러한 공의회의 입장을 세우는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신학자 '칼 라너'의 '匿名의 그리스도인' 이론을 먼저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2. 칼 라너(K. Rahner)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

1)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란 ?

이 이론의 근거는 우선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에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디모1서 2, 4).  하느님은 모든 죄인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거듭 반복하여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한 은총을 선사하십니다.  라너는 성서의 여러 증언들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모든 시대와 모든 인간들에게 펼쳐지고 있음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조문에 속한다고 강조합니다.  라너는 원래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을 지향하도록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완성을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 이면에는 하느님의 능력이 전제되고, 하느님을 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사랑 속에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건네주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기전달인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육화, 즉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자기 전달의 절정이며, 이를 통하여 인류가 객관적으로 구원되었음이 역사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구원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요구되는데, 비그리스도인도 익명적 신앙행위를 통해서 초자연적 신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인간 자신이 본래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건네주시는 관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항상 어디서나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있으며,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행위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면 누구나 잠재적으로 이미 '신앙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믿어야 할 바를, 자신의 자유에 앞서는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이미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너는 여기서 '하느님의 계시인 은총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란 곧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인간이 자기를 받아들이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그것이 곧 신앙행위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자유롭게 결단을 내리는 가운데, 이러한 것들을 가능케 해 주시는 하느님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인간이 자신을 극단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참된 이웃 사랑을 말합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자기 체험과 하느님 체험은 본래적으로 하나이며, 여기서부터 이웃사랑과 하느님 사랑이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라너는 참된 이웃사랑이 이미 함축적으로 하느님을 긍정하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며, 이웃사랑의 행위가 하느님 사랑의 본원적 행위라고 결론짓습니다.

라너는 다음과 같이 이웃사랑이 인간적 체험의 가장 깊은 곳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극단적으로 남에게 내던져질 때에만 자기 자신에 이르는 진정한 자기 성취를 이룬다.  그가 이를 행하면 그는 함축적이거나 명시적으로 자기 전달 속에서, 당신을 이러한 사랑의 가능성의 공간으로 만드시는 하느님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웃을 올바로 보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그 분의 사랑으로 생활하도록 자신을 이끄는 사람은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이제 구원에 필요한 신앙 행위라고 규정된 '인간이 자기자신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과감하게 사랑하는 것이며, 이러한 행위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라너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비그리스도인도 함축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 타종교와 무신론 속에서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라너는 세계의 여러 비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과 무신론자들 속에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러한 의미에서 타종교들과 무신론을 '익명의 그리스도교'로 규정합니다.

우선 라너는 그리스도교가 어떠한 다른 종교보다도 우선하는 절대종교임을 명확히 합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지배적인 세력을 지닌 종교를 통해 하느님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데 보다 나은 기회를 부여하는 종교를 정당한 종교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생각할 때 인간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하는 '정당한 종교'는 어디서나 항상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타종교들은 그리스도교회가 세워진 이후 원칙적으로 폐기되지만,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까지 특정한 시기에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긍정적인 수단으로 간주된다면 비록 오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종교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이 한 인간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로 도달하기 이전까지는 이 사람은 '하느님의 뜻과 허용에 따라서' 자기가 생활하는 사회에서 지배적인 세력을 지닌 종교안에서 구원이 제공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제공되는 구원이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한 그리스도의 구원이기에, 비그리스도교 속에서 구원에 이르는 타종교 신봉자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라너는 비그리스도교 속에서 뿐만 아니라 無神論 속에서도 '함축적' 내지 '익명의 그리스도교'를 보고 있습니다.  무신론은 어떤 하나의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라,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는 구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배제하고, 따라서 예수를 인류의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무신론자로 지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거부적 태도와 원인, 동기는 대단히 다양합니다.

라너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그중 양심을 따르는 결단 속에서 어떤 신적인 체험을 자유롭게 받아들이지만, 이것이 올바로 해석되지 않고 불확실한 처지에서 사는 사람들에게서 無罪한 無神論을 보며, 이 무신론을 '익명의 그리스도교'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신적인 체험이 잘못 해석되어 있으며, 자유로운 결단 속에서 양심을 거스르면서 거절하는 사람들은 구원이 배제되는, 탓이 있는 有罪한 無神論이 된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 無神論者가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않느냐의 여부입니다.  그가 설령 명시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참으로 무조건적인 신의, 절대적 진실성, 타인의 복지를 위한 몰아적 헌신과 이와 비슷한 인간의 기본행동을 알고 있다면, 그는 하느님께 관하여 어떤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신론자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지칭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너의 이 이론은 여러가지 비판이 있긴 하지만, 비그리스도인의 구원 가능성을 가르치는 교회의 입장과 부합하고, 성서와 교리전통에 상응한 학설이라고 일단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살펴 보겠습니다.

 

3.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금까지의 가톨릭 전통 교회와의 지속성을 지니는 가운데 비그리스도교와 무신론에 관해 기본적인 것을 '새롭고 과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에서 교회와 타종교들과의 관계를 특별히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선교교령'과 '교회헌장'에서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런 종교들의 위치에 대해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2항에서는 힌두교, 불교 등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이들의 생활과 행동양식 뿐 아니라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없는 존경으로 살펴본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면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중략).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종교의 신봉자들과 더불어 지혜와 사랑으로 서로 대화하고 서로 협조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생활을 증거하는 한편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내지 윤리적 선과 사회적 내지 문화적 가치를 긍정하고 지키며 발전시키기를 모든 자녀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에서는 모든 종교들은 복음을 위한 준비이며,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적 가치들을 높이고 완성하신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종교들은 복음 선포 이전에 하느님에 의해 그 씨앗이 인간 안에 심어졌던 명상적인 생활의 보물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종교들 안에서 '말씀의 씨앗들'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의회는 무신론을 평가하는 면에서도 그 이전의 자세와는 변천된 입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공의회는 양심을 따르는 삶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준비로 보고, 무신론자에게도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교의헌장 16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며, 구세주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사실, 자기의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양심의 명령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힘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의 탓없이 하느님을 아직 명백히 인정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올바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섭리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치 않으신다.  사실 교회는 그들한테서 발견되는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로서, 결국은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도록 그들을 비추는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목헌장에서는 무신론의 문제가 비교적 상세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하느님과 결합되기 위해 불리웠음이 인간의 존엄성에 속하기 때문에 무신론은 원칙적으로 인간본질에 위배된다는 점을 천명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이러한 하느님과의 결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노골적으로 배격하는 사실을 아울러 지적합니다.  이어서 무신론의 여러 현상이 열거되고, 이러한 범세계적 무신론에 직면해서 무신론자들의 과실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에 관해서도 언급합니다.  즉 무신론의 중요한 원인 중에는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종교에 대한 비판적 반동이 들어있다는 것, 즉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생활, 윤리 생활, 사회 생활 면에서 결점을 드러냄으로써 하느님과 종교의 참 모습을 오히려 가려버린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또한 자기 탓이 있는 무신론과 자기 탓이 없는 무신론에 관한 문제에서 공의회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의회는 의식적으로 하느님을 마음에서 몰아내고 종교문제를 회피하여 양심의 명령을 거스릴 때에는 탓을 면할 길이 없다고 가르치면서, 정상적인 성인한테도 오랜 기간동안, 아니 삶을 마칠 때까지 명시적인 무신론이 있을 수 있다는 점과 이러한 지속적인 명시적 무신론의 윤리적 과실을 무신론자들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견해가 표명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의회는 무신론의 문제성들을 제시한 뒤에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가 구원되었음과 선한 의지를 지닌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역사하는 은총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모든 선의의 인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며,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고, 성신께서는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빠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셨다고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에 이르는 방법은 하느님만 알고 계시다고 말함으로써 하느님의 위대함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선교 교령에서도 하느님은 자신의 탓이 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당신만이 아시는 길로' 신앙에로 이끄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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