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시란 무엇인가?
세상의 많은 종교가 있는데 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계시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종교입니다. 계시종교로는 그리스도교를 들 수 있고 자연종교로는 유교와 불교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계시종교라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계시(Revelation)라는 말은 'Revelum'이라는 라틴어에서 나왔습니다. 'Re'는 '다시', '제거하다'의 뜻이고 'Velum'은 '휘장'이라는 뜻입니다. 즉 'Revelation은 re와 velation이 합하여 이루어진 단어로, '휘장을 열어 보인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시란 인간의 지능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를(즉 생명, 구원, 영생의 신비를)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 계시에 바탕을 둔 종교를 계시종교라 하는 것인데 그 계시의 내용은 우리 인간이 알아 들을 수 없는 것이기에 믿음이란 요소가 꼭 필요합니다.
계시에는 하느님이 직접 알려주시는 직접계시와 인간이 대자연을 통해서, 또 양심을 통해서 아는 자연적 계시(간접계시),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대자연이나 인간의 양심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시기도 하시지만, 여러 예언자나 현자들을 통해서도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오늘날에는 교회를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시고 계십니다.
2) 세상만물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
우리는 자연적 지식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알기 전에 이미 하느님은 창조된 만물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은 자연 사물의 생리 현상이나 작용, 질서들을 깊이 연구하여 그것들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냈는데, 이 현상들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까지도 깜짝깜짝 놀라게 하며, 탄성을 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놀라게 하며 감탄하게 하는 과학이지만 그 분야에서 종사해 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계점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라 해도 자연의 질서를 새롭게 바꿔 놓거나 그 생명자체를 만들어 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런 한계점을 통해서 우리는 만물을 만들어 내시고 그것을 다스리시는 주인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한가지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분야에 남다른 재주와 재능을 지닌 유명한 과학자가 있었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연구하는데 바쳤기에 많은 분야에서 놀랄만한 업적들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학자에게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연 사물에 대해서 연구하면 할수록,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들이 창조가 아니라 기존의 질서나 원리를 발견해 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몸에 병이 생기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갖게 되자 비로소 자신의 한계점을 깨닫게 되었고, 자연의 놀라운 신비를 주위 환경에서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의지로서, 지성으로서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다는 자신의 교만과 선입관에서 자신을 여는 순간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고, 이로 인해 모든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학자는 여태껏 해 오던 일에 손을 떼는 순간 자연의 신비 속에 우주를 주관하시는 절대자의 존재를 느꼈던 것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 한 송이의 꽃, 한 마리의 새를 통해 작용하시는 생명의 신비가 얼마나 기묘하고 아름다운 가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학자는 늦게나마 대자연을 통해서 생명 자체를 주관하시는 진리이신 하느님을 알아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3) 인간 양심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도 드러내십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 그 사람은 양심으로부터 심한 가책이 옴을 느낀다고 합니다. 즉 훔친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도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훔친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까,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합니다. 이와 같이 양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바른 것을 지향하게 하고 그른 것을 피하게 하며, 그른 것에 대해서는 에밀레 종을 온 지역에 울려, 드러나게 하듯 자신을 경계시켜 자신의 행동을 규제시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인간의 양심은 실로 신비스럽다 하겠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창세 1, 26 - 28) 인간의 심성에, 진리라는 소리로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사도 바울로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율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본성에 따라서 율법이 명하는 것을 실행한다면 비록 율법이 없을지라도 그들 자신이 율법 구실을 합니다. 그들 마음 속에는 율법이 새겨져 있고 그것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2, 14 - 16). 그러므로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은 결코 명랑할 수 없으며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불안과 죄책감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가를 다음의 이야기 안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어떤 사람이 물건을 사러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주인이 없어 주인을 부르다가 계산대 안에 있는 10만원을 보게 되었답니다. 이때 유혹이 생겨서 10만원이란 돈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답니다. 이 십만원을 훔친 날부터 평온하던 가정에 일이 터지고, 직장에서는 윗 분들로부터 질책 및 야단을 맞는가 하면, 밤에는 그 훔친 십만원 때문에 불면증과 함께 여태껏 왕성하던 식욕이 뚝 떨어져, 자신이 느낄 정도로 체중이 줄더랍니다. 더 이상 버티고 있다가는 10만원 때문에 자신이 먼저 죽게 될 것같아 가게 주인을 찾아가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를 청했다 합니다. 그러게 하고 나니 숨을 크게 쉴 수 있더랍니다. 또한 양심이 평온하여 살 것 같더랍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당신의 진리를 인간의 양심 깊은 곳에 심어 놓아 인간으로 하여금 양심의 법에 복종하도록 하고 계십니다. 이 법의 소리는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선을 사랑하고, 악을 피하도록 마음의 귀에 경종을 들려줍니다.
사목헌장은 양심에 새겨주신 하느님의 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이 새겨 주신 법을 그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므로 이 법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세우는 길이며 이 법에 따라 인간은 심판 받을 것이다" (사목 16항).
다음은 예언자들과 교회를 통해서 드러내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4)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내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시며, 천지 만물을 왜 만드셨으며, 사람은 무엇이고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당신이 스스로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은 모든 존재의 신비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계획을 계시하시기 전에 이미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 계획을 미리 알려 주셨고 합당하게 준비하도록 이스라엘이란 민족을 선택하시어 당신의 계시를 드러내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인들이 고난을 당할 때마다 당신의 구원을 예언자들을 통하여 드러내어,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을 통한 당신의 말씀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어, 구세주의 재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과 준비로 이루어졌음을 성서는 일러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약속과 예언대로 구세주가 오심으로서 새로운 약속을 맺으신 시대가 열렸는데 이때를 신약이라고 합니다. 이때는 하느님이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택한 열 두 제자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진리를 계시하실 뿐 아니라 오늘날에는 교회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며, 당신의 진리를 계시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시로 교회를 이끌어 가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를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성전과 성서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5) 성서와 성전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
성서와 성전은 하느님의 말씀에 그 근거를 두며, 인간의 구원을 그 계시의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그 근거를 두는 성서와 성전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이 있으며,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가를 간단히 알아 보겠습니다.
가) 성서에 대해
성서는 성령의 감도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으로서, 구약과 신약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4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하면 역사서(21권)와 교훈서(7), 그리고 예언서(18권)로 구분합니다. 구약성서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구원의 시대 이전에 살던 인류 상황에 맞추어서, 하느님과 인간에 관한 지식,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공의하시고 자비하신 태도를 모든 이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성서는 처음에는 희미하게 계시를 암시하고 있으나 예언자들을 통하여, 구세주의 구원 역사 안에서 점점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과 약속대로 하느님께서는 신약에 와서 당신의 계시를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내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계시 자체인데 이분에 대해서 기록한 책을 우리는 신약성서라고 합니다. 신약성서는 모두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세분하여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약성서는 하느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에 대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거룩한 경전으로 받들고 있는 성서는 하느님이 당신 자신이 부르신 사람들에게 보낸 메시지란 점에서, 다른 어떤 작품과도 견줄 수 없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따라서 성서는 교회의 모든 가르침의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규범이 됩니다.
나) 성전에 대해
교회는 성서와 똑같이 성전을 거룩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성서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역사 안에서 조상들의 입을 통하여 충실히 보존하면서 후손에게 구전으로 전달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비유의 말씀으로 전달하였습니다. 즉 이들은 글로서가 아니라 말씀을 선포로서, 그 시대 및 후손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신앙이나 복음 말씀을 전달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또한 말씀으로서 모든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하느님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죽어가자 하느님의 말씀을 후세에 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글로 쓰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성서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계시와 가르침이 글로 쓰여지기 이전에 말로써 전승되어 내려온 것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계시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낱낱이 기록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성전은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는 것까지도 우리에게 계시로서 교회를 통해 교훈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종합 심화
1) 하느님의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당신의 계시를 환희 밝혀 주셨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셨던 수난과 고통, 죽음과 부활이란 당신의 감추어 계신 구원의 계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고 인간은 예수로 인해 生, 老, 病, 死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어 인생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 육 간의 건강을 회복한 인간은 동료들과,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과의 관계까지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예수가 베푼 기적은 당신의 전능과 자비를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지로, 은총의 선물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시작되었고, 이것은 분명 인간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선물로 주어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인간의 응답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2) 선물로 주어진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인간에게 당신 자신의 사랑을 계시의 선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자애로운 자비로,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에 응답하도록 인도해 주시고 비추어 주셨읍니다(2 고린 4, 6). 이것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신앙인데, 이것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면 먼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께 응답하고 나서는 결단과,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믿는 결단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누구와도 상관없이 모든 이를 당신의 나라인 생명에로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은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이 결단을 위해 우리 인간을 도와 주시기는 하지만 강요하시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지만 참으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분이시기에 자유의사로 결정하는 인간의 모든 일에 대해서 간섭하시지 않고, 다만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계시함으로서, 이것이 구원으로 이르는 생명의 길임을 알려 주실 뿐입니다. 신앙의 삶으로 요청되는 이 응답은 사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임이요, 그리스도의 삶을 따름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4, 27이하) 하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실 천 : 신앙 결단의 필요성
1) 지금까지 우리는 계시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느님의 계시를 올바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비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비우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매일 세수를 하고 나서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 우리의 마음도 계시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서를 통하여 비추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매일 실천사항으로서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성서를 정성드려 읽도록 합시다.
2)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신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한번 살아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신앙인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는 지를 결단케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올바른 결단을 위해 하느님의 사랑을 맛들이도록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가지씩 선행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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