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바다는 잠들고

주혜1 2011. 7. 24. 12:23

 

                                                                             사진: 호이안 님

 

                                    바다는 잠들고

 

                                                                           김주혜

 

 건망증이 심한 수자에게서 돈을 꾸는 사람은 그날로 횡재한다. 그녀는 잊는 것을 술 먹듯이 하기 때문이다. 키를 꽂은 채 차문을 닫기는 예사고, 영수증 고지서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해 내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얄밉게도 책 빌려준 일만은 잊지 않는다. 약속도 잊는 법이 없으니 샘이 날 정도로 그를 따르는 친구가 많다. 하늘이 무너져도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을 여자. 술을 가장 맛있게 마시고 아름다운 언어에 취하는 여자, 맥주잔에 태평양을 담아가지고 와서는 아까운 바다를 다 마시지 못하여 섭섭하다고 눈물을 보이는 여자. 그러나 이제 수자는 혼자다. 건망증이 심한 그녀를 아기처럼 돌봐주던 남편에게 잠깐 헤어지는 거니 먼저 가 있으랬다면서 웃어 보였다. 이쁘게, 편안하게 그리고 배웅하는 사람 많은 가운데 가볍게 떠난 남편이 아주 자랑스럽다는 수자를 친구로 둔,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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