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숨은 그림찾기 -이인원

주혜1 2012. 2. 7. 09:17

숨은 그림 찾기

 
                 이인원
 
 
 먼 산으로 서 있는 꼬깔모자 하나 판자 울타리가 된 연필 한 자루는 아까부터 술래에게서 해방되어  저들끼리 재미나게 속닥거리는데 밭이랑 사이에 엎드린 악어, 이제 그만 숨은 곳에서 나와야 할 지, 깜깜한 구석에 혼자
남겨진 장갑 한 짝 어깨를 더 동그랗게 옹송그리고
 
 
 싫증이 나면 슬그머니 머리카락 한 올 정도는 내보일 수 있게 적당히 숨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치맛자락을 꾸기다 쪼그리고 앉은, 그 계집아인 지금 어디에
 
 이젠 잔주름 사이로 감쪽같이 숨어든 머리카락 한 올 영락없이 집어내고 마는, 남에게 그냥 내보이긴 좀 뭣
한 그것들, 푸른 배추이파리 사이에 꼭꼭 덮어 둔 어떤 술래도 찾지 못하고 돌아가고 나면 지친 그것들,
노란 고갱이 속에 웅크린 채 그만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는
그러다 문득 눈을 뜨면 한 천년쯤은 후딱 지나간 세상
 
 장갑 한 짝 때문에 손바닥만한 정사각 종이 나라를 몇 바퀴나 헤매고 다녔는지 눈앞이 아른
 못찾겠다 꾀꼬리를 외칠까
 긴긴 잠에 빠져 있던 계집아이 분홍빛 벙어리 장갑 한 짝 속에서 눈을 비비며 걸어 나오는 그림
 
그대에게 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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