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자 교리방

마리아론

주혜1 2012. 6. 2. 17:32

1.들어가기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를 각별히 공경해왔고, 신학적으론 교회역사과정속에서 4가지 중요한 마리아 교의 ,즉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녀’, ‘윈죄 없으신 잉태’, ‘성모성천’이 형성되었다.

한국교회성모성심은 한국교회초기(1938년)부터 형성되었고, 박해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까지 신심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주제와 더불어 갈라진 형제들과(개신교)의 교회 일치를 위해서만 아니라 가톨리 교회 안에 여전히 존속하는 잘못된 성모공경을 예방하기 위해 개신교의 마리아에 대한 입장과 마리아론을 서술하기로 하겠습니다.

2.신약성경에 나타난 마리아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나자렛 여인 마리아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구세사의 맥락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구원행동에 관심과 마리아의 동정 잉태와 예수님의 출생 전후의 신기한 사건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는 예수님이 진정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신약성경에서 마리아에 대한 진술은 서간에선 갈라4,4-5에서 육화사건을 언급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90년 이후에 기술된 루카서와 요한 복음서에서 비로소 마리아의 인격적인 면모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3.마리아론

예수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연구하는 마리아론이 독립된 신학의 한 분야로서 자리 잡은 시기는 16세기 말엽에서 17세기 초엽이다. 마리아론이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원칙에서 발전되었고, 마리아론의 의미와 필요성을 서술하고자 한다.

3.1의미

3.1.1신론적 의미

마리아론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마리아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전능성이요, 예수가 하느님이 아들이라는 사실이라는 차원에서 마리아론을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표현하는 신론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3.1.2그리스도론 의미

하느님의 계획에 의하여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의 상태를 간직한 채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마리아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사업과 역사의 모든 과정에 있어서 언제나 더욱 완전해지는 결합의 과정과 깊이 안에서 모성을 통해 예수그리스도께 부단히 협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과 관련하여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3.1.3교회론적 의미

가톨릭교회는 마리아께 대해 轉求를 청하는 것을 유일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고,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를 탄생시킬 능력을 얻고자 마리아께 청한다는 마리아론은 하느님의 은총의 충만성과 은총의 중개자라는 관점에서 그리스도및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

3.1.4구원론적

마리아는 先行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삶의 온갖 어둠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순종을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원형이고, 당신의 순명과 신앙의 응답과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 각자의 모범이 된다.

3.1.5 은총론적 의미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신앙과 순종의 삶이 가능하도록 그녀의 생애 처음부터 특별한 은총으로 준비하셨다. 이를 통하여 우리도 마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삶의 시작과 끝 역시도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게 감싸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3.1.6종말론적 의미

마리아가 신앙과 순종의 삶을 마치고 완성에 도달하였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종말론적 희망과 위로가 된다. 마리아의 현양(성모승천) 사건은 마리아와 같은 신앙과 순종의 길을 가는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종말에 체험하게 될 영광을 미리 예시해 주는데, 현양된 마리아를 보면서 순례하는 하느님백성은 확실한 희망과 위로는 얻는다.

3.2마리아론의 필요성

그리스도신앙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구원 역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면서 인간이 당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 바꾸어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에로 부르시는데, 인간은 이에 신앙과 순종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하느님의 구원의 부르심을 열매를 맺게 된다. 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신학적 주제로 삼고 공경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구원역사의 정점인 육화 사건에서 마리아가 하느님께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데 에 있다.

4.중세후기의 마리아 신심과 역사

중세후기(12-15세기)에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동정녀마리아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대한 신비적 관상이 친숙하게 이루어졌고, 마리아의 개인적 덕성이 우선적 관심사로 대두되어 ‘마리아의 시대’라고 부를 만큼 마리아 심과 공경이 대중화되었다. 수도원내의 내부에서는 성모상이 세워져 수도자들은 매일 복되신 동정녀께 기도드리며 자연의모든 아름다움은 모두 동정녀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마리아의 아름다움과 공경하는 것을 넘어 구세사까지 적용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자비로우신 우리의 구세주이시지만, 동시에 심판자가 되시므로 우리는 그분은 두려워해야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계시므로 연약한 인간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성자는 성모의 말씀을 들으시고, 성부는 성자의 말씀을 들으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결되기 때문에 죄인에게 는 희망이 있고, 인류에게 그러한 중개자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자비와 公義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하면서 말하기를 동정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비의 여왕이 된 반면, 그녀의 아들은 공의의 왕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나 그리스도보다는 자비의 化身처럼 간주된 마리아에게 의탁하여 성모에 대한 자비의 신뢰를 넘어서서 성모를 하늘과 땅의 여왕으로 여기면서 그녀의 보호를 요청하는 형태로 변화되기에 이르렀다. 엘리사벳 존슨은 마리아를 여왕으로 공경하게 된 신학적 근거로 작용한 것은 성모승천에 대한 믿음이라고 주장하였다. 마리아는 악마의 악한 계략을 대적하며, 심지어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마저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구원능력이 신앙의 초점을 넘어 심지어 마리아는 하느님으로 독립하여 활동하는 구원의 대리로 간주될 정도였다. 물론 과장된 마리아신심을 바로잡으려는 신학자들의 노력도 있었다. 알베르토는 마리아의 중개성은 항상 간접적인 것임을 상기시키면서 성모마리아는 모든 성인들 가운데 ‘최고의 공경’을 받아야 하지만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은 드릴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토마스아퀴나스도 마리아의 중개성에 대해서 매우 신중한 입장을 표명하였다.이런 신학자들의 노력과는 달리 대중 신앙 속에선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중개자로 심지어는 신적인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존재로 여겨지는 과장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런 대중적 신심은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신학자들은 마리아 신심에 대한 정교한 신학적 논증을 이루었다.

5.종교개혁과 마리아

종교개혁 시대에는 마리아 신심이 많이 변질되었다. 예를 들면 마리아를 삼위일체의 창조자로 나타내는 성상이 만들어지고 미사에 참례하지 않고 마리아 상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만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제들 중에도 잘못된 마리아신심에 빠져 교회의 전례력도 주교의 경고도 무시한 채 기적을 낳는다는 이유로 성모미사만 드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폐단에 대해서 종교개혁자인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은 많은 비판을 가하였다. 종교개혁의 초기에는 종교개혁자인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평생 동정이라는 고대교회의 가르침을 유지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나, 그들은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나란히 때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기도 하는 중개자로 보는 신심관행은 유일한 중개자인 그리스도의 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여기면서 반발하였다. 이런 지나친 신심은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시면서도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없는 심판관으로 비추어진 데에 원인이 있었다. 지나친 신심과 공경에 대한 반박이 계속되면서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과 결별을 하였다. 6.근대

종교개혁 이후에 프로테스탄트는 점점 더 反마리아적 입장으로 선회하였고, 이에 대한 반발로 가톨릭 측에서는 마리아공경이 점차로 확대되었다. 특히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에선 더욱 강렬하게 전개되었다.

6.근대

6.1근대의 성모성심

18세기에 마리아 신심이 강화되면서 과장된 마리아 공경과 이론을 제시한 신학자는 ‘루이 그리뇽 드몽포르’와 ‘알퐁소 리구오리 ’이다. ‘루이 그리뇽 드 몽포리’는 그의 저서가운데 하나인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 가도록 적극 권하면서 마리아의 중개를 필수적인 것으로 내세우면서 “성부께 나아가려면 우리는 유일한 중개자이고 우리의 구세주이신 성자께 먼저 가야 한다. 또한 성자께 나아가려면 우리의 중개자이고 우리의 전구자이신 마리아에게 먼저 가야한다”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마리아 자신 하느님께로부터 엄청난 능력을 받았다고 서슴없이 주장하였다. 루이그리뇽은 그리스도께서 어머니 마리아께 순종하신다는 중세 후기 思考속에서 마리아의 권위와 능력에 지나치게 신뢰를 두었다. 알퐁소 리구오리는 예수님이 구원의 받침돌이시지만 우리의 심판자이시지만 마리아의 임무는 관대함과 인자함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하느님이 화를 내시면 마리아 자신이 우리를 보호해 자신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심지어 안셀모가 한말이라고 주장하면서 마리아의 이름을 바치는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치는 기도보다 더 효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상황에선 마땅히 예수님께 해당하는 면모들을 점차로 마리아에게 적용하면서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영예와 장점을 마리아에게 부여하였다. 이렇게 마리아의 모습은 점차로 그 아드님이 모습과 합치되고, 자주 마리아의 모습에 예수님이의 모습이 가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계몽주의 영향으로 침체된 성모신심을 강화하는 데는 기여를 하였다. 위와 같은 마리아 신심가들에게 찬성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성공회에서 개종한 뉴먼은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제2의 하와로써 구원사업의 능동적인 협력자이며 우리의 전구자라는 것을 옹호하면서도 대중 신심에 다소 지나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6.2성모의 원죄없는 잉태와 성모승천의 교의 선포

18세기말부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마리아신심과 공경이 많은 비판을 받고 위축되었지만, 곧 이어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마리아 신심이 더욱 강화되었고, 19세기에 자주 일어났던 성모발현은 대중의 마리아 신심을 더욱 자극시켰다. 이미 고대 교회에 등장하여 중세에 토론의 대상이었으나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마리아론의 주제들 ,즉 원죄없는 잉태와 성모승천에 대해 신학적으로 더 깊이 논의하려는 관심이 일어났다. 17세기에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규정해 달라는 신자들의 거센 요청에도, 교황들은 성모축일을 장려하면서도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를 교리로 선포하지 않았다. 1840년에 프랑스 대주교들이 교황그레고리오16세에게 공동서한을 보내어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를 교회로 선포해주기를 요청하였고, 1843년에 당시 교황청국무원장인 ‘람브루스키니’ 추기경이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에 관한 교황청 문헌들을 모두 수집하여 논문을 발간하였고,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를 반대하는 전통을 지닌 도미니코회원들도 성모의 원죄 없는 표현을 삽입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846년에 교황이 된 비오 9세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848년에 추기경자문회를 소집하였다. 여기에서 안토니오로스미니 세스바티는 근본적으로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를 선언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독일과 다른 지역에서 반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의 적절하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해 주교들에게 설문지를 보낼 것을 제안하였고, 설문지는 발송되었다.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비오9세는 1854년 12월8일 회칙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을 통해서 교도권적으로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를 수용하였다. 이 회칙은 둔스 스코투스의 논거를 수용하였는데, 즉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공로를 미리 앞당기는 ‘선행구속’이란 신학적 개념은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교리가 모든 인간의 구원필요성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구원의 보편성과 합치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성모의 원죄없는 잉태의 교의 선포는 ‘성모승천’도 곧 교의로 선포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당시의 성모승천의 교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신학적으로 종합한 ‘필로그라씨’는 교의를 증명할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는 어떤 신앙적 확신이 등장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점점 광범위하고 분명한 확신으로 자라나는 오랜 역사를 추적하여 그것을 교의로 선포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현재교회의 신앙의식에서 출발하여 그 신앙이 계시적 성격을 지닌다고 결론짓는 것으로서 ‘성모승천’은 여기에 속한다고 하였다. 마침내 교황 비오12세는 1950년 11월1일에 회칙“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을 통해서 ‘성모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신학적으로 20세기초반에 고대교부들이 신학을 재발견하게 되면서 마리아를 교회와 類型論的으로 비교하여 고찰하고 마리아가 실현한 신앙적 순종의 모범적 의미에 점점 더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렇게 마리아론을 교회론과 연결지어서 고찰하는 태도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수용되었다.

7.바티칸2차공의회

7.1개최과정

요한 바오로23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세계의 주교들과 학자들에게 공의회에서 다를 주제를 추천하도록 요청하였다. 이 가운데 2000여건의 청원 내용 중 600여건이 마리아와 관련된 주제였다. 1960년11월부터 1962년10월까지의 준비 단계에서 ‘교회의 복되신 마리아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의제가 상정되었는데. 이 계획안은 다섯 차례 편집을 거치고 제목도 여러 차례 바뀌었으나 제목은 항상 마리아와 그리스도,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1962년부터 많은 연구와 토의 과정, 문항 양식의 수정과정을 거처 그 동안 독립적으로 마리아론을 연구하여 교회의 관습(마리아 개인의 특권과 영광에 촛점을 맞추는 “특권마리아”의 경향을 지양)을 뒤엎고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련 안에서 고찰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관점에서 “교회헌장”8장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이를 포함시켰서 현재의 모습으로 확정되었다.

7.2문헌내용

마리아에 관한 장은 마리아론의 방향을 제시한 서론(52항-54항)과 본론인 3절(55항-67항)과 마지막 결론부분으로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7.2.1: 서론

교회가 그러하듯이 마리아도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있기에 마리아론도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다루었고(52항), 둘째로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복되신 동정녀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53항), 마지막으로 마리아에 대한 연구에 대하여 “마리아 에 대한 교리를 전부 설명하거나 신학자들의 노력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맺음으로써 신학자들의 토론에 여지를 남겨두었다.(54항)

7.2.2: 2절(55항-59항)

고대교부들의 해석방식에 따라서 하와-마리아의 유비를 적용시켜서 하느님의 뜻에 신앙과 순종의 자세를 보인 그리스도의 모친의 능동적이고 구세사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마리아는 성령의 인도로 온전히 하느님이 뜻에 순종한 새로운 인간인 것이다.(55항) 공의회는 ‘복되신 동정녀께서도 신앙의 나그넷길(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하느님께 순종)을 걸으셨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아드님과 당신의 결합을 충실히 견지하셨다.’는 구절에서 마리아에게 해당되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구원된 다른 인간들에게도 해당됨으로써 우리도 하느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구원되는 것이다.(58항) 마리아와 그리스도 신비와 결합에서 마리아와 교회신비가 결합되기 때문에 마리아에게서 교회의 완성을 볼 수 있으며, 우리도 성령 안에서 마리아처럼 하느님이 뜻에 철저히 순종하며 마리아와 같은 운명을 지니게 된다.(59항)

7.2.3: 3절(60항-65항)

복되신 동정녀와 교회에서는 디모테오서전서(2,5-6)를 인용하면서 분명하게 중재자는 오직 한분 그리스도임을 밝히면서, 마리아는 역시 중재자 또는 협조자임을 밝힌다. 마리아의 인격과 사명이 그리스도와 긴밀히 일치되어 있으며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밝히면서 교회의 原型이 되는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을 언급하고 마리아가 교회를 위한 聖德의 모범이고 종말론적 교회의 모형이며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7.2.4: 4절(66항-67항):교회내의 마리아공경

마리아는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받으며, 특히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에페서 공의회이후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본받음에 있어서 공동체적이고 전례적인 표현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참된 마리아 공경은 그리스도인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고, 특히 갈라진 형제들과의 교회일치를 위해 마리아 공경문제로 오랜 오해를 일으킬 여지를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참된 마리아 신심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자녀다운 사랑과 덕행의 실천적인 본받음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7.2.5,: 결론

종말론적인 전망 안에서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마리아가 ‘하느님의 순례하는 백성에게 마리아가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과 그 시작’으로서 하느님백성에게 ‘확실한 위로의 표지’가 된다고 고백한다. 69항에선 교부들은 갈라진 형제들, 특히 동방교회에서 마리아께 공경을 드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교회일치와 민족들이 평화와 일치를 위해서 성모님의 전구를 간청하자는 호소로서 끝을 맺는다.

7.3: 요약

“교회헌장” 제8장은 바티칸 공의회의 교의적인 측면에서 교회헌장 전체에 대한 종합적이며 종결의 부분이고, 신학자들 사이에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교의를 제시하지 않고 다만 계시에 비추어 깊이 있게 규명하고 현대에 부응하는 문화 및 종교적 감수성에 의해 인도되고 구원역사의 전망 안에서 새로이 이해되는, 그리하여 교회전체가 마리아의 신비에 대한 온전한 안목을 지닐 수 있도록 해주는 보다 확실한 교리의 신학적 종합을 마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을 ‘주의 모친에 대한 가르침이 보다 완성되어 가도록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에 입각하여 이 가르침을 개방시킨 것이기도 하다“

8.결론

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신학적 주제로 삼고 공경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구원역사의 정점인 육화사건에서 그리스도의 육화를 가능케 한 마리아의 신앙적 순종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고대교부들은 육화의 신비와 관련해서 마리아의 구세사적인 역할과 의미를 하와와 비교하면서 분명하게 밝혀내면서, 마리아는 신적인 존재, 기적의 여인 또는 초능력자가 아니라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생활한 여인으로 하느님 백성의 교회를 미리 알려주고 실현된 교회의 예형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중세이후근대를 거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전까지의 대중 신심은 천상의 마리아의 중개성을 특별하게 강조하였는데 , 이는 지나칠 정도였다. 이는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는 일방적으로 정의를 앞세우시는 분으로 인식한 반면에 마리아는 무한한 자비의 여인,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에 - 자신에게 의탁하는 이들의 여하한 청도 들어 줄 수 있는 막강한 여왕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느님께 무한한 자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심판의 경고가 있지만(마태18,23), 사도바오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죄와 그에 대한 심판보다 우위에 있다.(로마5,20) 다행스럽게 이런 경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변화되었다. 공의회는 마리아의 중개성을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 종속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또 마리아 공경은 그리스도를 향하며 전례에 중점을 둔 공경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과장을 피하고 갈라진 형제들이 오해를 품게 하는 말과 행동을 삼가라고 당부한다.

신앙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보다는 함께 가면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특히 우리에 앞에 앞서 신앙여정을 완수하여 목표점에 도달하시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그분을 자신의 신앙여정의 모범과 길잡이로 삼고 그분에게 우리의 전구를 간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