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사슴풍뎅이

주혜1 2012. 11. 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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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풍뎅이

 

                                                  김주혜

 

광릉 숲속에서 사슴풍뎅이를 보았다. 투명한 밤색 뿔
이 마치 뱃머리처럼 휘어졌고, 찌르찌륵 짝짓기를 하다
뿔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는 그 눈이 오래비를 닮아 있
었다. 불쌍한 오래비. 물대접에 젓가락을 담고 노 젓는
시늉을 즐겨 했다던 신동 오래비를 잃고, 어머니는 나
팔꽃처럼 오므라들었다. 아궁이의 불꽃은 시야를 어지
럽혔다. 잊어버리세요, 어머니. 오래비 잡아먹고 너는
뭐 될래? 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난다. 기집애 동생만
여덟이나 보다니. 어머니의 눈에는 먼지와 나무가루가
소용돌이친다. 나 때문에 대가 끊긴 우리 집의 짐을 벗
기 위해서 나는 평생을 어머니 어깨 위의 어둠을 걷어
내야만 했다. 찌르찌륵 사슴풍뎅이는 짝짓기를 끝내고
붕붕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있다.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는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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