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있었습니다.서로 사랑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랑을 꽃피우지는 못했습니다. 헤어진 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남자가 한 산사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첫사랑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은 여승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떠나려는데, 여승이 연화심차를 내어놓습니다. 연화심차(蓮花心茶) --- 시 / 리울 김형태 산사에서 여승을 만났네 내 푸른 가슴에 처음으로 불을 지핀 여인 아슴아슴 추억속의 그녀가 하이얗게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오늘은 한 떨기 수련되어 빙그레 염화미소... 말없음의 말로 서로의 마음을 빛이 이슬이 되어 내릴 때까지 보듬고 또 보듬었네 손톱에 멍울지도록 깨물던 그날처럼 새벽별 툭툭 털어내고 떠나오려는 아침, 하룻밤을 연꽃 속에서 꼬박 새웠다는 연화심차를 내어놓네 감미로운 차 한 잔속에 두레박처럼 길게 드리워진 그녀의 깊은 눈빛 지상에서 접할 수 없는 색과 향과 맛... '교외별전'이 풍경소리처럼 입안에서 감도는데 흐르는 눈물 자꾸만 그녀의 잎새로 떨어져 방울방울 겉돌기만 할 뿐... 끝내 그녀를 적시지 못하는 나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연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그녀 타지도 마르지도 않는 마지막 한 방울의 외마디 그리움을 꿀꺽 삼켜 버리고 말았네 - 시집 <아버지의 빈 지게> 중에서 - * 연화심차 : 해질녘에 연꽃 속에 녹차를 넣어두면 꽃잎이 오므라들면서 밤새 녹차에 연꽃향이 배인다. 아침에 연꽃 속에서 녹차를 꺼내어 우린 차를 연화심차라 말한다. Photo By Mi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