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연화심차 / 김형태

주혜1 2014. 5. 9. 12:30
두 남녀가 있었습니다.
서로 사랑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랑을 꽃피우지는 못했습니다.   
헤어진 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남자가 한 산사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첫사랑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은 여승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떠나려는데,
 여승이 연화심차를 내어놓습니다.
 
연화심차(蓮花心茶)
                                                --- 시 / 리울 김형태
 
산사에서 여승을 만났네
내 푸른 가슴에 처음으로 불을 지핀 여인 
아슴아슴 추억속의 그녀가
하이얗게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오늘은 한 떨기 수련되어 빙그레 염화미소...
 
말없음의 말로 서로의 마음을
빛이 이슬이 되어 내릴 때까지 보듬고 또 보듬었네  
 
손톱에 멍울지도록 깨물던 그날처럼
 새벽별 툭툭 털어내고 떠나오려는 아침, 
 
하룻밤을 연꽃 속에서 꼬박 새웠다는 연화심차를 내어놓네   
감미로운 차 한 잔속에
두레박처럼 길게 드리워진 그녀의 깊은 눈빛 
 
지상에서 접할 수 없는 색과 향과 맛...
 '교외별전'이 풍경소리처럼 입안에서 감도는데 
 
흐르는 눈물 자꾸만 그녀의 잎새로 떨어져
방울방울 겉돌기만 할 뿐... 
 
끝내 그녀를 적시지 못하는 나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연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그녀   
타지도 마르지도 않는 마지막 한 방울의 외마디 그리움을
꿀꺽 삼켜 버리고 말았네
 
                                         - 시집 <아버지의 빈 지게> 중에서 - 
 
 * 연화심차 : 해질녘에 연꽃 속에 녹차를 넣어두면 꽃잎이 오므라들면서 밤새 녹차에 연꽃향이 배인다.
아침에 연꽃 속에서 녹차를 꺼내어 우린 차를 연화심차라 말한다. 
 
Photo By Mi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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