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모시고
장석남
오늘 나는 가난해야겠다
그러나 가난이 어디 있기는 한가
그저 황혼의 전봇대 그림자 가 길고 길 뿐
사납던 이웃집 개도 오늘 하루는 얌전했을 뿐
우연히 생겨난 담 밑 아주까리가
성년이 되니 열매를 맺엇따
실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어디 "또 그런 데 가서 그 아들 손주가 되겠다
거짓마저도 용서할
맑고 호젓한 가계
오늘도 드물고 드문 가난을 모신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의
서걱임
수의 복의
서걱임.
풀꽃독경
ㅡ 나석중
어제는 은꿩의 다리 찾아읽고
오늘은 금꿩의 다리 찾아읽네
야생의 풀꽃 경에 빠지다보면
더러 한 끼의 밥 때를 놓치는 마당에
외로움이란 감정의 사치에 불과한 것
돌이든 풀꽃이든 시든
거기에 마음앗기다보며ㅑㄴ
백수 같은 외로움 맞아 놀아날 새 없네
자주강아지풀을 보면 나도 자주강아지풀이나 되어서
무엇이 좋다고 저렇게 꼬리를 흔들흔들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갈고 싶은데
자주강아지풀 너도 나를 보면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싶은 거냐
장마 그치고 바야흐로 가을로 들어섰지만
이제야말로 연애하기 좋으 시절이라는 듯
매미들 시퍼런 소리 갈아대며 극성인데
숲속 오솔길가 거침없이 솟아오른
꾀벗은 무릇 한 쌍이
나를 조금 부끄럽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