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이별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김주혜
수연선생님,
만남의 고마움, 그것은 기적이라 하셨나요?
1987년 봄 덕수궁 시창작 교실에서
시와 열애에 빠진 한 청년을 만났지요
교단을 무대 삼아 열정적인 몸짓과 우렁찬 음성으로
시를 들려주던 그 강렬하고도 정열적인 모습을
바탕골 공간시 낭송에서 다시 뵌 이후,
시는,
들려주어야 빛이 난다는 걸 알았지요
참 용케도 수연선생님은
누워 있는 시를 일으켜 세워 춤추게 하는 기술을 가지셨어요
기적처럼 수연선생님을 만나
비로소 빛깔을
비로소 소리를
비로소 보는 기술을 배우려 하는 참에
이별이라니요?
이별할 때 먼 곳이 생겨난다고 하셨나요
먼 길을 돌아오시려고요
그 길에서 설마
시와 결혼하신 생이 지겨워
시를 조금씩 밀어내지는 않으시겠죠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하시며
홀연, 흰수염 날리며 헛헛 웃음 띈 모습으로
반짝 나타나시어 소나무 송을 들려주시겠지요
넋 속의 죽음, 죽음 속의 넋
일체의 잡념 없는 그 낏낏한 솔방울 속 둥근 방에서
솔향기에 젖어 도끼자루 썩히시는 건 아니신지요
저희들
시만이 채울 수 있는 선생님의 빈자리에서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먼 길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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