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모두가 이별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주혜1 2015. 5. 8. 19:52
      모두가 이별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김주혜 수연선생님, 만남의 고마움, 그것은 기적이라 하셨나요? 1987년 봄 덕수궁 시창작 교실에서 시와 열애에 빠진 한 청년을 만났지요 교단을 무대 삼아 열정적인 몸짓과 우렁찬 음성으로 시를 들려주던 그 강렬하고도 정열적인 모습을 바탕골 공간시 낭송에서 다시 뵌 이후, 시는, 들려주어야 빛이 난다는 걸 알았지요 참 용케도 수연선생님은 누워 있는 시를 일으켜 세워 춤추게 하는 기술을 가지셨어요 기적처럼 수연선생님을 만나 비로소 빛깔을 비로소 소리를 비로소 보는 기술을 배우려 하는 참에 이별이라니요? 이별할 때 먼 곳이 생겨난다고 하셨나요 먼 길을 돌아오시려고요 그 길에서 설마 시와 결혼하신 생이 지겨워 시를 조금씩 밀어내지는 않으시겠죠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하시며 홀연, 흰수염 날리며 헛헛 웃음 띈 모습으로 반짝 나타나시어 소나무 송을 들려주시겠지요 넋 속의 죽음, 죽음 속의 넋 일체의 잡념 없는 그 낏낏한 솔방울 속 둥근 방에서 솔향기에 젖어 도끼자루 썩히시는 건 아니신지요 저희들 시만이 채울 수 있는 선생님의 빈자리에서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먼 길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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