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이야기

아씨시(Assisi)의 전설                                      

주혜1 2017. 3. 26. 16:30

아씨시(Assisi)의 전설



                  

                  

문우일 매니토바대 명예교수


어느 추운 겨울날 프랜시스(Francis) 신부와 클레어(Clare) 수녀는 스펠로(Spello)에서 아씨시(Assisi)로 가는 길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리 먼 길은 아니지만 움브리아(Umbria) 평야에서 불어닥치는 찬바람을 잠깐 피하기 위하여 주막에 들렀다. 거기서 빵과 물을 얻어 들고 나오는데, 사람들은 수근 거렸다. 저렇게 아름다운 젊은 수녀가 이 깊은 산길을 왜 신부하고 같이 가는가? 의심하는 눈치들이 분명했다. 

눈까지 날리는 수바씨오(Subassio) 산길의 겨울 해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말없이 얼마를 걷던 프랜시스 신부는 클레어 수녀한테 “수녀님, 당신은 지금 동네 사람들이 왜 수근 거리고 있는지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신부가 무슨 뜻으로 묻는지를 아는 수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부는 “수녀님,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세요. 그러면 해지기 전에 수녀원에 도착 할 겁니다. 나는 천천히 뒤에 떨어져 하느님의 인도를 따르며 혼자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오솔길 한 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수녀도 무릎을 꿇고 잠깐 기도를 한 후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 날리는 잿빛 하늘 아래를 걷던 수녀는 발을 멈추고 돌아서서 “신부님, 다음에는 언제 뵙겠습니까?” 하고 소리쳐 물었다. 신부는 “아마 따뜻한 여름이 오고, 장미꽃이 필 무렵이면...” 하고 대답 했다. 수녀는 실망하는 표정으로 돌아 서서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오솔길 옆 노간주 나무와 관목들이 온통 장미로 덮이기 시작했다. 수녀는 노간주와 관목들의 가시에 찔려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르고 장미 한다발을 꺾어 신부에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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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지아(Perugia)를 지나 동남쪽으로 차를 몰아 탁 트인 움브리아 평야 안으로 들어가면, 움브리아 평야 동편 수바씨오 산기슭 위로 하얗게 보이는 마을이 프랜시스 신부가 살던 아씨시 이다. 수바씨오 주변 산맥의 산들은 미국의 서남부 캘리포니아의 산들과 마찬가지로 바람막이가 될 나무도 숲도 없이 노간주와 관목들만 무성한 지역이다. 바스티아(Bastia)에서 이 벌거숭이산들을 쳐다보며 치아씨오(Chiascio) 강을 건너 로카 마지오레(Rocca Magiore)를 향해 걸어 올라가면 아씨시 마을로 들어간다.

한여름 땡볕에 바람 한점 없는 아씨시의 거리들을 서둘러 걸어가는 신부들, 팔 옆에 꼭 낀 성서와 둥근 챙의 까만 모자들은 지금도 옛 로마의 천주교 전통 그대로이지만, 떼지어 밀려오는 관광객 그룹들은 마치 공단에서 뿜어내는 검붉은 연기처럼 혐오를 느끼게 한다. 푸르러야 할 산들마저 뿌연 갈색 배경을 이룬다. 아씨시의 성소와 성소들 사이에 단정하게 가꾸어진 집들과 규모 있게 다듬어진 돌로 포장해 놓은 꼬불꼬불한 골목길들. 이 골목길들을 걸을 때 우리는 800여년 지난 오늘에도 (성인) 프랜시스 신부와 그의 가르침 “주님, 내가 위로를 받기를 바라기보다는 위로를 줄 수 있고, 이해 받기를 바라기보다는 이해 할 수 있고, 사랑 받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성직자들을 대할 때, 그들은 마치 성인이어야 하는 것 같이 착각하고, 때로는 그들의 행동거취를 비판하기도 한다. 기독교 또는 불교의 성직자와 출가한 수행자들은 그들의 경전 가르침을 따라 세속의 탐욕과 유혹을 견디고 이겨내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살 것 같다. 한편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기에 우리는 수행하는 그들의 일상을 보고, 더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눈 내리는 산길을 맨발로 다니던 프랜시스 신부의 기도에서, 그리고 한겨울에 노간주와 관목에서 장미꽃을 피게 한 클레어 수녀의 기적을 생각할 때 우리는 수행자들의 인간다움 ?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友情)과 연민(憐憫)을 본다.



캐나다 한국일보
발행일 : 201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