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시평

김주혜 시인의 [숲속의 헌책방]/ 박제천

주혜1 2017. 9. 20. 18:45

박제천/ 김주혜 시인의 [숲속의 헌책방]


김주혜 시인의 [숲속의 헌책방]은 문학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2017년 수상작이다. 김주혜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수도사대(현 세종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신경림, 이근배 시인이 심사한 『민족과 문학』신인상에 [스트레스]로 당선했다. 당선작 [스트레스]는 욕조에 풀어놓은 물고기의 스트레스를 정공법으로 다룬 작품이다. 필자의 저서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수록돼 지금까지도 작시법의 전범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시인은 등단 이래 지속적인 시작활동에 전념했지만 시집은『때때로 산이 되어』 『아버지별』 『연꽃마을 별똥별』등 3권을 출간할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 엄격한 과작의 중견시인이다. [주혜]는 ‘주님의 은혜’라는 뜻에 착안해, 스스로 작명한 필명이다. 김주혜 시인의 이번 수상작은 “세밀한 묘사와 분위기 연출을 통해 작품의 전경과 후경의 이중적인 장치를 아우르는 테크닉과 상상력에 주목하였고, 거침없이 시의 매직 포인트를 찾아내는 시인의 신선한 눈매, 깊은 시력, 역동적인 상상력의 전개를 높이 평가”했다는 심사평처럼 ‘숲속의 헌 책방’이라는 모티브에 충실하게 자연을 하나의 책방으로 설정, 흙과 자갈, 그곳의 계곡물소리, 바람소리를 아우르며 자연의 사물들을 서적으로 환치시키면서 대학 국문과의 교과서들의 저자와 책명을 병기함으로써 또하나의 자연을 형상화하는 상상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작품을 낮은 소리로 읽으면서 60년대 학번 시절의 추억을 재생시키는 시인의 가을 여행을 즐겨보자. 
 
단양군 적성면 골짜기
숲 속의 헌책방에 들어서자
흙과 자갈 바닥에 뒹구는 헌책들
그 사이로 계곡물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책 곰팡이 냄새가 왠지 정겹다
 
청계천변을 누비며 찾아다닌 기억들
밤새워 도란거리던 시간들
모두, 여기서
짓눌리고 멍들고 남루한 채 풍장風葬당하고 있구나
 
양주동의 여요전주麗謠箋注
유창돈의 이조어사전李朝語辭典
백철의 문학개론文學槪論
90년 내 초기 동인지까지
새록새록 묻어나는 반가운 사람들
함성을 지르며 가슴에 꼭 끌어안는다
 
놓쳐버린 내 시간은 어디쯤 묶여 있을까
숱한 비틀림으로 굽은 내 애잔한 추억처럼
숲 속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비좁은 햇살,
그래도 저 책엔 방금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김주혜 시인의 [숲속의 헌책방]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