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계란후라이와 닭알부침

주혜1 2025. 2. 18. 08:37

분단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18년 8월 행사를 마지막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중단됐고 지금은 북한이 모든 대화 채널을 끊은 상태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공덕역 근처 빌딩의 한 층을 쓰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는 제86차 남측편찬위원회 회의 및 공동회의 20주년 기념 자체 평가회를 조촐하게 가졌다. 물론 북측에 연락할 방도는 없었고, 그쪽 편찬위원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추진됐고, 노무현 정부 때 업체 입주가 시작됐다. 남과 북의 문화·관습·체제 같은 것이 많이 달라 이질감이 큰데 언어마저 다르면 화합을 위한 논의조차 불가능하게 될 거라는 걱정을 남쪽의 학자들이 했고 북쪽의 학자들도 동의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논의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25회 공동회의를 가졌다. 가슴 벅찬 나날이었다.

싱크대라는 말은 북한에선 쓰지 말자고 했다. 북한의 가정에는 싱크대 있는 집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겨레말큰사전에는 바겐세일과 막팔기가 함께 실렸다. 우리는 화장실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위생실로 쓴다. 그럼 화장지는? 당연히 위생지다. 평양에 가면 함흥냉면을 먹을 수 없다? 농마국수를 시키면 된다. 다이어트는? 몸까기다. 편찬 작업은 흥미로웠다. 동전은 짤락돈, 땡땡이치다는 뚜꺼먹다, 스킨로션은 살결물, 수하물은 손짐, 계란프라이는 닭알부침.

남과 북이 양보 못 하는 것이 있었다. 두음법칙이었다. 북은 력사였고 남은 역사였다. 이런 논의와 줄다리기에는 한글 사랑과 마음 열기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25회 공동회의 과정에서 30만7000개의 낱말이 선정됐다. 2015년 12월 중국 다롄에서 마지막 공동회의를 진행했고 이후 남과 북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쪽에서는 가제본 10권 1질을 제작했다. 3년 뒤에는 사전이 완간될 예정이다. 북의 동향이 어떻든 계속 열심히 사전 편찬 작업을 하자고 다짐하며 회의를 마쳤다. 하지만 참으로 쓸쓸한 귀갓길이었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은 모든 곳에....!  (0) 2025.02.05
찰나 같은 이 세상...!  (0) 2025.01.30
나는 세상에 칼을. ..!  (0) 2025.01.23
궤변의 꽃  (2) 2025.01.04
슬픈 시대의 괴물 출현기  (1) 20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