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존재의 여백

주혜1 2025. 5. 27. 08:58

존재의 여백: 종이에 대한 성찰
ㅡ조광호신부

종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의 존재 방식은 기이하게도 자기 소거를 통해 완성된다. 종이는 스스로를 은폐함으로써 타자의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역설적 존재자이다.

그 위에 펼쳐지는 무수한 서사들—사랑의 고백, 미움의 선언, 용서의 간청—은 모두 종이라는 매개체의 투명성에 의존한다. 종이가 자신을 주장하는 순간, 그 위에 새겨진 의미들은 색바래진다.

종이는 완전한 타자에 대한 환대의 공간이다. 그것은 어떤 내용도 거부하지 않으며,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전쟁의 명령과 평화의 노래를 동등하게 품는 이 무차별적 수용성은,시간의 누적된 흔적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러나 종이의 시간성은 과거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로 재생산해낸다.

종이 위의 글쓰기는 같은 단어라도 종이 위에 새겨지는 맥락과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연애편지에서와 이별편지에서 갖는 무게가 다른 것처럼, 종이는 의미의 변주를 가능하게 하는 침묵의 화음이다.

종이는 인간에게 또 다른 거울이 된다. 그러나 이 거울은 외모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을 반사한다.

우리가 종이 위에 쓰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투사이며, 동시에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행위이다.
글쓰기와 그림그리는 행위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실천이다.

종이는 이러한 자기 관계의 공간을 제공한다.
우리는 종이 위에 사랑을 쓰면서 사랑하는 주체가 되고, 용기를 기록하면서 용기 있는 존재로

때때로 종이는 바로 집단 기억의 물질적 토대가 된다. 개인의 사적 경험이 종이 위에 기록되는 순간, 그것은 공동체의 문화적 자산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획득한다.

야스퍼스가 제시한 '축의 시대(Achsenzeit)' 개념을 빌려 말하면, 문자의 발명과 종이의 등장은 인류 문명사에서 또 다른 축의 순간이었다.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인간 의식 자체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했다.

종이는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침묵의 조력자였다.

종이의 존재 방식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은 심오하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빛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숨기는 것은 아닐까?

종이의 겸손함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존재론적 선택이다. 그것은 '있음'보다는 '있게 함'을 선택한 존재자의 윤리학이 아닐까

종이는 즉자존재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자존재들의 자유로운 의미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것은 의식을 갖지 않지만, 의식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결국 종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여백의 철학이다.

채워지지 않은 공간의 잠재력, 말해지지 않은 침묵의 웅변, 드러나지 않은 존재의 깊이.

종이 위에 펼쳐지는 인간의 서사는 곧 존재 자체의 서사이며, 그 서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종이의

텅빈 공간" 종이의 '없음'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모든 '있음'을 가능하게 한 근원적 조건인 것이다.

우리는 종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지만, 동시에 그 거울 자체의 투명성 속에서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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