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고요한 물, 타오르는 불

주혜1 2025. 5. 30. 11:48

고요한 물, 타오르는 불
       ㅡ조광호 신부

– 물과 불, 그 침묵과 사랑의 연금술

동서의 옛 선현들은  물을 바라보며
수행을 했습니다.

물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 흐름 앞에 오래 머무를수록
물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내 안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거기엔 두려움도, 흔들림도,
말없이 응시하는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동서양에서 관수(觀水)를 통해
무심함을 배우고, 무상을 체득하며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지향해 왔습니다.

그러나 물은 그저 고요하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생명을 길러내는 숨은 불꽃이 있습니다.

불처럼 타오르지는 않지만,
조용히 살리는 힘으로
세상을 적시고, 움직이고, 변화시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말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놓으신 불꽃에서 왔고,
그 불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그가 말한 불은
욕망의 불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불,

하느님의 숨결과
맞닿아 있는 불입니다.

물가에 앉아 흐름을 바라볼 때,
그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불을 눈여겨 본 것입니다.

그 불은 눈에 띄지 않지만
기도처럼 타오르고

겸허하게 흐르며 살아가라 이끄는
강력한 사랑의 이끄심 이었습니다

물은 나를 씻고
불은 나를 일으킵니다.

하나는 내 상처를 적시고,
다른 하나는 나의 무기력을 태웁니다.

물과 불은 서로 반대되어 보이지만,
수행자의 내면에서는
늘 함께 존재하였습니다.

고요함 속에 타오르는 불,
타오름 속에 지켜지는 침묵.

이 둘의 조화야말로
에크하르트가 말한 신성과 하나 되는 길,
동양의 선사가 말한 무심의 경지입니다.

그렇습니다

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내 안에 불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 불은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사랑의 불,
세상을 밝히는 불이자

나를 변화시키는 불입니다.

침묵의 물 앞에서
그들은 흐르되
불꽃을 잃지 않게

고요하되 사랑을 잊지 않게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물은 흐르고,
불은 타오릅니다.

그 둘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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