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 아니다

주혜1 2025. 4. 20. 00:03


ㅡ결코 *죽음*이 우리 삶의
마지막 말이 아니다ㅡ조광호신부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지만, 현대인에게 이 개념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 남아있습니다.

단순히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물리적 현상으로 부활을 이해하신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부활의 온전한 의미를 놓치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학 전통과 사도 바울로의 가르침을 통합적으로 살펴 봅시다

조금 성급하지만 결론 부터. 말하자면

부활은 단순한 육신의 회복이 아니라 우리 존재와 우주전체의 근본적 변화와 최후의 완성을 말합니다

성서에서 예수부할사건 외에 부활에 대한그 핵심 가르침은 사도 바울로의 코린토전서 15장입니다
사도바울로는
부활에 관한 가장 체계적인 설명을 제공하십니다.

그분은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하시면서도, 부활한 몸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제시하십니다.

"어떻게 죽은 자들이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오는가?"(35절)라는 질문에 답하시면서, 바울로는 현재의 육체와 부활한 몸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설명하십니다.

바울로께서 제시하시는 '영적인 몸'(소마 프뉴마티콘)이라는 개념은 얼핏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는 그리스 철학의 이원론적 사고를 초월하는 혁신적 개념입니다.

여기서 '영적'이란 비물질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프뉴마)에 의해 완전히 변화되고 생기를 얻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로께서는 씨앗과 식물의 비유를 통해 이 변화의 본질을 설명하십니다. 씨앗이 죽어 새로운 식물로 변화하듯, 우리의 현재 몸은 죽음을 통해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않는 것을 입는"(53절) 이 변화는 단순한 회복이나 복원이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의 완전한 변형(transformation)입니다. 이것은 물리적 법칙의 제약에서 벗어나, 영광스럽고 능력 있는 새로운 실존 방식입니다.

현대 가톨릭 신학자들은 바울로의 가르침을 더욱 발전시켜, 부활을 우주적 차원의 새로운 창조 사건으로 이해하십니다.

칼 라너 신부님은 부활을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사건이 아닌, 인간과 우주 사이의 새로운 관계 형성으로 보셨습니다.

요제프 라칭거(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신부님은 부활이 물질세계의 근본적 변혁의 시작점임을 강조하셨습니다.

한스 큉 신부님은 부활을 영과 육의 분리가 아닌, 전인적 존재의 완성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통찰은 부활이 단지 영혼의 구원이나 육체의 회복을 넘어서는 총체적 변화임을 보여줍니다.

부활은 인간 존재의 모든 차원—육체적, 정신적, 영적, 관계적—을 포함하는 완전한 변화이며, 창조 질서 전체의 회복과 완성을 내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새로운 창조의 '첫 열매'로서, 모든 인류와 창조 세계가 나아갈 궁극적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변화와 성장의 순간들을 통해 부활의 본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완전히 변화하듯, 부활은 우리 존재의 근본적 변형입니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익숙해진 업그레이드나 변환의 개념도 부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버전으로 완전히 개선되듯, 부활한 몸은 현재 육체의 모든 한계와 결함이 제거된 완전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유들은 부활의 초월적 본질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부활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이며, 우리의 상상과 경험을 초월하는 신비입니다.

바울로께서 "우리가 다 변화될 것입니다"(알로게테소메타, 51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인간의 언어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론적 변화를 가리키고 계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부활 신앙의 현대적 의미는
부활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교리적 문제를 넘어, 우리의 현재 삶과 미래에 대한 근본적 관점을 형성합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우리의 존재가 현재의 물리적 한계에 갇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창조물을 위한 더 크고 영광스러운 목적을 가지고 계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울로와 가톨릭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통합해 볼 때,

우리는 부활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단순한 육신의 회복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된 새로운 존재 방식이며, 개인의 영혼 구원을 넘어 모든 창조 세계의 완성을 향한 첫 걸음입니다.

이러한 부활 이해는 현대인에게 깊은 희망과 의미를 제공합니다.

우리의 현재 고통과 한계, 그리고 죽음조차도 마지막 말이 아니며,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 안에서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충만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과거의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궁극적 미래와 희망을 규정하는 실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창조는 마침내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 영광스러운 변화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의 핵심이며, 우리가 오늘날 이해해야 할 부활의 참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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