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활의 언덕

주혜1 2025. 4. 25. 09:51

부활의 언덕,
그 침묵의 성채
아래서

나자렛예수님
당신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는데
저희는 높은 곳을 향해 서로 밟고 올랐습니다
세상의 정상에서 영광을 꿈꾸며 형제의 등을 디뎠습니다
저희는 그 섬김의 손길을 외면한 채 달려갔습니다
당신이 죽음의 골고다를 오르실때
저희는 죽음을 피해 숨 가쁘게 달렸습니다
생존만이 삶의 이유라 굳게 믿었습니다
당신은 십자가를 향해 의연히 걸어가셨는데
저희는 그 순명의 걸음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상처받은 가슴에 철옹성 같은 벽을 쌓았습니다
아무도 들이지 않겠다며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당신은 찔린 옆구리를 활짝 여셨는데
저희는 그 흘러내린 구원의 물줄기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한 방울 눈물도 아끼며 강인함을 가장했습니다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패배라 여겼습니다
당신은 피와 물을 남김없이 쏟으셨는데
저희는 그 희생의 깊은 바다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작은 잘못에도 용서의 문을 닫았습니다
상처의 기억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당신은 못 박는 손마저 용서하셨는데
저희는 그 자비의 무한한 품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자그마한 고통에도 절망의 어둠에 빠졌습니다
자신의 아픔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 여겼습니다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셨는데
저희는 그 소망의 별빛을 찾지 못했습니다

주여, 저희는 보이는 것만 실체라 믿었습니다
만질 수 있는 것만이 진실이라 착각했습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는 사랑의 실존을 믿으셨는데
저희의 영적 눈은 그 사랑의 실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주여, 저희는 안전한 빛 속에서만 길을 찾았습니다
확신과 보장이라는 이름의 안락함만 좇았습니다
당신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길이 되셨는데
저희의 두려움이 그 거룩한 길을 외면하게 했습니다

주여, 저희는 죽음 앞에 모든 희망을 내려놓고. 절망의 늪에. 헤매 일  때 마다

생명이란 결국 허무로 끝난다 체념하기가일수였습니다
당신은 죽음 속에서 생명의 씨앗을 심으셨는데
저희의 불신은  너무나 자주그 부활의 새싹을 밟아버렸습니다

주여, 저희는 말의 성찬으로 사랑을 외쳤습니다
입술의 고백만으로 충분하다 자만했습니다
당신은 침묵 속에서 사랑의 완성을 이루셨는데
저희의 공허한 울림은 진정한 사랑을 담지 못했습니다

골고다 언덕 위, 가장 비천한 죄인과 무한한 하느님 자비가 만나는 자리,
그곳에서 당신의 영원한 사랑이 저희의 깊은 죄와 만납니다
갯벌의 갈라진 틈처럼 메마른 저희 영혼에
당신의 생명수가 물밀듯 차오르듯
저희 영혼을 생명우 빛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골고다 언덕 위, 미움과 사랑이 십자가에서 교차하는 자리
저희의 유한함과 당신의 무한함이 만나는 그 거룩한 장소에서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의 나무가 아닌 저희 영혼의 거울이 됩니다
저희의 교만과 이기심, 냉담함이 그 빛 앞에 영원히 벌거벗게 하소서

그리고 주여
참혹한 골고다 언덕 위, 하늘과 땅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저희가 엎디어 간구 하오니
주여, 저희의 무지를 용서하소서, 저희. 무지를. 애닲히 여겨주소서
그리고 주여 돌같이 찬 무지의 심장을
뜨거운 피가 도는 살 심장으로 바꾸시어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오너라"
당신의 그 말씀이 저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새겨 넣어 주소서

골고다 언덕 위, 영원한 생명이 죽음의 권세를 이긴 자리
이제 저희도 내려가게 하소서, 당신처럼 섬김의 낮은 곳으로
이제 저희도 나누게 하소서, 당신처럼 생명의 빵과 포도주를
이제 저희도 깨닫게 하소서, 내려감이 오름임을, 비움이 채움임을

골고다 언덕 위, 당신의 가시면류관으로 저희 교만의 성벽을 무너뜨리소서
당신의 못 박힌 손으로 저희의 탐욕의 사슬을 끊으소서
당신의 창에 찔린 옆구리로 저희 냉담의 얼음을 녹이소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저희에게 새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소서

골고다 언덕 위, 무한한 자비의 강물이 흘러내리는 자리
주여, 이 허물 많은 저희의 영혼을 정결케 하소서
저희의 더러운 손으로 당신의 거룩한 발을 씻기게 하소서
저희의 부족한 입술로 당신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골고다 언덕 위, 그 깊은 어둠이 우주를 뒤덮은 자리
세상의 참 빛이 되신 나자렛 예수님
오늘, 이 수난절에 저희의 참회와 애통을 받아주소서
당신의 신적 고통이 저희의 영원한 구원임을 깊이 새기게 하소서

골고다 언덕 위, 당신의 찢긴 살점마다 저희를 위한 영원한 사랑이었음을
당신의 흘린 피 한 방울마다 저희를 향한 완전한 용서였음을
당신의 마지막 숨결마저 저희를 위한 영원한 생명이었음을
이제야, 이제야 저희가 온전히 깨닫고 무릎 꿇게 하소서

그리하여
죽음의 신비가 생명의 시작임을
부활이 당신 안에서 이미 완성된 약속임을
저희가 가슴 깊이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당신의 침묵이
가장 깊고
가장 애절하고
간절한 당신의 말씀임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ㅡ조광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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